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의 나를 되돌아보며
작년의 나를 반성한다.
내가 되려 하지 않았다.
전략적 선택이라 생각했지만, 두려움에 의한 타협이었다.
내 기준이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 제시하는 기준을 어느 정도 맞춰주는 게 나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야 사람들이 날 더 좋아할 것 같아서,
그랬을 때 사회가 나에게 더 호의적인 것 같아서.
체감해 본바. 맞기는 하다.
단점으로는 나의 본성을 잃어갔다.
이제야 느낀다.
내 내면이 단단해진 것과 별개로 내 정체성은 흐려졌다.
취향, 좋아하는 것, 선호도, 호불호 이런 것들이 모호해졌다.
그래도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아니었다.
이게 혼란스러운 것은 너무나 대립되는 두 자아가 내게 모두 존재한다는 것이다.
1. 예술, 재밌는 것, 아무렇게나 하는 것을 하고 싶은 인생 독고다이 내갈 길 내가 만드는 마이너함을 추구하는 자아.
2. 사회적 통념, 또는 집단 무의식 차원에서 도출된 어느 정도의 미, 어느 정도 그럴듯한 삶을 살며 대중 속에 숨고자 하는 자아.
왜 대중 속에 숨고 싶은가.
주변 사람들 눈에 띄고 싶지 않아.
나만의 비범함을 쉬이 공개하고 싶지 않아.
그럴듯해지기 전 그 시행착오들을 주변에 보여주고 싶지 않아.
알게 모르게 주변 반응에 많은 영향받을 나를 알거든.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도 평범하고 그럴듯한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나를 둔갑하고 싶어.
이런저런 말과 관심을 상대하고 싶지 않거든.
그냥 어디 회사 다녀라고 하면 길어지지 않을 말들을 굳이 상대하고 싶지 않거든.
그래서 결론이 안 난다.
작년에는 나름 둔갑을 해봤다.
어떤 사람에겐 그래도 여전히 특이한 사람이었겠지만,
꽤 많은 상황에서 평범한, 일반적인 대중 중 한 명이었을 것이다.
둘 중에 하나만 선택해야 할 것 같아 괴롭던 때가 있었다.
너무나도 삶의 방향성이 달라질 것 같아서.
이제는 공존할 수 있음을 느낀다.
느낀다는 건 그냥 문득 나라면 그렇게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이다.
코어가 되는 자아는 개성 있고, 다른 길을 가 무언가 해내고 싶은 자아다.
이제는 그 자아를 키워줄 때이다.
단순한 것들부터 시작해 보자.
취향을 업데이트하자.
우선은 지금 기분에 어떤 음악이 필요한지,
집을 어떻게 가꾸고 싶은지,
어떤 음식을 먹으며 살고 싶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