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만 힘든 거야...?
F/W 시즌이다.
패션의 계절인 만큼 많은 사람들이 가족 또는 연인 또는 친구와 함께 옷을 사러 쇼핑몰을 방문할 것이다. 그러다 보니 통상 패션에 더 관심 많은 여성을 따라가는 남성(!)들도 당연히 많을 것이다. 여기서 의문이 있다. 남성들은 통상 가기 싫어하긴 하지만 운동을 더 좋아함에도 불구하고 일단 다녀 보면 여성들보다 먼저 지치고 퍼진다. 왜일까? 아무래도 궁금하지 않나? 그래서 그 이유를 한번 살펴보려고 한다.
최근 몇 번 엄마와 누나의 쇼핑을 따라갔다가 왜 나만 힘든 건지 당최 알 수가 없어서 고민해 보았다. 솔직히 쇼핑 따라간 게 한두 번이 아니지만 이제야 이런 생각이 든 건 '걸음 수'를 체크해 봤기 때문이다. 난 11,995보를 걷고도 피곤한데 누나랑 어머니는 13,269보를 걸어놓고 힘든 티가 안 났다. 심지어 이게 같이 다닌 건데 어떻게 1,200 보나 차이 날 수 있겠는가? 아니 내가 신체능력이 더 좋으면 좋았지... 그래서 가장 확률이 높은 순위로 한번 작성해 보았다. 무조건 그렇다는 게 아닌 그저 내 사견이니 이해해 주길 바란다.
1. (평균적으로) 목적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고 싶은 게 없어!' 이게 일단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아시다시피 패션은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관심이 많은 편이다. 본인을 치장하고 꾸미는 능력이 뛰어날 뿐 아니라 흥미까지 있다. 시내는 물론, 백화점을 걸어 다녀도 신경을 쓴 남성들은 드문드문 있을지 모르지만 여성들의 기본적인 패션센스는 따라잡질 못한다. '실용성?' '화려함?' '편리함?" 그 어떤 수식어를 붙이더라도 패션이라는 영역 안에서는 여성들의 세련된 감각이 더 살아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만큼 멋지고 개성 있게 착용하는 남성들이 정말 귀하디 귀하다. 뛰어난 남자 디자이너들 중에 '여성스러움'이 묻어나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도 그러할 것이다. 사실 여자라는 성별이 패션 영역에서 치장할만한 요소가 남자라는 성별을 가진 이들보다 훨씬 많은 만큼 어찌 보면 여성분들이 패션 산업에서 주도적인 위치에 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고 본다. 예를 들자면, 남자는 치마를 입지 못하고, 화장품 사용도 적으며, 액세서리도 제한적일뿐더러, 분홍색은 어지간하면 다들 기피할 것이다. 그러나 여자는 거의 모든 색상에서 자유로우며, 바지도 입을 수 있고, 화장품 사용도 많고, 액세서리 착용도 각양각색이다. 최근에는 남성 매장이 더 적은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축소화되고 있다. 사실 브랜드 이름 뒤에 [옴므]처럼 남성복 매장임을 지칭하는 게 별도로 존재하는 것만 봐도 여성 매장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굳이 둘러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물론 브룩스 브라더스라던가 랄프로렌 같은 아메리칸 클래식 브랜드나 스포츠 브랜드는 남성 매장이 더 크고 종류가 많긴 하지만 말이다. 하여튼 엄마나 누나도 백화점을 가면 거의 그냥 놀이동산이다. 하나하나가 다 입을만하고 이뻐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사실 저번에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 내 거 사러 간 건 아니니까 뭐~
2. (평균적으로) 남자의 신체 조건이 비교적 크고 무겁기 때문이다.
만보기를 보면서 왜 그런가 생각을 해봤더니, 바로 내 보폭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물론 잠깐잠깐 앉아 있기도 했지만 그게 1,200보의 차이를 낼 만큼은 아니었다고 본다. 사람들 구경한다고 매장 바깥에서 쇼핑백을 들고 돌아다니기도 했다. 보폭 얘기를 하자면, 내가 170 후반대인데 보폭이 160 초반대의 가족보다 보폭이 좀 더 넓을지라도 만보기에는 한 걸음으로 추가된다. 0.8걸음 0.7걸음 이렇게 표시되진 않을 테니 말이다. 심지어 무게는 13-14킬로 차이 나는데 무릎에 더해지는 부담감과 이를 버텨내야 할 체력은 내게 더 필요한 상황인 것이다. 그래서 내가 적게 걸어도 더 힘든 것이라고 판단했다. 지금 당장 베란다 문을 열고 바깥을 보자. 놀이터에 뛰어노는 아이들만 봐도 걔네들이 체력이 좋다는 것을 여실히 느낄 것이다. 그것은 몸무게가 굉장히 가벼워서이다. '남자니까 체력이 더 좋아야 하는 거 아니냐?'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건 사람마다 케바케다. 내 입장을 대변하자면, 난 무릎이 안 좋아서 체력운동을 못하고 있다... 취준 하면서 늘어지고 있으면 안 되니까 근력운동은 틈틈이 일주일에 5일은 땡겨주고는 있다. 뭐… 어쨌든 목적의식도 덜하고 체력도 더 깎여나가는 게 당연한 남자 입장에서는 당연히 힘이 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남성들이라면 아마 다 그렇겠지만 짐도 내가 다 몰아서 드는데 안 힘든 게 이상하다.
3. (평균적으로) 평일에 일하느라 에너지를 다 쏟았기 때문이다.
취업준비를 하는 나에게는 해당 사항이 안되지만, 아마 이 또한 이유가 될 것이다.
맞벌이하는 분들도 많고, 요즘엔 여성 CEO!에 커리어 우먼! 등 사회에 진출하고 성과를 만들어가는 여성이 상당히 많다. 하지만 여전히 아직 남성들이 평일에 직장을 다니시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보통 쇼핑을 하러 주말에 가실 테니까 피로를 풀기보다는 여행 겸 쇼핑을 하러 갔을 때 남성들이 더 지치는 건 당연하다. 주부와 직장인 관계가 서로 뒤바뀌면 당연히 몸상태도 서로 뒤바뀌니 상황도 달라질 것이다. 무엇보다, 이게 3순위인 이유는 여러모로 사회가 균등하게 흘러가려고 노력하고 있기도 하고, 앞순위가 압도적인 이유를 차지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평일에 쇼핑을 가도 남성들이 더 빨리 지치고 힘들 거다 ㅋㅋ 그나저나 나는 이거 때문에 힘들어도 되니까 취업 좀...
그럼에도 남성들이 여성들과 쇼핑을 처음부터 끝까지 짜증 없이 보내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본인을 놔버리고 항상 쇼핑을 하는 그녀들을 생각하면서 심기일전하며 따라다녀야 한다. 평범한 마음으로 다녀서는 안 된다. 스스로에게 여러 가지 이유를 만들면서 권면하고 격려하는 것이 필요하다. 몸은 힘들 것이다. 하지만 정말 마음에 드는 제품을 샀을 때 행복해하는 가족이나 연인을 본다면 육체적인 힘듦은 몰라도 정신적으로 초월한 자신을 돌아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