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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수리 마수리 Nov 06. 2021

인생 내비게이션

내가 가야 할 길을 누가 알려준다면?

사회자의 소개가 끝나고 노인이 연단에 올라왔다.  

노인은 청중석을 향해서 가볍게 고개 숙여 인사를 하더니 꼿꼿한 자세로 마이크를 잡았다.

“부족한 사람을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제가 살아온 인생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노인은 눈에서 빛이 났다.

외모만 보아도 예사롭지 않은 느낌이 든다.

노인을 바라보는 청중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정도로 위압감을 느꼈다.

‘드디어 저분의 말씀을 직접 듣게 되는구나.’

모두 기대 어린 눈초리로 노인을 바라보았다.

“누구나 인생에는 세 번의 기회가 찾아온다고 합니다. 문제는 그 기회가 어떤 형태로 찾아오는지 알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참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

“성공한 사람들은 모두 운이 좋다고 하네.”

청중 속에서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제가 13세가 되던 해에 처음으로 인생 내비게이션이 나왔으니까요. 사춘기 때는 누구나 방황하기 마련이지만 저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저만이 아니라 제 친구 모두 사춘기라고 특별하지는 않았습니다. 완전히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저희가 바로 그 첫 세대가 되었죠.”

노인은 시선을 들어 천장 주변을 쳐다보았다. 과거를 회상하는 듯한 자세다.

“사춘기에 내비게이션이 나왔을 때 저는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습니다. 이거다. 이게 바로 나에게 주어진 첫 기회다.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내비게이션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곧장 나갔습니다. 전혀 망설임도 없고 주저함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우주 학교에 들어갔지요.”

그때 청중석에서 한 사람이 손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질문을 받으시겠습니까?”

사회자가 물어보자 노인은 흔쾌히 승낙했다.

“네, 좋습니다. 너무 저만 이야기하면 지루하니까 여러분의 질문을 받아가면서 이야기를 하죠.”

사회자는 청중의 질문을 받았다.

“선생님은 내비게이션 첫 세대 중에서도 첫 추종자라고 들었습니다. 선구자이신데요.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선뜻 택하시려면 상당히 용기가 필요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은 13세 때 어디서 그런 용기를 얻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여학생이 질문하자 노인은 웃으면서 답했다.

“저에게는 한 가지 행운이 있었습니다. 제가 바로 사춘기였다는 점입니다. 사춘기에는 뭐든지 반대로 하고 뭐든지 반항하지 않습니까? 저도 그랬습니다. 모든 사람이 내비게이션을 믿지 말라, 내비게이션에서 가란다고 정말 그 길을 갈 거냐고 말했을 때 저는 다른 사람과 반대로 했을 뿐입니다.”

여학생은 웃으면서 자리에 앉았다.

“그럼 이야기를 이어 나가겠습니다. 제가 우주 학교에 들어간 게 첫 번째 행운이라고 말씀드렸는데요. 제가 우주 학교 제1기로 입학한 후에 인류는 본격적으로 우주 개척에 나서게 되었습니다. 우주 개척에 우주여행까지 우주 이슈가 터질 듯이 불어났거든요.”

청중 중에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이 많았다. 티브이에서 하는 역사 기행 다큐에서 본 적이 있다는 표정들이다.

“개인 유전자 정보를 바탕으로 하고 여기에다 사주팔자, 오늘의 운세, 별자리 운세, 타로 점까지 이 세상에 있는 백 가지 이상의 수법과 데이터를 모두 반영해서 인공지능이 저에게 길을 정해 준다고 했을 때 누가 그걸 믿었겠습니까? 하지만 저는 믿었습니다.”

노인은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내비게이션으로 출세한 제1호 인간의 표정이다.

“제게 찾아온 두 번째 행운은 제 아내입니다. 출장으로 고객을 만나러 갔을 때 회의에 나왔던 여성 일곱 분 중에서 아내를 딱 찍어서 알려준 내비게이션은 제 아이 세 명의 생명의 은인입니다. 손자 손녀 여덟 명의 생명의 은인이기도 하고요.”

청중석에서 웃음이 들렸다.

“여기서 청중 질문을 하나 받아도 되겠습니까?”

사회자가 끼어들어 노인을 쳐다보았다.

“아아, 네. 그럼요. 제가 너무 제 이야기에 빠지다 보니 좀 지루하셨죠?”

노인이 웃으면서 답하자 사회자는 크게 두 손을 저어 부정했다.

“제가 질문하나 하고 싶습니다.”

청중석에서 40대로 보이는 남성이 손을 들고일어났다.

“저는 아직 독신으로 있습니다. 저도 내비게이션이 배우자를 찾아 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아직까지 전혀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내비게이션이 제 갈 길을 알려줄지 궁금합니다.”

“요즘 독신으로 사는 분이 많으신데요, 제가 그런 분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내비게이션을 매일 갱신하라고요. 여러분이 오늘 활동하신 데이터를 오늘 저녁에 반영하고 내비게이션을 갱신하면 내일이라도 여러분의 배우자를 찾으실 수 있습니다. 지금 질문하신 분께 제가 거꾸로 질문드리겠습니다. 가장 최근에 내비게이션 갱신한 건 언제입니까?”

노인이 질문하자 독신 남성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지난 한 달 동안 너무 바빠서 갱신을 못했습니다. 오늘 저녁에라도 하겠습니다.”

“저런 저런. 하루 일 분 습관이 여러분의 인생을 바꿉니다. 자 그럼 이 자리에서 다 함께 갱신을 합시다. 모두 내비게이션을 꺼내 주세요.”

노인은 주머니에서 내비게이션을 꺼냈다. 청중 모두 내비게이션을 꺼냈다.

“자, 그럼 제가 하나 둘 셋 하면 모두 함께 ‘갱신’이라고 말하는 겁니다.”

청중들이 웃는 모습으로 노인을 지켜보았다.

“하나~ 두울~ 세~엣.”

“갱~신~.”

모든 청중이 합창을 했다. 음성인식과 동시에 모든 청중의 내비게이션이 갱신되었다. 시간은 일 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그럼 제 세 번째 행운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어느 날, 제가 퇴근해서 집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내비게이션이 평소와는 다른 길을 안내하는 겁니다. 이게 무슨 일인가 했죠. 가는 길에 도로공사를 하나? 아니면 길이 막히나? 옛날에는 자동차 사고가 나서 길이 막히던가 도로공사를 하면 내비게이션이 다른 길을 알려줬잖아요? 갑자기 옛날 생각이 나더라고요.”

노인은 소리 내어 웃었다.

“제가 너무 옛날이야기를 하니까 전설의 고향 보시는 기분이죠?”

“하하하”

청중들이 소리 높여 웃었다.

“이상하게는 생각했지만 저는 내비게이션을 신뢰하기 때문에 별다른 의심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가라는 길로 갔지요. 그런데 도로가 엄청나게 막혀 있더라고요. 아, 역시 너무 믿으면 안 되나 생각했습니다.”

청중석에서 웃는 소리가 들렸다.

“이건 농담이고요. 가라는 길로 가다 보니 사업계획 발표장이라는 팻말이 보이는 겁니다. 그곳이 목적지였고요. 그래서 사업계획 발표장에 들어갔고 발표를 들었지요. 그다음부터 이어지는 이야기는 여러분도 여러 번 들으셨을 겁니다. 발표자와 의기투합해서 새로운 회사를 창업하고 연달아 히트작품을 내서 우주 제1의 부자가 되었다. 뭐 이런 이야기요.”

청중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 티브이에서 책에서 수없이 들었던 이야기다.

“제가 살아온 인생을 되돌아보면 참 운이 좋았다는 이야기를 다시 한번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내비게이션이 알려준 인생 세 번의 기회를 모두 제대로 활용했으니까요. 그럼 제 이야기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노인은 가볍게 인사하고 무대를 내려왔다.

관계자들과 인사를 하고 차 운전석에 올랐다.  

“오늘은 집에 빨리 간다고 했는데 또 늦었네.”

노인은 내비게이션을 켰다. 내비게이션은 집으로 가는 길이 아니라 전혀 모르는 길을 안내했다. 노인은 안경을 끼고 목적지를 확인했다.

“어디 보자, 이곳이 어디야? 대학병원 응급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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