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른 나무통과 가지를 실은 트럭이 떠나자 윤이가 왔다.
가게 문을 열지 못해 미국 할아버지들이 하릴없이 서서 나무 베는 일을 참견하다 돌아간 다음이었다.
윤이는 11학년 주니어다. 아이는 들어오자마자 나무가 불쌍하다고 야단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밑동만 남고 잘린 나무는 보기에도 안쓰러웠다.
거기에 터를 짓고 살던 다람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어디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다람쥐들에게 내가 괜히 자른 게 아니라고, 밤새 불어대던 비바람에 뿌리가 드러나는 것을 니들도 보지 않았냐고 변명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엄마, 쟤 봐봐. 방금 지나간 애”
윤이가 제 엄마의 어깨를 잡아끌었다. 가게 창 밖으로 아이 하나가 막 지나가고 있었다. 뒷모습만 얼핏 보기에도 보송보송하니 앳돼 보이는 노란 머리 여자 아이였다.
“봤어, 엄마? 쟤가 작년에 커밍아웃을 했었어.”
“뭘 커밍아웃해?”
기숙 씨는 설마 내가 아는 그 커밍아웃은 아니겠지 하는 생각에 되물었다. 아무리 많이 봐도 이제 열 살은 되었을까?
“커밍아웃을 했다니까? 같은 학년 여자아이랑 전교생 앞에서 커밍아웃하고 둘이 손잡고 다니고 그랬어.”
두 아이가 전교생 앞에서 커밍아웃을 했다는 사실보다 저렇게 어린아이가 본인의 성적 취향을 발견했다는 사실이 더 놀라웠다.
“부모님이 얼마나 놀랬을까.”
“어우, 엄마. 놀라긴, 말도 마.”
윤이는 그런 걱정 말라는 듯 손사래를 쳤다.
“며칠 있다가 쟤네 엄마가 선생님들이랑 부모님들한테 이메일을 보냈어. 우리 딸이 성 정체성을 찾았으니 인정해 주고 격려해 달라는 내용이었대”
“아.”
중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라 직접 이메일을 받은 것은 아니었지만 들어서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알고 있었다고 해도 막상 앳된 아이의 모습을 보니 새롭게 놀라움이 일었다.
아이 엄마가 보낸 내용이 퍼지면서 작은 타운이 한동안 시끄러웠었다. 보수적인 동네라 보통 일은 아니었던 것 같다. 한쪽 아이 부모의 일방적인 지지로 다른 아이의 부모가 난감한 처지가 됐다고도 했다. 그러나 섣불리 항의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었을 것이다.
차별금지라는 게 그런 것이었다. 이성끼리의 교제였다면 모를까 아무리 부모라도 동성 간의 교제에 함부로 토를 달았다가는 소수자 차별 문제로 비화될 소지가 있었다.
학교에서는 애들이 말만 트이면 일찍부터 동성애를 가르치고 있긴 하다. 방법까지 아주 자세하게 가르친다. 그림까지 보여줘 가며 제대로 가르친다. 저학년 애들을 앉혀놓고 포르노가 따로 없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미국의 부모들 사이에서 아동 학대 논란이 일어나고 있다. 동성이고 이성이고 간에 노골적인 성교육을 거부하겠다는 거다.
학교에서 해열제 하나를 먹이려고 해도 부모의 동의가 필요한 나라가 미국이다. 생리통으로 배가 아파 뒹굴어도 부모와 연락이 안 되면 911을 불러서 실어 보내는 나라다. 그런 나라에서 일정 기간의 상담을 거친 후 트랜스젠더 호르몬을 아이에게 투여해도 학교에서는 부모에게 알릴 의무가 없단다. 법이 그렇다니 학부모가 들고일어날 만도 하다.
부모들이 권리 행사를 시작한 미국은 지금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공립 교육을 보이콧하는 움직임이 일어난다. 국가가 지켜주지 않으니 내 아이는 내가 지키겠다는 것이다.
이 나라도 과도기를 겪고 있는 것임에 틀림없다.
어쨌든 이 사건은 부모가 커밍아웃을 도왔던 아이가 저보다 한 살 많은 8학년 남자아이를 좋아하게 되면서 해프닝으로 끝이 났다.
“근데 쟤가 케빈이라는 애를 좋아하게 된 거야. 아, 엄마도 캐빈 알아. 작년 봄에 콰이어 콘서트 했을 때 미들 애들이 와서 게스트 공연했잖아. 그때 내가 잘 생겼다고 엄마한테 보라고 했던 그 바이올린.”
“미들 풋볼 가드라는 걔? 검은 머리?”
“응. 쟤가 캐빈한테 고백을 한 거야. 근데 캐빈이 어땠는 줄 알아?”
기숙 씨도 들은 내용이었지만 모르는 척 물었다. 저 외향적인 여자아이는 자신이 선택한 사랑에는 거침이 없는 모양이었다.
“싫댔대?”
“어우 그렇게는 못하지. 걔가 얼마나 젠틀한데. 이랬대, 나는 너의 취향을 존중하고 있어.”
젠틀하다는 소년은 한 살 어린 여자아이의 고백을 그녀의 성적 취향을 핑계로 예의 바르게 거절했다. 며칠을 울던 여자아이는 자기 엄마에게 커밍아웃할 때보다 더 당당하게 따졌다고 한다.
“왜 아이 말을 들은 거야. 엄만 어른이잖아. 난 겨우 아홉 살이었다고.”
커밍아웃할 때는 제 나이를 almost 10이라고 했다던 아이였다.
해프닝으로 끝난 일이었지만 당사자인 여자아이들은 상처를 입었다. 당장의 소년들은 자기주장이 분명했던 소녀들을 이성의 대상으로 보지 않게 됐다.
어쩌자고 부모는 어린 자녀의 성 정체성을 그렇게 빨리 인정했을까. 바란 것은 아니었겠지만 덕분에 아이 엄마는 매우 세련되고 진보적인 사람이라는 명성을 얻었다.
“아이를 이기지 못하는 거지.”
일을 마치고 와 있던 수지가 말했다.
“개방적인 부모라는 건 결국 자식을 이길 자신이 없다는 거야. 자식하고 질 싸움을 왜 하겠어. 지느니 차라리 먼저 인정하는 게 현명한 거잖아.”
개인적인 주장임을 감안하더라도 일리가 없지는 않았다. 자식을 키우다 보니 그랬다. 부모의 말이 먹히지 않는 자식은 터진 둑과 같았다.
사춘기의 아이들은 뻔뻔하고 염치없었으나 지혜로워서 부모의 사랑이 무한하다는 것을 눈치채고 있었다. 아이들의 무례함은 부모의 사랑을 담보로 하는 협박이었다. 그런 아이들에게는 지는 부모가 되는 것보다 개방적인 부모가 되는 편이 현명한 선택이리라.
“성 문제가 아니라도 부모가 약해서 오히려 아이의 정체성에 혼란을 준 건 아닌가 몰라. 미국 사회가 그걸 조장했던 거고.”
부모가 약했다는 것은 수지의 의견일 뿐이지만 미국 사회가 그걸 조장했다는 건 분명해 보였다.
미국에는 개인의 어떤 주장도 법으로 금지하지 못한다는 법이 있지 않은가. 그러나 현명한 부모에게는 그 법을 뛰어넘는 권한이 주어져 있었다. 지혜와 교훈이었다. 미국 사회는 부모의 그 권한에 기대어 지탱해 가고 있는지도 몰랐다.
수지가 일침을 박듯이 말했다.
“아이들은 그냥 두면 부모도 갈아치우려고 들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