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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웅 Apr 05. 2023

우리가 남이가?

글로벌 다양성 이해 (문화 차이, 제20화)

우리가 남이가?’ 

'패거리' 정치 - 사색당쟁(四色黨爭)

'세몰이'와 '표계산'



우리가 남이가?’ 

'우리끼리'가 판치는 이런 틀 속에서는 “우리가 남이가?”라는 한마디 말은 천금만큼 무겁다. 이 말의 유행은 전직 검찰 간부가 경상도 모 복집에서 누군가에게 한 말이다. '내가 알아서 해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남이 아니면 친척이란 말인데... 남을 친척으로 취급하는 ‘이웃사촌’이라는 말도 이에 다름 아니다. 사실, 농경사회의 이웃은 친척이거나 그 이상이었다. 그러니, '우리' 사회에서 우리는 ‘이웃’과 꼬이다 보면 되는 일이 없고 매사가 피곤해진다. 그래서 ‘나는 나, 너는 너’라는 관계보다 ‘우리’라는 인간관계에 유독 신경을 쓸 수밖에 없고, 어떤 집단이든 한 집단의 구성원이 되어야 마음이 놓였다. 


그리고, 그 이웃을 많이 갖는 것이 힘과 성공의 척도가 되었다. 문제가 생기면 이웃이나 그 이웃을 통해 해결하였다. 중국의 '꽌시'(관계)를 보더라도 똑같다. ‘우리’ 속의 누군가가 나에게 내가 가진 권한, 인맥, 영향력 등을 이용하여, 뭔가 해달라 하면 그에게 잘 맞춰주어야 한다. 그래야 ‘의리 있는 인간’이 되는 것이니, 나로서는 안면을 내세워 청탁하지 않을 수 없고, 그게 되어야, 비로소 내가 ‘우리’ 속에서 위상을 갖게 되는 것이다.

  

힘자랑(?), 결혼식장의 줄지어 늘어선 화환(출처:조선일보)

이처럼, 끈으로 얽히고설킨 인연은 이해관계까지 겹치면 목숨까지 불사한다. 그래서, 누군가를 만나면 나이, 지연, 학연 혈연 확인 필수였다. 이처럼 친인척(혈연)은 물론, 동향(지연)이나, 학교 선, 후배는 한동안 ‘관계의 문화’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자녀들 결혼식장에 가 보면 그런 저런 많은 사람과의 ‘관계’를 과시하듯 화환을 줄지어 세워 놓고 부조금 행렬이 줄을 잇는다. 저절로 힘이 느껴진다. 굳이, 농사철에 한 마을 이웃끼리 나누는 상부상조나 ‘품앗이’를 들먹이지 않아도 이런 유산은 '우리'라는 공동체가 이루어 놓은 '금자탑'이다.


뿐만 아니라, 대형 식당이나 휴일 유원지 등에 가면, 얼마나 많은 이들이 무슨 '00모임', '000회' 등의 이름으로 수십 명씩 떼를 지여 다니며, 먹고, 마시고, 크게 떠드는지...? 이들은, 마치 '우리'의 일원이 되면, 내가 큰소리로 떠들어도 우리 패거리가 있으니, 아무도 감히 나를 제재하지 못할 것이라는 편안한 마음으로 행동하는 듯하다. 그러니, 남의 불편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뻔뻔함이 곳곳에 넘쳐난다. 만약, 누군가가 '시끄럽다'고 항의하면, 그쪽 패거리가 일제히 들고 일어나 '이런, 저런 공격을 가할지도 모른다'는 정도는 알아야 한다.    


세월호와 '해피아'(출처: KBS)

비슷한 모습으로, 우리 역사에는 공과 사를 구분치 못하는 모습이 수없이 등장한다. ‘우리’라는 범주 내의 ‘이웃’과 유착의 ‘끼리끼리’ 인간관계는 지금껏 발생한 대형 부정부패 및 비리사고의 원인이었다. 세월호 침몰사건으로 모두가 아팠다. 사고조사 과정에서 우리 공무원 사회의 병폐인 나누어 먹기, 봐주기, 돌려 막기 등 '관피아', '해피아' 등의 패거리 관계가 적나라하게 불거졌다. 힘 있는 관가 주변에는 이들처럼 ‘악어와 악어새’가 ‘우리’ 사이의 ‘의리’라는 명분으로 공존하는 사례가 많았다. 이들 앞에 '규정'이 무슨 소용일까?


'패거리' 정치 - 사색당쟁(四色黨爭)

유교의 삼강오륜(三綱五倫)에서 오륜(倫)은 충, 효와 부인, 노약자, 친구에 대한 '사람의 관계'를 강조하였다. 이 중 친구(붕, 朋) 관계는 '붕우유신'(朋友有信)이라 해서 친구지간의 '신뢰'를 강조하기도 했지만, 한자의 '신(信)'은 중심이라는 뜻도 있으니, 친구를 '마음의 중심에 둔다'는 의미로도 해석 가능하다. 그래서일까?, 뜻이 맞아 남이 아닌 친구가 되면 서로 붕당(朋黨, '패거리')을 만들어 어울리기를 좋아하였다. 그리고, 이 같은 관계의 ‘우리가 남이가?’와 같은 선비들이 어울리던 '패거리' 정치는 조선시대 사색 당쟁의 근간이 되었다. 


이들 '패거리' 선비들은 붕당을 지어 ‘기호학파’니 ‘영남학파’니 하는 지역이나 학연을 들먹거리며 '우리끼리' 관직을 나누고 행세를 하였다. 그리고, 자신들의 누구에게든 반대하거나, 도전하는 자에 대해서는 모두가 합심해서 그런 시도를 물리쳤다. '우리'니까, 남이 아니니까... 예컨대, 유교의 윤리학에 따라 ‘예’를 숭상하던 조선 왕조는 왕비 등 망자 (亡者)의 의례를 논의할 때에도 ‘우리’와 또 다른 ‘우리’가 서로 다른 관점으로 대립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불거진 감정대립은 상대방을 무자비하게 죽이는 ‘사화 (士禍)’조차 마다하지 않았다. 


임진왜란 전 정세판단에도 이런 메커니즘이 작동하였다. 국가와 민족의 안위보다 내 당파나 내 편의 이익이 먼저였다. 그래서 한쪽이 "일본이 침략을 해 올 것 같다"라고 하면, 다른 한쪽은 "그럴 리가 없다"라고 주장하였다. 실제 "뭐가 어떻다"의 문제보다 그저 상대에 대한 반대가 더 앞섰다. 그렇게 당하고도 모자라, 불과 40여 년 뒤의 병자호란 때도 그랬다. 당파사이 갈피를 못 잡던 왕이 워낙, 못났던지 ‘청 태종’은 자기 목숨만 구걸하는 왕을 살려주는 대신, 조선을 마음껏 유린하였다. 왜란과 호란으로 조선은 쑥대밭이 되었다. 그리고 200여 년, ‘우리’ 가문의 이익을 앞세운 세도정치로 나라는 멸망하였다. 진즉, 바꿨어야 할 무능한 왕조였다.


'세몰이'와 '표계산'

쪽지예산(출처: 정의당)

오늘날 국회는 어떨까? 매년, 예산편성 때 여야 불문, 지역구 예산확보를 위해 예결위원들에게 매달리는 과정에서 ‘쪽지문화’라는 게 있다고 한다. 이들은, 따낸 예산 반영을 마치 자신의 능력인양 과시하기도 하지만..., 공짜 점심은 없다. 신세를 지면 어떤 형태로든 배상해야 한다. 주거니, 받거니 하는 입법 청원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자연히 ‘우리’라는 ‘관계’의 문화 – ‘패거리’ 정치의 영향력에 얽매일 수밖에 없다. 우리 정치도 일본처럼, 한때, 정치권에 무슨, 무슨 계라는 인맥 위주의 계파 정치가 많았다. 


가파른 복지예산 증가율(출처: 조선일보)

그런데, 아직도 이런 생각이 우리 바탕에 깔려 있는 듯하다. 우리 정치권이나 일부 지식인들은 국가적 사안을 논의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기보다, 집단별 정치적 이해관계를 계산하며 명분논리에 집착한다. 정치인의 불체포 특권은 논외로 하더라도, 서로가 싸우는 와중에 내편, 네 편은 상대에 대한 포용이나 설득은 없다. “먹고 먹히는 정글의 법칙”이다. 심지어, 같은 편 가운데서도... 


이들에게는 국가의 미래보다 ‘우리’ 패거리의 생존을 위해 선거의 승리가 중요하니, 선심성 복지 정책은 봇물을 이룬다. 20세기 이후, '포퓰리즘'으로 망한 나라가 수없이 많지만, 표를 얻는 데는 그만한 방법이 없으니 내 돈한 푼 안 들이고 '손 안 대고 코푸는' 그 달콤한 유혹을 이기기 힘들다. 


국가적 사안의 논의나 비전도 유사하다. 국가 지도자의 이미지를 떠나 추종자들의 생존을 책임져야 하기에 ‘모두의 관심’에 따라 '표 계산'에 몰두하며 '편 가르기'를 서슴지 않아야 한다. ‘찬성이 유리한지? 반대가 유리한지?’는 논리적 근거나 원칙보다는 세몰이 여론에 좌우된다. 황당한 것은 그런 표 계산에 따라 결정된 사안조차 어느 순간 정파적 이익에 불리하다 싶으면, 새로운 '딴지걸기' 수법조차 마다하지 않는다. ‘우리’가 불리하다 싶으면, 느닷없이 사소한 반말에 시비를 걸고, 말꼬리에 목숨을 걸며 거품을 물고 감정 대립에 몰두한다. 적어도, 제삼자의 눈에는 그렇게 비친다. 그런데, 이게 그렇게 유용하게 써먹던 '우리가 남이가...'의 막장 모습이다. 그러고서도, 이런 걸 ‘정치’라고 강변하는데..., 그들은 국민들이 ‘우매’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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