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사라진 사다리

길이 막힌 시대

by 다소느림

올라갈 사다리가 사라졌다


예전엔 그랬다.
열심히 일하면 집을 살 수 있고,
조금씩 모으면 나아질 거라 믿었다.


작은 원룸에서 시작해 전세로,
전세에서 내 집으로 옮겨가는 게
삶의 자연스러운 순서처럼 여겨지던 시절이 있었다.


그게 이제는 ‘옛말’이 되어버렸다.

지금의 청년들에게 부동산은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대출은 막히고, 금리는 오르고,
전세사기 뉴스는 매일 쏟아진다.
이제는 “꿈을 꾸는 것조차 사치”가 되어버린 사회.

그 누구도 위로 올라갈 사다리를 남겨두지 않았다.


청년의 꿈을 막다


전세사기를 막겠다는 명분 아래
정부는 전세대출과 보증을 죄었다.
문제는 그 사다리가
사기꾼의 것도 아니고,
평범한 청년들의 유일한 출발선이었다는 사실이다.


갭투자를 막겠다는 조치는 맞다.
하지만 그 사이,
‘안전하게 살고 싶은 사람들’의 발판까지
함께 걷어차였다.


전세는 사라지고 월세만이 남았고,
월세는 저축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결국, 청년들은 살 수도, 모을 수도,

시작할 수도 없는 구조에 갇혔다.


정책은 숫자를 보고, 사람은 현실을 본다


정부는 통계를 말한다.
“주택가격 안정세.”
“거래량 감소.”
“투기 수요 억제.”


하지만 통계의 숫자 뒤에는
오늘도 퇴근길 원룸 전기요금 고지서를 들여다보는
청년들의 한숨이 있다.


정책은 숫자를 잡지만,
사람은 현실을 살아야 한다.

집값은 잡혔을지 몰라도
삶은 더 벼랑 끝으로 밀려났다.


그 끝엔 무엇이 남을까


사다리를 걷어찬 사회는
결국 자기 발등을 찍는다.
누군가는 이미 꼭대기에 올라섰고,
이제 아래를 돌아보지 않는다.


하지만 위에 오른 그들이 잊은 게 있다.
사다리를 걷어차면
언젠가 아래에 남은 사람들이
다른 길을 찾는다는 것.


그 길이 분노가 되든, 체념이 되든,
결국 사회 전체의 균형을 무너뜨린다는 것.


다시, 사다리를 세워야 한다


우리가 필요한 건 새로운 구호가 아니다.
“청년 주거 대책”이라는 문장도,
“공공임대 확대”라는 말도
이젠 너무 많이 들었다.


정말 필요한 건
‘희망의 구조를 복원하는 일’이다.
누군가 위로 올라갈 수 있는 최소한의 발판.
노력과 성실이 다시 통할 수 있는 사다리.
그게 사라진 사회에 미래는 없다.

사다리를 걷어차는 시대는 오래가지 않는다.
결국 누군가는 다시 그 사다리를 세워야 한다.


그리고 그 시작은,
이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 우리 모두의 시선에서 비롯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AI의 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