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 예방의 이름으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들
오늘로 인공지능사관학교 3일차.
오늘의 주제는 AI 윤리였다.
"AI 윤리"라고 하면 다소 막연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간단히 말하면, AI가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도록 안전하고 공정하게 작동하게 만드는 도덕적 기준이다.
"AI가 잘못된 판단을 내리거나 사람을 차별하지 않도록, 미리 정해놓은 안전장치"
AI는 사람처럼 판단하고 학습할 수 있다.
그런데 만약 AI가:
여성보다 남성을 더 우대하고,
잘못된 정보를 학습해 위험한 판단을 내리며,
우리의 개인정보를 무단 수집해 넘긴다면?
→ 이 모든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AI 윤리 기준이 반드시 필요하다.
인간 중심성: AI는 사람을 도와야 한다.
공정성: 차별 없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투명성: AI의 판단 과정이 설명 가능해야 한다.
책임성: 문제가 생겼을 때 책임을 질 주체가 있어야 한다.
안전성: 해킹, 오작동 없이 안전하게.
사생활 보호: 개인정보는 보호받아야 한다.
지속 가능성: AI는 미래 사회와 환경에 긍정적으로 기여해야 한다.
이처럼 AI 윤리는 그 자체로 의미 있고 중요한 개념이다.
하지만 오늘 수업을 듣다가, 나는 유럽연합의 인공지능 백서(White Paper on AI) 를 보며 한 가지 우려를 느꼈다.
유럽연합은 AI를 "신뢰할 수 있게" 만들기 위해 다양한 가이드라인을 내세우고 있다.
예를 들어, 공공서비스(교통, 에너지, 교육, 폐기물 관리 등)의 효율성과 지속가능성을 높이고, 시민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법 집행 기관에 AI 도구를 제공한다고 명시했다.
또한 이렇게 덧붙였다:
"그들의 권리와 자유를 존중하기 위한 적절한 안전장치가 마련되어 있어야 한다."
겉보기엔 균형 잡힌 문장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문장을 깊이 들여다보면, ‘감시’의 정당화라는 위험한 이면이 숨어 있다.
나는 대학에서 경찰행정학(법학) 을 전공했다.
법률을 공부한 입장에서, AI가 인간의 행위를 ‘감독’한다는 개념은 매우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떠올려보자.
미래 범죄를 예측해 사전에 범인을 체포하는 그 설정.
언뜻 보면 시민을 보호하는 이상적인 방식 같지만, 이는 무죄추정의 원칙을 정면으로 위배한
"형사 피고인은 유죄 판결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무고한 사람으로 추정된다."
대한민국을 비롯한 민주주의 국가들의 형법 대원칙이다.
하지만 AI가 ‘행동 패턴’을 근거로 범죄 가능성을 예측해 사람을 체포한다면?
그것은 사법의 영역이 아닌, AI의 판단에 의해 인간의 권리를 침해하는 일이다.
"법은 기술을 따라가지 못한다"고들 말하지만, 나는 오히려 그 반대라고 본다.
법은 기술을 따라가지 ‘않는’ 것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법에는 인간의 존엄성과 정의에 대한 ‘고의적 지연’이 존재한다.
그 신중함이 인간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이기 때문이다.
AI가 ‘고도로 정교한’ 예측을 하더라도, 행동 패턴에는 수많은 변수가 존재한다.
그 변수 하나로 억울한 피해자가 생길 수 있다.
백서에서는 "적절한 안전장치"가 있다고 말하지만,
과연 그 안전장치가 진짜 우리를 지켜줄 수 있을까?
나 역시 대학 시절, 이 주제로 토론을 한 적이 있다.
그리고 오늘, 그 주제가 다시 내 앞에 나타났다.
기술의 발전은 분명 우리 삶을 더 편리하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엔 우리가 반드시 지켜야 할 선이 있다.
예방은 중요하지만, 예방을 이유로 인간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
범죄는 예방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절차적 정의다.
만약 내가 AI의 판단에 따라,
‘범죄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감시되고, 심지어 체포된다면?
아무런 죄를 짓지 않았는데 사회에서 낙인이 찍힌다면?
그 억울함은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까?
기술은 우리의 삶을 더 편하게 만들 수 있지만,
기술이 인간의 자유를 침해하는 순간,
그것은 문명의 진보가 아닌 퇴보다.
AI 윤리는 단순히 기술 개발자들이 지켜야 할 체크리스트가 아니다.
우리 사회의 철학과 가치를 반영한 기준선이다.
문제를 삼지 않으면 문제가 되지 않지만,
문제를 외면하면 더 큰 문제가 된다.
작은 위험 신호에도 귀를 기울이는 것,
그게 진짜 윤리다.
AI 시대, 피해 예방이라는 명분 아래
우리가 놓치고 있는 건 없는지
끊임없이 질문해야 한다.
기술을 신뢰하되, 맹신하지 말 것.
이것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