고개를 숙이면 보이는 꽃, 제비꽃

준호, 제비꽃이 들려주는 마음 이야기

by 이다연



요즘 준호는 말이야,
핸드폰을 손에서 거의 놓지 않아.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있어.

바로 게임을 켜는 거거든.


밥을 먹을 때도 마찬가지야.
숟가락은 들고 있지만
눈은 계속 화면을 보고 있지.


엄마가 말했어.

“준호야, 밥 먹을 때는
핸드폰 좀 내려놓을까?”


하지만 준호는 화면을 보면서 이렇게 말해.

“잠깐만…
지금 중요한 거야.”


그런데 말이야,

준호의 그 ‘잠깐’은 항상 아주 길어.


동생 소라는 준호 옆에 앉아 있어.

작은 인형을 흔들면서 말하지.

“오빠… 같이 놀자.”

그런데 준호는 고개도 들지 않아.


“나중에.”

소라는 조금 기다렸어.

하지만 그 ‘나중에’는 끝내 오지 않았지.


어느 토요일이었어.

엄마는 소라의 손을 잡고 말했어.

“소라야, 공원에 다녀올까?”

그리고 준호에게도 물었지.

“준호야, 같이 갈래?”

하지만 준호는 게임 화면에서 눈도 떼지 않았어.

“안 가.”


엄마는 잠깐 준호를 바라보다가 말했어.

“그럼 집에 있어.
금방 다녀올게.”


문이 닫히자 집 안이 아주 조용해졌어.

그때였어.

안방에서 아빠의 목소리가 들렸어.

“준호야…”

준호는 화면을 보며 대답했어.

“왜요?”

아빠의 목소리는 조금 힘이 없었어.

“아빠가…
열이 좀 나는 것 같다.”
“몸이 좀 으슬으슬하네.”


잠시 후 아빠가 다시 말했어.

“근처 약국에서
해열제 좀 사다 줄 수 있을까?”


준호의 손가락이 잠깐 멈췄어.

게임은 지금 막 중요한 순간이었거든.


바로 그때였어.

창가에서

아주 작은 초록빛 그림자가 살짝 흔들렸어.

마렌이었어.


마렌은 준호의 핸드폰을 바라보며 말했지.

“준호야,
너는 지금 아주 중요한 걸 보고 있구나.”

준호는 조금 뿌듯했어.

“응.
지금 레벨 올리는 중이야.”

마렌이 조용히 물었어.

“그럼…
지금 너를 부른 사람은 누굴까?”

준호는 잠깐 아무 말도 하지 못했어.


마렌이 다시 말했어.

“사람의 목소리는 말이야,
화면 밖에서 들리거든.”

준호의 손이 조금 느려졌어.


그때 창가에 작은 빛 하나가 내려왔어.

투명한 날개를 가진 요정, 리아.


리아는 창문 아래를 가리켰어.

“준호야,
이 꽃을 본 적 있니?”

준호는 고개를 돌렸어.


화분 옆 바닥에
아주 작은 보라색 꽃이 피어 있었어.

제비꽃이었지.


리아가 살짝 웃으며 말했어.

“제비꽃은 말이야,
아주 작아서 잘 보이지 않는 꽃이야.”
“그래서
고개를 조금 숙여야
비로소 보이는 꽃이란다.”

준호는 가만히 꽃을 바라봤어.

정말 작았어.


그런데 이상하게 눈을 떼기가 어려웠지..


리아가 다시 말했어.

“사람의 마음도 그래.”
“너무 높은 곳만 바라보면
곁에 있는 마음을 보지 못해.”
“하지만
고개를 조금만 숙이면…”
“바로 옆에 있는 사랑이
보이기 시작한단다.”


그때 안방에서
아빠의 기침 소리가 들렸어.


준호의 손이
천천히 핸드폰에서 떨어졌어.

준호는 잠깐 생각했어.

그리고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지.

“아빠…
약 사 올게.”


약국까지 가는 길에 준호는 계속 생각했어.

동생이
“같이 놀자”라고 했던 목소리.

엄마가
“같이 공원 갈래?”라고 했던 말.

그리고

“준호야…”
하고 부르던 아빠의 목소리.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빠는 살짝 웃었어.

“고맙다.”

준호는 괜히 머리를 긁적였어.

“별거 아니에요.”


그날 밤,

창가의 제비꽃이
조용히 빛나기 시작했어.


리아가 미소 지었어.

“이 꽃이 소임을 다했네.”

보랏빛 꽃잎이 작은 빛이 되어

잃어버린 정원으로 천천히 올라갔지.


마렌이 웃으며 말했어.

“사람은 말이야,
가장 가까운 것을
가장 늦게 보기도 한단다.”


리아가 마지막으로 속삭였어.

“하지만 고개를 조금만 숙이면…”
“곁에 있는 사랑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어.”


다음 날이었어.

소라가 놀라서 말했어.

“오빠… 같이 놀아?”

준호는 환하게 웃었어.

“응.”
“오늘은 게임보다 네가 먼저야.”


정원에는 작은 보라색 꽃 하나가

흔들흔들 미소를 지으며 피어났어.

제비꽃이었지.


그리고 준호의 집은 어제보다

조금 더
따뜻해져 있었어.


E.P.10. <고개를 숙이면 보이는 꽃, 제비꽃> <준호, 제비꽃이 들려주는 마음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