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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내리던 태안

예상치 못한 길 위의 하루

by 다소느림

아침 7시.
우리 가족은 태안을 향해 출발했다.
창밖엔 맑은 하늘이 열려 있었고,
차 안에는 “오늘은 좀 여유롭게 놀자”는 기대감이 가득했다.


하지만 여행길은 늘 그렇듯,
시작부터 작은 변수들이 따라왔다.


군산쯤 도착했을 때부터 차가 막히기 시작했다.
서해안 고속도로는 거의 정지선이었다.
아버지는 아침을 꼭 드셔야 했기에 휴게소에 들렀는데,

그게 또 전쟁이었다.


군산휴게소(수정).jpg 군산휴게소의 주차장

주차장은 빼곡했고,

줄은 끝이 없었다.


잠깐 들렀다 가자는 말이
“휴게소 체류 1시간”으로 바뀌는 데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간신히 빠져나와 도로로 나왔지만,
도착 예정 시간은 이미 1시간이나 늘어나 있었다.
갓길로 쏜살같이 달려가는 얌체 운전자들을 보며
속으로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사실 도로가 막히는 이유도 결국 그런 끼어들기 때문이 아닐까.
모두가 자기 순서를 지키면 길은 흐르는데,
누군가 새치기를 하면 흐름이 끊긴다.
세상사도 어쩌면 비슷할지도 모른다.


서천쪽으로 오자 길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이제 진짜 여행 시작이다.”
그 순간 창문 밖으로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다.


잘못 찍은 네비, 뜻밖의 해수욕장


꽃지해수욕장.jpg 태안 안면도의 꽃지해수욕장

하지만 또 한 번의 해프닝.
우리는 네비를 잘못 찍는 바람에

‘꽃지해수욕장’으로 도착했다.
태안 세계튤립꽃박람회 대신
파도소리가 먼저 우리를 반겼다.


비가 포슬포슬 내리던 해변,
우산 하나 들고 잠깐 바다를 걸었다.
흙냄새와 짠내,

그리고 가을비 냄새가 섞인 공기가 묘하게 좋았다.
아마 이런 우연한 순간이야말로
여행의 진짜 선물일지도 모른다.


기대 없이 갔는데, 기대 이상이었다


다시 네비를 찍고 도착한 꽃박람회.
비 오는 날이라 한산할 줄 알았는데,
주차장부터 이미 만차였다.
생각보다 훨씬 규모가 컸고,
입장료는 1인당 만 원.
살짝 놀랐지만 “왔으니 들어가자”는 마음으로 표를 샀다.


코스모스.jpg
해바라기.jpg
태안꽃박람회의 코스모스와 해바라기

안으로 들어서자
빗방울에 젖은 튤립과 국화, 코스모스들이
묘한 색감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비가 오히려 풍경을 더 깊게 만들어줬다.


엄마 아빠는 처음엔 “비 와서 뭐 보겠냐” 하시더니
금세 꽃 사이를 걷고 계셨다.
나는 사진을 거의 백 장은 찍어 드렸다.
비를 맞으며 웃는 부모님의 모습이
이상하게도 어릴 적 기억 속 장면처럼 느껴졌다.
그 순간만큼은
‘꽃’보다 ‘사람’이 더 예뻤다.


꽃길 끝에 남은 시간


전체 코스는 생각보다 크진 않았다.
한 시간 남짓이면 충분히 한 바퀴를 돌 수 있었다.
트랙터 기차를 타면 편하게 볼 수도 있었지만,
우리는 그냥 걸었다.
어차피 꽃구경은 천천히 걷는 게 맞으니까.


꽃잎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
옆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그리고 부모님의 담담한 대화.
그 모든 게
한 폭의 풍경처럼 마음속에 남았다.


끝나지 않은 변수


점심은 근처 식당에서 간단히 해결했다.
주문이 밀려 조금 기다렸지만
음식은 금방 나왔다.

사실 우리음식보다 앞에 먼저 나와야 할 음식들이 있었지만

바쁘셨는지 순서가 꼬인듯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일단 배고파서 한젓가락 뜨는 순간,
허기진 몸에 따뜻한 칼국수 한 그릇이 그렇게 맛있을 줄이야.

숙소에 도착했을 땐
모두의 얼굴에 “이제 좀 살겠다”는 미소가 피었다.


생각보다 훨씬 깔끔했고,
테라스도 넓었다.

기대하지 않은 곳에서

행복과 작은 위안을 얻게 되었다.


끝없는 길 위의 작은 행복


태안의 꽃박람회는
화려한 이벤트가 아니라
가족의 시간 그 자체였다.
길이 막혀도, 비가 내려도,
결국엔 웃게 되는 그런 하루.

이 하루는, 다시 돌아볼 이유가 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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