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동킥보드가 남긴 혼란
한때 ‘미래형 이동수단’이라 불리던 전동킥보드는
이제 도시 곳곳의 불편함으로 남았다.
편리하다고, 혁신이라고
모두가 반겼던 시절이 있었다.
버스 한 정거장 거리,
지하철역과의 짧은 이동,
그 사이를 잇는 작은 이동수단으로서
킥보드는 분명 유용했다.
하지만 지금 거리를 나가보면,
그 ‘편리함’이 얼마나
무책임하게 흩어져 있는지 금세 알 수 있다.
가게 앞에 아무렇게나 세워둔 킥보드,
쓰러져 길을 막은 채 방치된 킥보드,
밤길을 무단으로 달리는 킥보드.
시민들은 점점 말한다.
“이제는 편리함보다 불편함이 더 크다”고.
코로나 시기,
대중교통 이용이 줄자
정부와 지자체는
공유킥보드를 빠르게 허용했다.
“비대면 시대의 새로운 교통수단”이라는 명분이었다.
그런데 제도는 따라가지 못했다.
면허증 인증은 허술했고,
청소년들은 부모님 계정으로
쉽게 타고 다녔다.
심지어 두세 명이
한 대에 올라타는 장면도 흔했다.
그 사이 사고는 늘었다.
보행자와 부딪히는 사고,
차량 사이를 가르며 달리다
갑자기 튀어나오는 사고,
‘킥라니(킥보드+고라니)’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위험한 장면이 이어졌다.
결국 도시의 질서는 흔들리고,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많은 사람들은 모른다.
이 공유킥보드의 뒷면에는
수많은 개인사업자가 얽혀 있다는 사실을.
거리의 킥보드를 회수하고, 충전하고,
다시 지정된 위치에 세워두는 사람들.
그들은 대부분 ‘리밸런서’라 불리는 자영업자다.
하루 종일 도시를 돌며
수십 대를 수거하고 충전해 배치하는 일.
건당 몇 천 원 남짓의 수익이지만,
그 일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래서 지금 이 구조는
단순한 교통 문제가 아니다.
이미 하나의 산업 생태계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 안에는 본사, 투자자, 보험사, 광고업체,
그리고 개인사업자까지 엮여 있다.
이제 정치권도 이 문제를 외면하기 어렵게 됐다.
최근에는 ‘킥라니 퇴출법’이라 불리는
전동킥보드 전면 퇴출 법안이 국회에 발의됐다.
교통사고가 급증하고,
청소년 무면허 이용이 사회 문제로 떠오르자
“이제는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하지만 반대편의 목소리도 크다.
“이건 산업 말살이다.”
수많은 청년 자영업자와 스타트업,
투자 구조가 얽힌 상황에서
단칼에 ‘퇴출’로 갈 수는 없다는 것이다.
정치권은 눈치를 본다.
청년층은 편리하다고 말하고,
중장년층은 위험하다고 말한다.
표심이 엇갈리는 문제 앞에서,
누구도 명확한 해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결국 남은 건 ‘책임의 사각지대’다.
길에 방치된 킥보드를 치우는 사람도,
그로 인해 다친 시민의 피해를 보상하는 주체도
명확하지 않다.
도시는 여전히 혼란스럽다.
누구의 편리함을 위해 만들어졌는지,
그 편리함의 대가가 누구에게 돌아가는지
이제는 다시 물어야 할 때다.
전동킥보드는 사라질 수도 있고,
새로운 형태로 다시 남을 수도 있다.
하지만 확실한 건,
“관리되지 않은 혁신은 결국 혼란이 된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