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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숙한 관대함

by 김주음

영달은 동업을 시작한 지 두 달 만에 길홍이 댄 돈을 다 챙기고 말았다.

챙겨 도망을 갔다거나 사기를 치고 달아났다거나 한 게 아니고 돈을 다 챙기고서는 그냥 그 자리에 있었다.

그는 간도 크게 관에서 정식으로 하청을 받은 공원 사업권을 제 멋대로 다른 사람에게 돈을 받고 팔아넘긴 것이었다. 그리고는,

"내가 돈이 쓸 데가 있어서 좀 팔았다. 아주 사겠다는 작자가 줄을 섰데?"

하며 아무렇지 않게 알려왔다.


시모 말마따나 김길홍이를 얼마나 만만히 봤으면 도망을 할 성의조차 없었을까 마는 그가 돈을 챙기고도 당당한 데는 시동생인 길남도 한 편 거들었다는 사실이 나중에 드러났다.

인천 바닥의 뒷골목에서 일어나는 일은 모르는 게 없는 길남은 영달이 일을 성사시키자마자 어떻게 먼저 알고 찾아와서는 제 몫의 돈을 챙겨갔다고 한다.

자기 말로 제 몫의 돈이지, 있지도 않은 제 몫을 제 형의 돈으로 제 형 친구와 아주 돈잔치를 벌인 것이었다.


길남에게 돈을 떼어주자 겁날 게 없어진 영달은 같이 좀 먹고살자며, 급하게 혼인을 하게 돼 서울 본가 근처에 집을 얻었노라고 당당하게 말했다고 한다.

길홍으로서는 매일 보는 처지에 혼인 얘기도 금시초문이었지만 남의 돈으로 집을 얻은들 서울이 웬 말인가 했다.

자신도 인천 변두리 언덕배기에 사글세를 사는 처지인 것을.

그러나 그는 멱살을 잡은 길홍의 손을 세차게 뿌리치면서 거침없이,

"너만 장가가라는 법있냐? 없는 놈은 장가도 가지 말란 소리냐?"

라는 명언을 남겼다.


처음에는 영달을 놓고 동서남북으로 놈자를 붙이며 욕을 하던 시가 식구들도 길남이 한 짓을 알자 되지도 않은 관대함을 보이더니 급기야는,

"기왕 간 장가를 무를 수도 없고."

라는 더 명언을 남겼다.


김 씨 부인이라고 작은 아들 때문에 끌탕을 안 한 것은 아니었겠으나 그녀의 자식 사랑은 그랬다.

당장 아들이 막나가는 것보다 하필 큰 형 돈을 건드려서 약한 것이 제 형한테 매나 맞지 않을까, 성미가 급한 김의원 귀에 들어가서 치도곤이나 당하지 않을까 그게 더 걱정인 사랑이었다.

그래서 일은 그렇게 마무리가 됐다.

공원 사업권은 고소고발없이 남에게 넘어간 채로 일단락이 되었다.

방을 얻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혼인을 했다는 영달은 돈을 챙겨서 인천 바닥을 당당하게 떠났다.

길남은 제 몫이라고 우기는 얼마간의 돈을 가지고 연락두절이 되었다.

나중 얘기지만 그는 몇 달을 못 버티고 기어들어와 제 형 손에 붙들려 강제로 입대가 되었다.

어리숙한 길홍을 빼면 모두가 한몫 잡은 행복한 결론이었다.


아무도 길홍 걱정은 하지 않는 것 같았다. 밑천도 친구도 가족도 잃은 길홍의 처지를 염려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시모는 전전긍긍하며 길남 걱정만 했고 영달은 고발이나 당하지 않을까 제 걱정만 했고 사업권을 산 사람은 돈은 애먼 데다 주고 애꿎은 길홍만 잡고 늘어졌다.

길홍 자신도 자기 걱정을 하지 않는 듯했다. 그랬으니까,

"잘 먹고 잘 살아라!"

라는 덕담과 함께,

"내가 니 진짜로 집 얻었는지 꼭 가서 확인한다."

는 최후 명언을 남기며 다 털어버렸겠지, 용옥은 그렇게 생각했다.


길홍은 다시 도화동의 사글셋방으로 들어앉았다. 봄이 지났고 여름도 지나건만 길홍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방구석에서 날을 보냈다.

용옥이 임신이 된 지 칠 개월로 접어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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