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dball의 첫 모임을 알리는 이메일이 왔다.
주말 낮에 학교의 카페테리아로 모이라는 내용이었다. 매년 부모들이 졸업생을 위해 무도회를 열어 주는 전통이 있었다. 학부모들은 11학년 때부터 준비를 시작했다.
기숙 씨도 윤이를 위한 그랫볼 회의에 참석했다. 첫 모임은 파티의 테마를 정하는 자리였다.
뉴욕의 밤, 에펠탑과 센강, 1950's 댄스파티, 황금시대 등의 테마 발표 후 투표를 통해 1950's 댄스파티로 정해졌다. 레트로 풍의 푸드트럭 2대와 주크박스도 추가로 결정됐다.
앞으로 1년 동안 하이스쿨의 강당에는 가벽이 세워지고 아이들에게는 철저하게 비밀에 부쳐진 채 1950년대 감성의 무도회장이 꾸며질 것이다.
회의가 끝나갈 무렵 대표 엄마가 슬픈 소식을 전하게 되어 유감이라며 짧은 기도를 제안했다.
니나가 죽었다.
니나의 마지막을 위한 뷰잉 예배가 그녀가 다니던 교회에서 드려졌다. 흰 드레스를 입고 두 손을 가슴 깨 가지런히 모은 니나는 관이 아니라 침대에 누워있는 것처럼 편안해 보였다.
아흔이 가깝도록 정정했던 그녀는 ‘오늘’은 ‘하나님께 다시 허락받은 하루’라고 말하곤 했다. 그녀에게 있어 삶이라는 것은 아침마다 선물로 주어지는 하루의 연속인 것이었고 실제로 하루하루를 그렇게 살다 갔다.
다음 날 눈을 뜨지 못할지도 모르는 나이에 잠자리에 드는 기분은 어떤 것일까.
자신이 천국에 갈 것이라고 굳게 믿었던 그녀는 매일 밤 기대하는 마음으로 잠자리에 든다고 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다시 선물 같은 하루이거나 아니면 더 좋은 천국이거나.
그리고 그날 아침 아들이 깨우러 갔을 때 그녀는 더 좋은 그곳으로 가고 없었다.
니나는 천국이라는 말 대신 ‘영원히 사는 곳’이라는 말을 좋아했다.
“나는 이 세상을 사랑해”
그녀는 아프리칸 특유의 느릿하고 단어 사이를 끄는 듯한 억양을 가지고 있었다.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인가. 이 아름다운 세상에서 많은 것을 보았고 많은 일을 했지만,”
그녀는 시인처럼 말하는 법을 아는 아는 사람이었다. 시인처럼 말하는 법이 따로 있다면 그녀처럼 말하는 것일 거라는 얘기다.
“아직 못 가본 데가 더 많고 못 해본 일이 더 많아, 이해해?”
그녀를 보고 있으면 노년의 열정은 청년의 그것보다 더 힘이 있는 것 같아 보였다. 기숙 씨는 타이머가 멈추기 직전의 절박함 때문일 거라고 짐작했었다. 그러나 니나의 세계는 그녀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 크고 영구했다.
“그러나 영원히 사는 곳이 있으니 아무 것도 끝은 아니지. 알아?”
니나는 올드패션드 베이커리의 유일한 할머니였고, 많이 늙은 노인이었으며, 흑인 손님이었다.
니나가 가게에 들어오면 덜 늙은 할아버지들은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고 몸을 일으키거나 모자를 잡으며 예의를 차렸다. 그녀는 이 타운에서 아이들을 낳았고 그 아이들이 또 아이들을 낳도록 살아왔다.
그녀는 40년 동안 학교 앞 철길에서 아이들을 건네주는 일을 해왔다. 그 전에는 미들스쿨의 카운슬러로 일했다고 들었다. 기숙 씨는 이곳에 정착한 이후로 니나가 철길에 나오지 않는 날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아이들은 프리스쿨에 입학하는 동시에 니나의 친구가 되었고, 짐짓 어른인 척하는 시니컬한 표정의 사춘기 되어도 그녀 앞에서만은 천진하게 웃었다. 마을 사람들 모두가 그녀를 사랑했다.
일주일에 두 번 니나는 등교 시간이 지나면 베이커리에 와서 차를 마시며 기다렸다가 하교하는 시간에 맞춰 다시 철길로 갔다.
기숙 씨는 그녀가 오는 요일마다 두 시간 일찍 나오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노인들의 루틴은 분명하고 어김이 없어서 일찍 문을 여는 것을 들켜 니나에게 부담을 줄 염려는 없었다.
글랜데일로 이사 온 첫 해 봄날 기숙 씨는 니나와 친구가 되었다.
길가 주택의 잔디 마당에 자색 목련이 당당한데 그 그늘 아래 쪼그라든 체구의 할머니가 의자를 놓고 앉아 있었다. 잔 꽃무늬가 흑백으로 어수선한 원피스를 입고 어깨에 미색 스웨터를 걸치고 앉은 할머니 주변으로 자잘한 살림 도구들이 널려 있었다.
가라지 세일을 하려고 했었나 보다. 노인이 힘에 부쳐 물건들을 마저 들어 내놓지 못했겠거니 짐작이 되는 형상이었다.
“손주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야”
매우 품위 있는 억양으로 말하는 노인은 가까이에서 보니 훨씬 더 늙어 있었다.
“나는 짐을 정리하고 시니어 아파트로 가려고 해.”
“이 집에 혼자 사시나요?”
“지금은 작은 아들과 손자와 살고 있지만 나는 곧 노인 아파트로 갈 것이고 그들만 남을 거요”
손자를 그레이트그랜드선이라고 해서 증손자쯤 될 것으로 이해가 됐다. 그녀의 두 아들 중 작은 아들만 살아 있다고 했고 남편은 언제 돌아가셨는지 묻자 아주 아주 오래전이라고만 했다.
몇 해 전 늙고 홀아비가 된 작은 아들이 더 늙은 어머니가 있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큰 아들의 손자인 그릭이 왔다.
“우리 그릭은 아주 좋은 아이요.”
증손자 얘기였다
“우리 그릭 로즈는 하이스쿨의 체육 선생님이라오. 그는 나를 돌보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어. 나는 그가 가정을 이루기를 바라요.”
그릭이라고 할 때는 몰랐는데 로즈를 붙이자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로즈 씨요? 내가 그 사람을 알고 있는 것 같은데요?”
로즈 성을 가진 체육교사라면 기숙 씨가 잘 아는 사람이었다. 준이의 라크로스 팀코치인 그 로즈 씨가 분명했다. 공정하고 자신감 넘치는 청년으로 아이들이 좋아하고 잘 따랐다.
로즈 씨를 알고 있다는 말을 하자 니나는 입 끝이 광대뼈에 닿도록 환하게 웃었다.
“우리 그릭 로즈를 아는군요. 아아, 그를 알고 있어. 그는 매우 훌륭한 아이라오.”
“네, 그는 아주 좋은 선생님이라고 들었어요. 아이들이 그를 매우 좋아합니다”
“오, 하나님. 고마운 일이군요. 정말 감사한 일이에요”
그녀는 말할 수 없이 기쁜 얼굴로 고맙다는 말을 반복했다.
어디 좀 앉아야 할 텐데, 하고 니나가 두리번거리기만 할 동안 기숙 씨가 직접 찾아온 의자에 앉아서 손자 자랑을 듣는 사이 온다던 그 로즈 씨가 돌아왔다.
로즈 씨는 헤어질 때 기숙 씨와 악수를 하며 말했었다.
“니나와 대화를 나눠 주어서 감사해요. 우리는 그녀를 어디로도 보내지 않을 겁니다.”
니나의 장례식에는 거의 모든 마을 사람들이 온 것 같았다. 이례적으로 시장이 추도사를 했다. 시장은 아이 시절 니나의 손을 잡고 기찻길을 건넜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은 그녀의 아이들이 짐짓 어른인 척하는 시니컬한 나이가 되어 교회의 앞줄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이탈리아의 가곡인 ‘fenesta che lucive’에서 인용한 추도사를 시처럼 읊었다.
"아, 나의 니나는 죽었고,
다시 눈을 뜨지 않겠지만,
그러나 당신은 여전히 아름답게 보이는군요.
성직자들이여,
그녀의 등에 항상 불이 꺼지지 않게 해 주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