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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음 Oct 13. 2023

홈커밍데이 1

뒤늦게 홈커밍데이 날짜가 잡혔다. 

글랜데일 하이스쿨 풋볼팀의 경기가 있는 날마다 비가 오는 바람에 계속 미뤄지더니 10월 후반이 되서야 겨우 정해진 것이다. 학교에서는 카페테리아와 운동장을 무도회장으로 개방했다. 부모들은 메인 야드에 푸드트럭을 열고 핫도그와 아이스크림 제공하겠다고 했다.


파티는 풋볼 홈게임이 있는 금요일 저녁에 열리는 게 관례였다. 수업을 마친 하이스쿨 아이들은 세미포멀한 드레스와 수트를 차려입고 풋볼 필드로 모일 것이다.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카페테리아에는 무도회용 조명과 뮤직박스가 설치되고 댄스파티의 시작을 알리는 학교 밴드의 연주가 홀을 매우게 될 것이었다. 


홈커밍데이 날짜가 결정되자 그랫볼 집행부에서 베이커리를 빌려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홈커밍데이에 부모들도 모금행사를 하겠다는 것이었다. 졸업생을 위한 그랫볼은 비용이 많이 들어가서 30불의 입장료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학부모들은 스테이크 나이트나 와인 이브닝 티켓을 팔기도 하고 로터리 복권을 발행하기도 했다. 그 집행부에서 홈커밍데이에 맞춰 학부모들의 포커 나이트를 베이커리에서 하겠다는 것이었다. 


포커 나이트는 보통 가정에서 모인다고 들었기 때문에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윤이가 아는 척을 했다.

“집을 내주려고 그러는 거야.”

“집을? 누구한테 내줘?”

“스쿨파티가 끝나면 끼리끼리 홈파티로 다시 모이거든.”

“그런 거야? 아이들끼리 모여서 놀 수 있게 겸사겸사 집을 비워준다는 거네.”

“sns에 애들이 올리는 사진 보면 술도 엄청 마셔.”

“어디서?”

“집 지하에 당구대나 게임기 있고 그런 데 있잖아. 그런 데서 술병 들고 사진 찍어서 올리고 그래.”

“부모님 몰래 그게 가능해? 술을 어디서 사는데?”

말해놓고 별 걱정을 다 한다 싶었다. 술을 못 구해서 못 마시겠는가. 그러나 슈퍼에서는 주류를 팔지 않았고 리큐어샵은 20세 이하 미성년의 출입 자체가 허용되지 않는다. 누구든 어른이 제공하거나 적어도 묵인해야 가능한 일인 것이다. 부모는 아이들이 밖으로 돌아다니느니 차라리 집에서 마시는게 안전할 거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러나 옳고 그름의 문제에서 타협 쪽으로 중심을 잡은 일의 결과는 당연하게도 상처가 되어 돌아오는 일이 많았다.


윤이에게도 프러포즈가 들어왔다. 파트너가 될 브렛이라는 남자아이는 그녀의 체육짝이었다. 한 학기 동안 체육 수업의 운동 짝으로 정해진 친구다. 

“엄마, 지난번에 타운하우스에 불났을 때 우리 집에 왔던 소방관 아저씨 기억나?”

윤이가 물었다. 그 소방관이라면 리츠 씨였다. 리츠 소방관은 글렌데일에서 태어나고 자란 토박이였다. 그는 대학을 졸업한 후 돌아와 마을의 소방관이 되었다. 젊은 소방관은 하이스쿨 스윗하트라고 하는 첫사랑 동급생과 결혼해서 고향에 뿌리를 내렸다. 


그를 처음 본 것은 작년 여름이었다. 기숙 씨네가 사는 타운하우스에 불이 났다는 신고가 들어간 적이 있었다. 새벽에 현관을 세차게 두드리는 소리에 잠이 깨 문을 열자 완전 복장을 한 소방관이 서 있었다. 리츠 씨 였다. 복장 탓에 체격이 보통 사람의 두 배는 돼 보였다. 투명 마스크 너머로 파란 눈과 덥수룩한 갈색 수염이 보였다. 

소방관들의 지도 아래 주민들은 잠옷 차림인 채로 대피했고 다행히 큰 불은 아니어서 거대한 두 환풍기 두 대를 연결해 연기를 빼내는 일로 마무리가 되었다.


그를 다시 본 것은 소방서 오픈하우스 때였고 먼저 알아본 사람은 윤이었다. 마침 갈퀴처럼 생긴 도구로 찌그러진 자동차의 문을 따는 시범을 보이려던 참이었다. 소방서장의 자세한 설명 끝에 앳돼 보이는 소방관 한 명이 시범 조교로 소개되었다. 신참이라고 했다. 딱 보기에도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신참 소방관은 차 문 정도는 1분이면 뜯어낼 수 있다는 서장의 설명과는 달리 3분이 넘도록 끙끙대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그만 갈퀴까지 놓쳐 버리고 말았다. 튕겨져 나간 갈퀴는 허공에서 한 바퀴 돈 다음 전시되어 있던 소방차의 바퀴에 부딪히며 다시 신참에게로 돌아와서 떨어졌다. 사람들의 시선이 갈퀴를 따라 허공을 돌았고 땅에 떨어지는 순간 환호가 터져 나왔다. 

그 환호를 이어받아 차 문을 한 번에 우지끈 뜯어 낸 사람이 그 리츠 소방관이었다. 그는 신참이 거의 다 해 놓은 일이었다며 공을 돌렸고 사람들은 앳된 소방관의 요란한 신고식에 따뜻한 박수로 격려했었다.


“그 아저씨가 브렛네 아빠였어.”

“엉? 그랬어?”

“응. 그 아저씨가 우리 학교 교육 담당 소방관 이거든.”

학교에서는 매 학기마다 마약이나 술에 관한 예방교육을 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강당에 모여 강연을 듣는 틈에 경찰관과 선생님들이 가방 검사를 하기도 했다. 청소년의 마약 문제는 연방정부가 전쟁을 선포할 만큼 위험수위를 넘어서고 있다고 했다.

“경찰이랑 소방관이랑 한 명씩 오거든. 요새는 베이핑에 관한 얘기도 많이 해. 베이핑도 처벌이 세졌대.”

“베이핑이 담배 아냐?”

“담배랑은 다르지. 근데 거기다 뭘 섞는지에 따라서 무지 해로울 수 있대."

"그것도 많이 하나 보구나."

"담배 피우는 애들은 못 봤는데 베이핑은 엄청 해. 마시도 운전할 때는 하는 걸. 걔가 그거 피우면 하얀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 올라서 차에 꽉 차”’

마시는 윤이가 면허를 따기 전에 가끔 차를 얻어 타던 한 학년 위 아이다. 

“하이스쿨 교육은 아무나 못한대. 근데 브렛네 아저씨가 벌써 십 년 넘게 하고 있나 봐. 걔가 그러는데 자기 아빠가 이 일을 엄청 자랑스러워한대. 라이센스를 벽에 걸어 놓고 손님이 올 때마다 그거부터 자랑한다고 하더라고.”

윤이는 리츠 씨가 학교에 올 때 입고 온다는 멋진 제복에 대해서도 한참을 얘기하고 나서야 주말에 있을 파티에 대한 기대를 안고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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