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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수리 마수리 Nov 13. 2021

번개 맞은 사람

쾌락에 빠지면 안 되나요?

“반장님, 드디어 용의자가 자백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 어디서 걸렸지?”

“할머니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울더니 마음이 바뀐 모양입니다.”

형사반장은 차가운 물을 벌컥 마시고는 형사를 따라 급히 취조실로 갔다.

조용하던 마을에 마약이 퍼진 건 3개월 전이다. 지금까지 없던 사건이라 경찰서는 비상이 걸렸다. 형사반장은 형사들과 팀을 짜서 거의 매일 잠복근무를 했다. 마침내 3일 전에 용의자를 체포했다. 용의자는 전과 기록이 없고 범죄 관련 사항이 전혀 없다. 너무 평범한 시민이라서 도저히 마약사범으로 상상할 수조차 없는 사람이다. 

“어떻게 하다가 이런 사람이 마약사범이 되었을까?”

형사반장은 아무리 생각해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30년 이상 형사 생활을 하고 있지만 이렇게까지 범죄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은 처음이다. 

“하지만 반드시 범죄는 뿌리 뽑는다.”

형사반장은 형사들에게 자백을 받아오라고 강요했다. 

형사들은 퇴근도 못하고 번갈아 취조실에 들어가서 용의자의 자백을 유도했다. 하지만 용의자 역시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전혀 용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영장 없이 구류 가능한 기간은 48시간이니 이 시간 내에 자백을 받아야 해. 증거도 보강해야 하고. 다들 움직여.”

형사반장의 독려에 형사들은 용의자를 협박도 하고 회유도 하고 달래기도 하였다. 하지만 용의자는 30시간 이상 꿈쩍도 하지 않았다.     

취조실에는 나무책상 하나와 나무의자 두 개가 있다. 책상 위에는 병이 하나 올려져 있다. 나무의자 하나에는 용의자가 앉아있다. 용의자는 32세. 남자. 혈색이 나쁘고 핼쑥하다. 용의자와 마주 보는 나무의자에 형사반장이 앉았다. 

“그래, 자백하겠다고?”

“제 이야기를 드리고 싶습니다.”

“시간이 얼마 없으니까 요점만 간단하게 말해주면 고맙겠네. 어차피 자네가 마약을 팔았다는 증인도 확보했고 증거물도 여기 있으니까.”

형사반장은 책상 위에 있는 병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저 병에 있는 게 마약이라고 어떻게 단정할 수 있습니까?”

용의자는 저항했다. 마약이라고 인정되면 최소한 징역 20년은 각오해야 한다. 

“마약이 아니라면 왜 저 병에 있는 약을 먹은 사람들은 다리에 힘이 풀리고 눈동자에 초점이 없어질까?”

형사반장이 반문하자 용의자는 힘없이 대답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유품을 전혀 정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10주년 추모식에서 생각이 나서 할머니 유품을 정리하는데 이 병이 나왔습니다.”

“그러니까 할머니가 마약을 가지고 있었다는 말인가?”

형사반장의 질문에 용의자는 고개를 옆으로 가로저었다. 

“그런 말이 아닙니다. 이 약을 발견하고 뭔가 해서 한 알을 먹어봤습니다. 제가 어릴 적부터 호기심이 왕성한 아이였거든요.”

“그렇게 해서 자네도 마약에 중독되었다는 말이지?”

“약을 한 알 먹고 나니 마치 번개가 치는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거실에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화장실로 뛰어갔습니다. 화장실에서 나와서 다시 거실로 가고 다시 화장실로 가고. 하루 종일 화장실과 거실만 왔다 갔다 했습니다.”

“마약을 먹고 행동이 불안정했다는 말이군.”

형사반장이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말하기도 싫고 그냥 혼자 있고 싶었습니다.”

“마약에는 진정효과도 있으니까.”

용의자는 마약 혐의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쳤다.

형사반장이 부드러운 음성으로 물었다.  

“친구에게는 얼마나 많이 팔았지?”

“처음에는 친구에게 한 알 선물했습니다. 그런데 친구가 계속 더 달라고 해서 두 알 팔았습니다.”

“친구는 약을 먹고 어떤 반응을 보이던가?”

“친구는 마치 번개 맞은듯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약 이름을 번개라고 했나?”

“알기 쉬우니까요.”

형사반장의 노련한 추궁에 용의자는 약간 포기한듯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형사반장님. 저희 할머니는 절대로 마약을 하실 분이 아닙니다.”

“마약사범은 얼굴에 써 붙이고 다니는 줄 아나?”

“저 약을 먹고 나서 제가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친 적도 없지 않습니까?”

“자네 거울 한번 쳐다보게. 그 얼굴을 보면 마약이 얼마나 큰 해를 끼쳤는지 금방 알 걸세.”

용의자는 갑자기 고개를 숙이더니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그때 형사가 취조실로 들어와서 형사반장에게 보고했다. 

“반장님, 과학수사대에서 의사가 왔습니다.”

형사반장은 용의자를 취조실에 남겨둔 채로 밖으로 나왔다. 

“과학수사대 의사입니다.”

“보고서를 보낸 게 아니라 직접 오셨습니까?”

과학수사대는 결과보고서 한 장만 달랑 보내는 기관이다. 의사가 직접 찾아온 걸 보니 이번 사건이 크긴 큰 모양이다. 형사반장은 직감적으로 느꼈다. 

'이번 사건을 어떻게 해결하는지에 따라 승진이 결정되겠구나.'

의사는 긴장한 얼굴로 형사반장을 구석으로 데리고 갔다. 

“문제가 너무 커서 제가 직접 설명드리러 왔습니다.”

"수사에 진전이 있었습니까?"

과학수사대로 넘어간 사건은 형사반장도 상세한 내막을 모른다. 

수사반장의 질문에 의사는 조용히 말했다.

“과학수사대 수사관이 용의자 집을 압수 수색해서 병을 세 개 더 찾았습니다.”

“마약이 그렇게 많았습니까?”

형사반장의 질문에 의사는 얼굴을 찡그렸다. 

“그런데 그게 아무리 봐도 도대체 무슨 마약인지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형사반장은 긴장한 표정으로 물었다. 

“과학수사대도 모르는 마약이 있습니까?”

“그래서 전문가에게 확인을 했습니다. 그 결과가 조금 전에 나왔습니다.”

의사는 굳은 얼굴로 형사반장을 쳐다봤다. 형사반장은 긴장감에 온몸이 굳어왔다. 

“우리 마을에는 절대 마약이 있으면 안 됩니다.”

형사반장도 얼굴이 굳었다. 

의사가 설명했다.

“이 약은 과거에 팔렸던 설사약입니다.”

“설사약? 그게 뭡니까?”

“반장님이 태어나시기 전에 그러니까 백 년 전에 설사라는 병이 있었습니다. 그 병을 유발하는 약입니다.”

“지금은 설사라는 병이 없는데 도대체 어떤 병입니까?”

“몸속의 유해물질이 한꺼번에 밖으로 배출되는 병입니다. 너무 빠른 속도로 배출되기 때문에 인간 스스로 제어할 수 없습니다. 배출 후에는 바이오리듬이 깨지면서 삶의 활력을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그런 병에 일부러 걸린다는 말씀입니까?”

“설사는 쾌락이거든요.”

설사약은 백 년 전에 마약으로 인정되었다. 정부에서 설사약을 금지약품으로 규제하자 설사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바이오리듬에 심각한 변화를 주는 설사약은 지구에서 사라졌다.

“이번 사건을 왜 언론에 공개하지 말라고 하십니까?”

형사반장의 질문에 의사는 주위를 돌아보며 답했다. 

“절대로 안됩니다. 문제를 알면 답을 구할 수 있습니다. 설사라는 쾌락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금방 누군가 설사약을 만들게 됩니다. 이런 사태는 막아야 합니다.”

“사건 자체를 없었던 일로 만든다면 저 용의자는 풀어줘야 하는데요?”

“기억상실대에서 처리하시면 어떻겠습니까?”

의사는 상부의 지시를 받고 온 듯 망설임 없이 제안했다. 제안이라기보다 지시다. 

“혹시 달리 하실 말씀이 있습니까?”

형사반장은 의사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서 지나가는 말로 물었다. 

의사는 매우 신중한 표정으로 힘주어 말했다.

“아무리 속이 타도 물은 미지근하게 드세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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