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일 수도 있다. 이 두가지는 각각 유전자의 입장과 사람의 입장에서 본 삶의 목적에 해당한다. 존재의 목적이 반드시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가축이 존재하는 이유는, 우리가 먹기 위해서일 수도, 가축이 삶의 행복을 인식하며 살고 싶어서 일수도 있다. 이런 삶에 대한 목적의 종류는 대상의 입장에 따라서 달라진다.
2. 삶을 버리는 이유
(일반화된 행복)
인간의 행복이 유전자의 생존, 즉 인간의 생존을 위해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대부분의 행복은 그들의 생존과 번식에 관련이 있다. 이는 보편화된 본성이고 행복을 추구하는 행동 패턴들이다.
대표적으로 성욕, 색욕, 수면욕, 폭력 혹은 사회적인 욕구 등이 있다. 모든 이기적으로 보이는 욕구들은 물론 이타적이고 선하다고 여겨지는 행위들까지, 개인 혹은 인류의 생존과 번식에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있다.
그러나 과연 우리의 모든 행동과 생각이 오로지 생존과 번식을 추구하는데 있는가?
그렇다면 삶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사람들이 자살하는 일은 왜 자꾸 일어나는 것일까?
인간은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서 살기 때문에, 행복을 느끼지 못하면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은 매우 자연스럽다. 유전자의 입장에서는 이런 현상은 오류이자 의도치 않은 실수이다. 어쩌면 한 거대한 법칙을 향해 나아가며 생기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일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는 인간의 뇌가 매우 발달하고 스스로에 대해 깊이 자각하면서, 필연적으로 유전자의 목적에 어긋나게 되는 현상이 벌어지게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유전자가 자아를 가진 존재라고 하면, 이런 현상이 일어난 것은 유전자의 ‘실수’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3. 삶을 대하는 태도
(세가지 태도)
이 세상에는 엄연한 법칙이 존재한다. 어떤 고차원의 존재가 만들었을 수도 있고,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게 되었을 수도 있다. 아니면 애초에 시간 이전부터 존재했거나. 중요한 점은 모든 만물은 태초에 존재했던 모든 법칙으로 인해 지배당한다는 것이다.
나는 어릴 적부터 세상에 무의식적으로 이런 의문에 기반한 이질감을 느꼈다.
생물은 왜 비생물에서 벗어나려고 하는가?
이러이러한 물리법칙은 왜 이렇게 정해진 거지?
물론 세상의 법칙에는 내포된 이유가 딱히 없을 수도 있다. 아니, 적어도 우리가 햄이 맛있어서 파인애플이 아닌 햄샌드위치를 고르는 것과 같은 '직접적인 이유'는 없을 수도 있다. 그 때 샌드위치의 위치가 왼쪽이었거나, 눈을 질끈 감고 선택했는데 얻어걸린 것과 같은 같잖은 이유였을 수도 있다. 아무튼 필연적으로 선택해야 하지만 별로 상관은 없을 때, 우리는 결국 사소한 이유만으로 선택을 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무튼 세상의 법칙은 내 의사와 관계없이 정해져있고, 지금 내가 하는 생각이나 이 사실을 지각하는 내 자아도 세상의 법칙에 의한 지배를 받는다. 마치 그리스 비극의 주인공인 오이디푸스 왕의 신탁과 비슷하다.
다른 점은 내가 이 법칙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자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모든 것에 인과가 있다는 사실 자체는, 내가 어떤 원인 즉 법칙에 종속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이런 법칙을 지각하거나 인식한다고 해서 그 법칙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는 필연적이며 이런 법칙에 종속되는 존재로서, 나를 법칙과 구분하며 벗어나려는 행위의 이유 또한 찾기 힘들다. 가끔씩은 이런 법칙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자아가 매우 이상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애초에 나를 포함하고 완전히 설명하는 어떤 법칙이나 개념에서 벗어나려는 행위 자체는 모순적이며 이유가 없고, 불가능하며 필연적인 것에 맞서는 일이다.
그러나 존재하는 법칙을 자각하며 생기는 이질감, 그 감정은 내 전두엽의 산물인 동시에 단순한 허무주의가 아닌 더 큰 통찰을 가져다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을 지도 모른다. 법칙에 대해서 우리는,
반항하거나
순응하거나
상관없다는 태도를 견지할 수 있다.
첫 째로, 반항은 정신적으로 더욱 큰 자의식과 허무의 감정을 불러올 수 있다. 물론 아무리 자각해도 인간이 종속된 법칙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과연 이러한 성찰과 자의식은 아무 의미가 없을까?
둘 째로, 순응은 말그대로 법칙을 의식적으로 따르며 순순히 태도를 취하는 것이다.
셋 째로, 상관없다는 태도는 법칙을 자각하지 않으며 그저 생각없이 사는 것이다. 이 경우에도 자각하지만 못할 뿐, 언제나 법칙에 지배당하면서 모든 생각과 행동을 취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