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끝난 자리

끝나지 않은 위험

by 다소느림

연인 사이의 폭력이 일상이 될 때


최근 뉴스를 보면 ‘데이트폭력’이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다. 사랑이라는 이름 뒤에 숨은 폭력은 더 이상 은밀하지 않다.
대전에서, 26세 남성이 전 여자친구를 흉기로 살해했다.
울산에서는, 이별을 통보받은 남성이 병원 주차장에서 전 연인에게 흉기를 휘둘렀다. 피해자는 중태에 빠졌다.

둘 다 공통점이 있다.
범행은 우발이 아니었다.
사전에 준비했고, 실행 계획을 세웠고, 피해자는 이미 여러 차례 ‘위험 신호’를 보냈다.


울산에서 벌어진 일


7월 28일 울산 북구, 한 병원 주차장.
그날 피해자는 두 번이나 경찰에 신고했던 사람이다.
머리채를 잡히고, 차량 키를 빼앗기고, 집 앞을 배회하는 전 남자친구를 견디며 경찰의 보호를 받았다.
그러나 법원은 ‘서면 경고’와 ‘접근·통신 금지’ 조치만 허락했다.
흉기를 든 그가 주차장으로 향했을 때, 제도는 이미 한 발 늦었다.


대전에서 벌어진 일


같은 달, 대전에서는 다른 비극이 일어났다.
장재원, 26세. 그는 몇 달 전부터 피해자에 대한 분노와 배신감을 쌓아왔다.
흉기를 준비했고, 실행 장소를 탐색했다. 심지어 농약과 제초제를 구입해 살해 시도를 반복했다.
피해자는 그의 오랜 표적이었고, 도망칠 길은 없었다.


제도의 그늘


두 사건 모두 피해자가 ‘살려달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러나 제도의 손길은 그 신호를 막아내기에 부족했다.
서면 경고, 접근금지, 통신금지.
이 조치들은 종이에 적힌 활자일 뿐, 흉기 앞에서는 무력했다.

울산경찰청은 이제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아도 경찰이 직권 개입”할 수 있도록 매뉴얼을 강화했다.
하지만 이런 변화가 진작 있었다면, 그 주차장과 골목길에서의 비명은 줄었을까?


사랑이 끝난 뒤를 지키는 법


사랑이 끝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사랑이 끝났다는 이유로 목숨을 빼앗는 건, 단순한 ‘연인 간 다툼’이 아니다.
그건 살인이다.
우리는 이 범죄를 ‘데이트폭력’이라는 완곡어로 부르며 현실을 희석해왔는지도 모른다.

이제 질문해야 한다.
누군가의 죽음 이후에만 강화되는 제도,
피해자의 신고를 ‘참고자료’로만 여기는 관행,
그리고 ‘개인사’라 치부하는 사회적 무관심.
이 세 가지를 그대로 두고, 다음 사건을 막을 수 있을까?


우리 모두의 일


울산과 대전에서 벌어진 일은 특별한 사건이 아니다.
그건 우리가 사는 도시 어디에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피해자가 살려달라는 신호를 보냈을 때,
그 신호를 잡아주는 건 법과 제도, 그리고 사회 모두의 몫이다.


사랑이 끝난 뒤에도,
누군가의 삶이 무사히 이어질 수 있는 사회.
그게 우리가 만들어야 할 ‘안전한 이별’의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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