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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

퇴사, 그리고 다시 시작

by 다소느림

오늘부로 나는 백수가 되었다.

또 한 번, 일을 그만뒀다.

조금 더 일찍 그만뒀다면 좋았을걸.

모두가 안타까워하지만, 사실 가장 아쉬운 건 나다.


익숙하지만, 이 순간은 늘 어렵고 힘겹다.

실패에 익숙해져서 겉으론 아무렇지 않은 척하지만, 마음 한구석이 아프다.
그렇다고 예전처럼 멈춰 있을 수만은 없다.

이제는 나도 무언가를 보여줘야 한다.

조바심이 나지만, 급하면 오히려 모든 게 어긋난다는 걸 이젠 안다.


스물아홉이 되어서야 비로소 쉬게 되었다.

어른이 된 이후, 제대로 쉬어본 적이 없던 것 같다.
어릴 땐 어른이 되면 자유롭게 날아다닐 수 있을 줄 알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사람에게 세상은 아무것도 내어주지 않는다.

결국 내 탓이다.

열심히 하지 못한 내 탓.


나는 정말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열심히 사는 '척'만 했는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보여지는 '열심히'만 있었던 것 같다.
정작 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도 모른 채로 말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부터 완전히 새로운 분야에 발을 들였다.
그동안 전혀 알지 못했던, 낯설고 생소한 세계.
바로 인공지능(AI) 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인공지능 사관학교’의 첫 수업을 들었다.
수업은 어려웠고, 솔직히 졸리기도 했다.

무슨 말인지도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도 끝까지 들었다.

하지만 역시 이해가 잘 안 됐다.

그도 그럴 것이, 내 전공은 경찰행정학이고
경찰이 되는 꿈 하나만을 바라보며 살다 결국 실패.

용돈 벌려고 카페, 식당에서 일했던 게 전부인 내가 인공지능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스무 살부터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처음은 카페였고, 이후 식당 단기 알바도 병행했다.
군대 가기 전엔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꽤 짭짤하게 벌기도 했고,
그 재미에 군대 다녀온 후에도 알바하며 공부했지만, 결국엔 실패.
학교를 다니며 요식업을 꿈꾸기도 했지만, 대우가 늘 문제였다.

요식업은 누구나 꺼리는, 이른바 ‘3D 업종’이다.

몸으로 하는 단순하고, 그나마 돈은 되는, 효율적인 일이었다.
크게 노력하지 않아도 먹고살 만큼은 벌 수 있었던 일들.


그런데 사람이 일만 하다 보면, 점점 ‘배’가 고파진다.
욕심이 생기고, 나이도 먹고, 머리도 커진다.

그리고 어느덧 스물아홉.

소위 말하는 ‘아홉수’가 되었다.


나는 늘 시작이 화려했다.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하리라”는 말처럼 되고 싶었지만, 정작 나는 시작만 번지르르하고 끝은 늘 흐지부지했다.
요식업계에서 꼭 성공하겠다고 호언장담했지만, 이번에도 결국 그만두게 됐다.

내 인생, 왜 이럴까 하소연하고 싶지만…
결국 이 모든 것도 내 선택이었다.


그래서 또다시 선택했다.
인공지능 개발을 배우겠다.

사실 두렵다.

잘할 수 있을까?

또 중간에 포기하게 되는 건 아닐까?
또 흐지부지 끝나게 되는 건 아닐까?


하지만 이젠 시간이 없다.
스물아홉.

보여줘야 할 시기다.
이제는 이를 악물고, 모든 설움을 딛고 나아가야 한다.


사실은 좀 쉬다 다른 일도 해보고 싶었지만, 이상하게도 타이밍이 절묘하게 맞았다.

백수가 되자마자 바로 새로운 길을 걷게 됐다.
이런 타이밍, 내게는 처음 있는 일이다.

그래서 이번엔 왠지 다를 수도 있겠다 싶다.
이번엔 정말, 후회 없이 끝까지 해보고 싶다.


그래서 이 글도 쓰고 있다.

아무것도 남지 않을까 봐, 지금 이 순간을 기록해보려 한다.

사실 나는 글을 잘 쓰지 못한다.

어릴 적 책도 많이 안 읽어서 글이나 국어 쪽 재주는 형편없다.
하지만 그냥 끄적여본다.

지금까지와는 뭔가 다르고 싶어서.

다르게 보이고 싶어서.


그래도 나 같은 비전공자들이 의외로 많다.

늘 이런 분야는 나와는 무관하다고만 생각했는데, 어떻게든 발은 들여놓았다.
오늘은 첫날이라 크게 배운 건 없지만, 오리엔테이션 내용을 요약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오리엔테이션 요약


목표 설정

 -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


가이드

 - 꿈을 이루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피드백

 - 그 꿈에 다가가기 위한 올바른 길은 무엇인가?



사실, 나는 지금도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잘 모르겠다.
경찰의 꿈을 접은 이후, 요식업을 했지만 정말 내가 좋아서 한 건지 의문이다.

다만 나는 ‘오래’ 하는 데는 자신 있다.

카페는 총 5년, 식당은 4년 넘게 했다.
성과는 없었지만, 나름 열심히 일했다.

그래서일까. 아직도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게 뭔지는 모르겠다.
목표란 게 거창한 건 아닌데, 한 번쯤 찾아나서보려 한다.


“나는 AI로 무엇을 하고 싶은가?”로 질문을 바꿔야 할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시작했으니, 뭐든지 AI를 붙여보자!

‘꿈을 이루기 위한 방법’은 아직 잘 모르겠다.
오늘이 첫날이기도 하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나도 알아가야 한다.
인공지능을 전공한 동생도 막연하다고 할 정도니까, 나라고 다를 리 없다.


앞의 두 가지가 아직 명확하지 않으니, 세 번째 피드백은 좀 더 시간이 지난 후 설정해봐야겠다.

그리고 첫날부터 과제가 주어졌다.
어렵진 않지만, 생각할 거리는 많은 과제다.


첫 번째 과제


내가 이루고 싶은 목표를 생생히 그려보기

목표와 관련된 채용 공고 5개 찾아보기

그 분야에서 꼭 필요한 역량 고민해보기


지금은 잘 몰라도, 차차 배워가야 한다.
하지만 확실한 건, 나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건 ‘돈’이다.


억만금을 바라는 건 아니다.

단지 어떤 분야든 그걸로 먹고살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나의 목표를 실현시켜줄 5개의 회사도 차근차근 알아볼 생각이다.
그를 위해 열심히 해야겠지.

아직은 부족하니, 필요한 역량도 고민해봐야겠다.


말하다 보니 말이 길어졌지만, 시작이란 건 원래 어렵다.

하지만 언제나처럼 열심히 하다 보면 하나씩 재주가 생기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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