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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thing special/ 사량도

10. 하늘을 걷는 섬, 사량도(蛇梁島)

by 이다연




경남 통영,

수많은 섬들 사이에서 사량도는 조금 특별한 방식으로 자신을 드러낸다. 남해의 부드러운 곡선 사이, 바위와 절벽으로 다져진 이 섬은 말한다.

“나는 하늘을 품고 있는 섬이야.”


사량도는 통영항에서 뱃길로 약 40분.

가까운 듯 멀고, 멀어도 가깝다.
정박 후 마을을 지나 오르기 시작하면, 이 섬이 왜 특별한지 몸이 먼저 알게 된다.


지리망산에서 불모산까지 이어지는 종주길

— 이 섬의 등뼈와도 같은 능선은 이름만 들어선 다 담기지 않는 풍경을 품고 있다. 낮은 고도(약 400m대)지만 그 위에서 보는 풍경은 마치 구름 위에 선 듯한 착각을 불러온다. 특히 이른 아침 운무가 몰려올 때면, 그 감각은 더욱 선명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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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날, 작은 숨소리 하나에도 섬 전체가 반응하는 것 같은 아침에 지리망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짙은 안개가 발끝을 덮더니, 이내 눈앞이 하얘졌다. 그런데 이상했다. 세상이 사라진 듯했지만 무서운 기분은 없었다. 오히려 마음이 텅 비고, 가볍고, 투명해졌다.

길은 날카로운 바위 능선으로 이어졌고, 그 아래로는 운무에 잠긴 바다와 섬들, 그리고 구름이 흘러가며 늘 땅에 붙어살던 나를 하늘로 데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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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이라는 말보다, ‘떠오른다’는 말이 더 어울렸다. 땀이 식을 무렵, 정상에서 본 풍경은 말 그대로 ‘하늘 길’이었다.

구름 아래의 섬들—욕지도, 연화도, 한산도— 모두 물 위가 아니라, 구름바다에 떠 있는 듯했다. 나는 지면 위에 서 있었지만, 마음은 완전히 공중에 떠 있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이 섬이 품은 건 단지 바다도, 바위도 아닌, 하늘을 걷게 해주는 시간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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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량도는 어떤 여행자에게는 그저 하나의 등산 코스일 수 있다. 하지만 내게는 내 안의 무게를 내려놓고, 무언가 더 가볍고 자유롭게 변해보는 경험이 됐다.

그 섬에서 나는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높은 것도, 먼 것도 아니고 그저 내 안의 중심이 조금 바뀐 느낌이었다.

하늘을 걷는다는 건, 구름 위를 걷는 게 아니라 ‘내 마음이 닿고 싶은 곳에 도달하는 감각’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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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량도의 능선길은 내가 걸은 땅이자, 잠시 머문 하늘이었다. 그래서 이 섬은 아직도 내 마음 어딘가에, 희미한 운무처럼 남아 있다.




하늘을 걷는 섬, 사량도

– 구름 위의 능선을 따라, 통영 사량도 여행


위치: 경상남도 통영시 사량면. 한려수도 한가운데 위치한 섬으로, 상도(북쪽)와 하도(남쪽) 두 섬으로 구성된다. 두 섬 사이에는 ‘동강’이라 불리는 해협이 흐르며, 거리 약 1.5km가 된다.


면적: 약 26.8㎢ — 섬치곤 작지 않은 크기. 능선과 바위지형이 대부분을 차지하여, 마을은 해안가에 집중되어 있다.


인구: 약 1,600여 명, 960여 가구(최근 기준)다. 점점 줄어드는 섬마을 인구 속에서도, 등산객과 여행자 덕에 생기가 오고 간다.

대표 산 - 불모산(399m): 사량도 최고봉, 종주 코스의 마지막 지점.

지리망산(398m): 가장 먼저 오르게 되는 봉우리, 가장 넓은 조망이 펼쳐진다.

특징 - 국내에서도 드물게 암릉 능선 종주가 가능한 섬. 운무 낀 날, 능선은 마치 하늘을 걷는 길처럼 펼쳐지며, '섬 등산'의 성지로 알려진 숨은 명소이다


1. 열리는 능선

바다 위에 떠 있는 섬이 하늘로 이어진다.

사량도. 통영 앞바다에서 배를 타고 40분,
그곳에는 작은 섬 하나가 날카롭게 솟아 있다.

섬이라기보다 하늘에 닿으려는 하나의 능선.

사량도의 길은 평지’보다 ‘등선’에서 시작된다.
바위 위를 딛고 오르다 보면, 어느새 구름 속을 걷고 있다.

“운무가 끼는 날,
그 능선은 하늘의 길이 된다.”


2. 지리망산에서 불모산까지

사량도의 능선 종주길은 국내에서도 손에 꼽히는 섬 등산 코스다. 지리망산(398m)부터 불모산(399m)까지 약 4.5km의 암릉 코스. 거리는 짧지만, 바위 능선을 따라 로프를 잡고 오르는 구간이 많아 긴장과 스릴이 공존한다.


그러나 그만큼, 능선에서 만나는 풍경은 압도적이다. 왼쪽으론 통영 앞바다, 오른쪽으론 욕지도와 한산도, 그리고 발아래로 흐르는 운무의 바다.

“땅을 딛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떠 있는 듯한 감각.
이 섬은, 발끝이 아니라,
마음으로 걷는 곳이다.”


3. 사량도의 풍경은 위에서 시작된다.

사량도의 진짜 아름다움은 섬 아래보다 능선 위에서 펼쳐진다.


✅ 능선의 파노라마
지리망산 정상에 서면 한려수도의 섬들이 점점처럼 흩어져 있다. 하늘 아래 바다, 바다 위에 구름, 그리고 그 가운데 서 있는 나.


✅ 바위 능선의 긴장감

암릉 구간은 장난이 아니다. 손을 써야 오를 수 있는 바위길. 그러나 이 긴장 뒤엔, 반드시 벅찬 해방감의 절경이 있다.


✅ 운무 속에서의 고요

안개 낀 아침, 능선은 흐릿한 선이 된다. 소리도 감정도 모두 옅어지고 마음은 묵언 수행처럼 정적을 배운다.


4. Editor’s Pick

이 능선은 늘 열려 있지 않다. 바다의 섬이 그렇듯, 사량도의 하늘길 또한 날씨와 시간, 마음의 준비가 맞아야 열린다. 하루 종일 구름이 흐르고 오르막이 숨을 채어갈 때, 어느 순간 마음은 말없이 열린다.

“등산이라기보다,
나는 그날 내 안을 조금씩 비워냈다.
구름 위를 걷는 감각은,
결국 나 자신에게 닿는 일이었다.”


5. 사량도 명소 Top 5

– 걷고, 오르고, 바라보는 섬의 지점들


✅ 지리망산 정상

운무가 흐를 때 가장 신비로운 장소. 한려수도의 섬들이 손에 잡힐 듯 보인다.


✅ 불모산 정상

사량도에서 가장 높은 지점. 종주의 마무리로 탁월한 조망을 선사한다.


✅ 옥녀봉 암릉 구간

가장 스릴 있는 구간. 로프를 잡고 넘는 바위 능선이 하이라이트.


✅ 능선 쉼터

중간에 만나는 작은 평지 구간. 바위에 앉아 바다를 마주하기 좋은 포인트.


✅ 돈지항 마을

종주 시작점 또는 종료지점. 등산 전후 섬 주민들과 눈 마주칠 수 있는 조용한 마을.


6. 돈지마을에서 금평항까지

사량도엔 두 개의 주요 선착장이 있다. 돈지항과 금평항이 그곳이다. 등산객 대부분은 돈지에서 오르기 시작해 불모산까지 종주한 뒤 금평으로 내려온다.


돈지마을

지리망산 진입로 시작점

아담한 해변과 민박집, 간이매점

조용하고 낡은 마을 골목에 섬의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


금평항

불모산 하산 지점

사량도 유일의 버스 종착점

통영행 배가 떠나는 마을

뱃길을 기다리는 동안, 고요히 섬을 마무리할 수 있는 공간

가우치항



7. Epilogue

사량도는 높은 섬이 아니다. 그러나 깊은 섬이다. 하늘을 딛고 걷는 그 길 위에서 나는 조금 고요해졌고, 조금 가벼워졌다. 오르면서는 몰랐지만, 내려오는 길에서야 알게 됐다.

이 섬이 진짜 열리는 건,
바다가 아니라,
내 마음이 열릴 때라는 걸.




♡-Legend

《하늘에서 내려온 옥녀의 기다림》-♡


“구름이 내려앉은 날,
옥녀는 다시 그 능선을 따라 내려온다.”

아주 오래전,
사량도엔 매일 바다 안개가 피어올랐고,
하늘은 늘 바다와 맞닿아 있었다.

이 섬엔 사람보다 구름이 먼저 머물렀고,
그 능선을 따라 걸으면
하늘로 향할 수 있다는 말이 돌았다.


그 시절,
하늘나라에서 옥녀 한 명이 몰래 인간 세상으로 내려왔다.

그녀는 하늘의 규칙을 어기고

사량도의 바위 능선 위에 내려와
하루 종일 바다를 바라보며 노래를 불렀다.


그 노래엔 바람이 깃들고,
구름이 춤췄으며,
섬 전체가 조용히 울렁였다.

그러던 어느 날,
옥녀는 이 섬 어부의 아들과 사랑에 빠졌다.


그러나 하늘은 오래도록
그녀의 부재를 용서하지 않았다.
옥황상제는 분노했고,
그녀가 하늘로 돌아오지 않으면
섬을 모두 바다에 잠기게 하겠다고 경고했다.


옥녀는 마지막 밤, 어부의 아들에게 말했다.

“나는 돌아가야 해요.
하지만 언젠가, 운무가 길을 열면
다시 이곳으로 내려올 거예요.
그날까지… 이 능선 위에서 나를 기다려요.”


그녀는 그 말을 남기고 능선을 따라 사라졌다.
그 후,
그 어부의 아들은 그 자리에 작은 봉우리를 만들고
매일 그 위에서 그녀를 기다렸다.

사람들은 그 봉우리를

*옥녀봉(玉女峰)*이라 불렀고,
운무가 짙게 내려앉는 날이면
구름 속에서 흰 옷을 입은 여인이 걷는 모습이 보였다고 한다.



여행에세이, 섬, 여행감성

― 《섬 thing Special》: 《'하늘을 걷는 섬', 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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