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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깊게 물든 가을

순창 강천사에서 마주한 단풍의 온도

by 다소느림

고요로 시작된 아침, 붉은빛이 깨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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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강천사 입구는 유난히 조용했다.
해가 완전히 오르기 전,

옅은 안개가 절 마당을 덮고 있었다.
그 사이로 단풍잎들이 천천히 깨어나는 모습은
가을의 시작이 아니라,

끝자락을 곱게 받아들이는 듯했다.


산문을 지나 걷기 시작하자,
짙은 붉은빛과 노란빛이 길 위를 덮었다.
내장산의 광활한 산세와 달리

강천사는 작고 단정했다.


그 덕분일까.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이
조용히,

그러나 또렷하게 빛나고 있었다.


“작아서 더 깊은 가을.”
그 말이 어쩐지 마음속에 오래 남았다.


작지만 꽉 찬 풍경, 더 선명하게 물든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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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이 유독 진하게 느껴진 건
내장산보다 작아서일지도 모른다.
넓은 산에서는 덜 물든 가지들도 눈에 띄지만,
강천사에선 시야에 들어오는 풍경이 모두 붉었다.

길은 길지 않았지만,
그 안에서 계절의 변화를 다 볼 수 있었다.


붉은색이 노란색으로 번지고,
노란색이 다시 갈색으로 스며드는 순간들.
작은 계곡을 따라 흐르는 물소리마저

단풍빛을 닮아 따뜻하게 들렸다.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가을이 조금씩

내 마음 속으로 물드는 기분이었다.


고요가 붐빔으로 변한 오후, 가을을 쫓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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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의 고요는 오래가지 않았다.
하산하려는 오후 무렵,

갑자기 사람들의 발길이 몰려왔다.
단체 관광버스에서 내린 산악회 회원들이
줄지어 입구를 메웠고,

평일임에도 산길은 금세 북적였다.


내장산만큼은 아니었지만,
강천사의 규모를 생각하면 꽤 많은 인파였다.
‘이 작은 산에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올 줄이야.’
단풍의 절정은

사람의 마음까지 움직이는가 보다.


누군가는 사진을 찍고,
누군가는 벤치에 앉아

도시락을 펼쳤다.
그 소란스러움 속에서도

이상하게 따뜻했다.
가을을 붙잡으려는 마음이 닮아 있었으니까.


향기로 마무리된 하루, 발효차 한 잔의 여운


산문을 나서기 전,

작은 찻집에 들렀다.
순창답게 발효차를 내어주는 곳이었다.


처음 마셔보는 향이었지만,
진한 단풍빛처럼 은은하게 퍼졌다.


정읍에서 마셨던 쌍화차가

‘전통의 맛’이었다면
이곳의 발효차는 ‘발견의 맛’이었다.
익숙하지 않은 향이었지만,

이상하게 편안했다.


산 아래로 흐르는 공기와

잘 어울리는 맛이었다.

그 한 잔의 온기가
가을의 마지막 장면을

부드럽게 덮어주었다.


작아서 더 가까웠던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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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장산이 ‘가을의 스케치북’이라면,
강천사는 ‘가을의 엽서’ 같았다.
짧고 작지만,

한 장면 한 장면이 뚜렷하게 남는다.


가을은 그렇게 지나갔다.
붉게 물들어 있었고,
따뜻하게 스며들었고,
한 잔의 차향으로 마음에 남았다.


짧아서 더 선명하고,

작아서 더 따뜻한 가을.
순창 강천사에서의 하루는

그렇게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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