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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웅 Oct 20. 2023

이슬람 이집트의 자연환경

태양의 왕국, 사막의 나라 이집트


태양의 왕국, 사막의 나라 이집트

- '깜신' : 50일간의 '모래 폭풍'  

이집트는 북위 23.5까지인 적도회귀선 보다 다소 북쪽에 위치하나, '사하라' 사막의 영향권으로 연중 50미리도 안 되는 강수량에다가 햇살이 쨍쨍한 무덥고 건조한 날씨가 연중 지속되는 사막성 기후가 전국토의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집트 하면 누구나 상상하는 피라미드, 스핑크스, 카르낙 등 신전이나 왕가의 무덤, 아스완, 아부심벨, 나일강가의 피라미드나 신전들 등등 많은 문화유산을 가져서 세계적인 관광 대국으로 자리 잡았다. 이런 유적들은, 모두가 사막이라는 기후 변화로 인한 자연환경에 남겨진 고대 인류의 찬란한 문화유산이다.  


모래바람 부는 모습

이집트 '카이로'의 봄철에는 '깜신'이라는 황색 모랫바람이 50여 일 동안 불어온다. '깜씬'은 50이라는 뜻이다. 사하라 사막에서 불어오는 미세 먼지 폭풍인, 깜신이 불어오면 창문을 굳게 닫은 집 창문 문틀에도 노란 모래가루가 노랗게 쌓인다. 차고 속의 차도 온통 먼지로 뒤집어씌고... '카이로' 도시 전체가 텁텁하다. 우리의 황사는 여기에 비하면 약과다. 혹시라도, 사막 지역을 차로 여행하다가, 이 '캄씬' 바람을 만나면 조심해야 한다. 대형 버스도 흔들거리고, 아스팔트 도로 곳곳에도 모래더미가 쌓여 운전에 제한을 받는다. 일종의 '사막의 모래 폭풍'이다. 이게 불면, 얼른 가까운 마을로 들어가는 것이 상책이다. 필자는 요르단 여행 중에 잔뜩 긴장한 채 이런 경험을 하였다.


- 알렉산드리아와 지중해 연안 휴양지

'알렉산드리아' 전경

사막 기후라지만 볼거리는 많다. 수도 카이로에서 시나이 반도 반대 방향인 서북쪽 고속도로로 약 200Km를 달리면, 이집트 제2 도시로 지중해 항구도시인 ‘알렉산드리아’(아랍어 이스칸다리아)에 도착한다. 이곳은 장대한 자연풍광을 자랑하며 일 년 내내 외국 관광객이 붐비는 매우 서구적인 도시다. 


기원전 4세기경, 알렉산더 대왕이 자신의 이름을 붙여 처음 세운 이래 그를 계승한 '프톨레마이노스' 왕조의 수도로 지중해 역사상 가장 중요한 도시의 하나였다. 왕국의 마지막 여왕 ‘클레오파트라’는 자신의 미모를 이용하여 로마의 정치 세력을 품었다. 2천 년 전, 그녀가 ‘폼페이우스’, '카이사르 (씨저)', ‘안토니우스’ 등 로마제국 최고의 장군들과 삼각관계 사랑이 얽힌 ‘러브 스토리’를 나누었지만, 왕국은 결국 멸망하고 로마의 속국이 되었다. 


알렉산드리아에서 휴식 후 해안선을 따라 서쪽 리비아 국경으로 달리는 고속도로를 타고 가면, 붉은 해안, 흰 해안, 황금 해안 등 이름이 붙은 아름다운 해변에 수많은 리조트가 즐비하다. 물론, 내국인용이 아니라, 유럽 관광객을 겨냥한 것이다. 좋긴 하지만, 어려운 경제로 주변 인프라가 열악하여 불황에 허덕이는 모습이었다. 


- 사하라 사막 (백사막, 흑사막)

백사막 전경

알렉산드리아에서 리비아 국경 쪽으로 계속 가면 ‘마르사 마투르’를 지나 청정지역 ‘사하라’ 사막에 도달한다. 특히, '사하라' 사막의 끝자락에 위치한 ‘백사막’과 ‘흑사막’은 풍광이 특이하여 많은 서구 관광객이 즐겨 찾는 곳이다. 이중, ‘백사막’은 수 만년 전, 바닷속 산호초가 굳어 화석화된 뒤 지각변동으로 융기되고 다시 풍화작용을 겪어면서 만들어진 2-5미터 높이의 흰색 바위기둥이 수 천 개나 솟아있어, 이들 수천 개의 돌기둥 암석을 보는 것이 압권이다. 그리고, 이 돌의 조각으로 온통 흰색 천지라 하여 '백사막'이라 부른다. 


흑사막 전경

거기에서, 또 얼마를 더 달리면  이번에는 ‘흑 사막’- 마치, 까만 조약돌 등으로 뿌려놓은 듯한 장대한 크기의 까만색 사막-이 펼쳐진다. 그런데, 이는 모래가 아니라 조약돌 같은데 무슨 우주 공간의 물체가 타면서 그 잔해 조각을 온 천지에 뿌린 듯하다. 손가락만 한 크기의 까만 돌의 모양이 마치 배관용 파이프 같은 것이 불탄 잔해 같은 느낌이어서 매우 흥미로웠다. 


사하라 사막의 밤하늘

여기서 더 들어가면 클레오파트라가 목욕했다는 '시와' 오아시스 연못, 그리고 사막의 온천수 (규모가 꽤 크다)와 오아시스 등이 있다. 이곳에서야 비로소 우리가 일반적으로 상상하는 모래사막을 만나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시 이곳에서 독일의 '롬멜'의 전차군단과 '몽고메리'의 영국군이 접전을 벌였다. 


사막 속의 오아시스에 거주하는 현지인 베두윈 족의 안내로 이런 모래 언덕 위에서 시동을 끈 자동차를 타고 미끄러져 내려오는 놀이도 경험할 수 있고, 밤에는 베드윈이 구워주는 양고기를 먹고, 사막에서 텐트를 치고 숙영 하는데 나름대로 놀고 즐길 수 있어서, 캠핑 치고는 매우 특이한 경험을 하게 된다. 


특히, 밤에 모닥불 옆에 둘러앉아서 가족들과 함께 올려다보는 사막의 별빛은 어찌 그리 가깝게 느껴지든지… 청량하고 깨끗한 공기로 인하여 마치, '밤하늘 별들이 눈앞으로 쏟아져 내리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수많은 별들을 가깝게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른 아침 새벽녘에는 먹이를 찾아 텐트 주위를 맴도는 ‘사막의 여우’도 볼 수 있었다. 


- 수에즈 운하와 시나이 반도

'카이로'에서 시나이 반도로 가려면, ‘카이로’ 동쪽 방향으로 고속도로로 한 시간쯤 달리면 수에즈 운하(폭 80m, 길이 162Km)에 도달한다. 여기서 남쪽으로 가면, 홍해 바다에서 스킨 스쿠버(다이빙)로 유명한 ‘후르가다’ 휴양지로 가고, 그냥 동쪽으로 가다가 운하 밑 ‘지하 터널’을 통과하면 시나이반도로 들어간다. 


수에즈 운하 양쪽은 사막이다

시나이반도는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잇는 삼각형 모양의 반도로, 수에즈 운하에 의해 본토로부터 분리된다. 면적은 남한보다 약간 작은 6.1만 평방 킬로(동서 210Km, 남북 약 385Km)에 이르며, 동쪽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과 접경하며, 서쪽은 수에즈운하, 북부는 지중해 연안을 따라 ‘라파’를 거쳐 팔레스타인 난민촌이 있는 ‘가자’ 지구로 연결된다. 반도의 중앙에는 ‘기디’령(패스), ‘미틀라’령 등이 이스라엘과 연결되고, 남쪽은 홍해와 접해 있다. 이 때문에, 아프리카에서 아시아 지경으로 이어진 이 사막은 4차례에 걸친 중동전쟁 (이집트-이스라엘)의 주요 전쟁터였다.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는 선박. 멀리서 보면 마치, 사막을 항해하는 배처럼 보인다.

시나이반도로 접어든 뒤, 뒤를 돌아보면 좌, 우로 평탄하게 끝없이 펼쳐진 메마른 모래사막 가운데, 어느 순간 커다란 배의 '마스트'가 보이면서 서서히 움직이는 모습이 눈앞에 전개된다. 마치 신기루처럼, 우리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구경거리이다. 


시나이반도는 기독교도에게 잘 알려진 성지 순례지이다. 구약성경 '출애굽기'에서 '모세'가 유대민족을 이끌고 파라오의 이집트를 탈출하여, 갈라진 홍해(홍해의 어원은, 연안의 벌거숭이 흙산들이 석양에 바다에 비친 모습이 '붉다'해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바다를 건너 39년간 광야 생활을 하였던 곳이다. 그런 탓으로 시나이반도에는, 모세가 십계명을 받았다는 시내산, 모세산 혹은 호렙산으로 불리는 '시나이산‘이 있고, 조금 떨어진 곳에 '불꽃 떨기나무'가 있었다는 '성 캐서린' 수도원이 있다. 현재, 시나이 반도는 이집트 영토지만 이집트 군은 주둔하지 않는다. 다만, 이집트 공군의 비상주 비행장이 근처에 있어 이집트 국방부는 이곳에 매년 무관단 여행의 일환으로 무관단 가족들을 데려다주었다. 기독교 성지에 다녀오라고...  


시나이 반도의 성 캐서린 수도원

이 수도원 성지 때문에 많은 한국인 성지순례단도 몇 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와서 사막 한가운데에 있는 이 외딴곳 수도원을 둘러본다. 그리고, 모세가 여호와로부터 '십계명'을 받았다는 '시나이'산에서 해돋이를 보려고 한밤중에 당나귀를 타고 정상으로 올라가기에 많은 현지인이 한국 사람들의 열정에 놀라워한다.


모세가 십계명을 받았다는 시나이산

과거, 한국인 관광객이 ‘시나이’ 산(시내산) 성지 순례와 이스라엘 국경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두어 차례 테러를 당한 적이 있다. ‘시나이’ 지역은 그리 위험하지는 않지만, 현지인의 낯선 방문객에 대한 경계감은 조금 느낄 수 있다. 테러가 이미 있었던 곳이라, 언제든 테러가 다시 발생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늘 긴장하고 조심해야 한다. 특히, 안전 문제는 우리 외교부나 여행국의 경보를 주의 깊게 들어야 한다. 


'샤름 엘 세이크'에서 본 맑은 홍해바다

시나이 사막지대인 남쪽 끝부분에는 이집트 최대의 해양 휴양도시인 ‘샤름 엘 세이크’가 있다. '샤름 엘 세이크'는 1968년 제3차 중동전에서, 이스라엘이 점령한 뒤 무더운 사막 지를 세계적으로 유명한 휴양도시로 개발하여, 전혀 아랍답지 않은 분위기이다. 중동평화회의 등 이집트가 주관하는 주요 국제회의는 거의 이곳에서 개최하며, 미국, 이스라엘, 유럽, 러시아 등의 수많은 휴양객이 사막 해안선을 따라 산재한 고급 호텔에서 홍해의 아름다움을 즐긴다. 호텔 바로 앞 백사장에서 시작되는 맑은 홍해 바닷물의 산호초 주위에는 팔뚝만 한 형형색색 온갖 물고기를 손으로 잡을 듯 가까이서 볼 수 있고, 가까운 곳에는 '스킨 스쿠버'(스쿠버가 손꼽는 세계 3대 명소), 스노클, 요트 등이 가능하여 1년 내내 관광객들로 붐빈다.


가문 (부족)과 신앙이 결합된 이슬람 공동체 '움마'  

이집트는 농경 사회인 서구나 동양과 달리, 무덥고 황량한 중동과 아라비아 반도, 그리고 북아프리카를 아우르는 아랍 지역의 일부로 유목이 주요한 일상이었다. ‘유목민’들은 건조한 기후 탓으로 오아시스나 간간히 나있는 풀을 찾아 함께 이동하며 살아간다. 가족과 떨어지면 죽을 수밖에 없는 곳이다. 그런 특성상, 자기가 속한 부족이나 가정에 충실하였다. 또한, 물자가 부족한 사막이나 초원에서는 약탈과 전쟁 문화가 지배하였다. 때문에, 유목민 부족과 부족 사이에는 협의와 평화가 중요하였다. 따라서, 이들은 형제를 자청하였고, 만날 때마다 관습에 따라 서로 '허그'하며 빰에 가볍게 키스를 하고, 차를 나누는 등 진하게 형제애를 나눈다. 


이처럼, 형제애나 충성의 대상은 부족이나 확대된 가문이다 보니, 자연스레 각 부족의 족장들은 더욱 강력한 통합력으로 주민을 결속하게 만들어 전통적인 ‘부족주의(혈통주의)’가 확립되었다. 비록, 이집트는 '파루크' 왕조가 '나세르'의 군부 쿠데타로 사라진 후 70여 년 이상 군부가 집권을 이어오고 있지만, 여전히 가문이 중요한 나라다. 유목사회가 가부장적 사회구조와 남아 선호사상, 그리고 가족과 가문 중심이 되기 때문에, 유목 위주 아랍은 왕국이나 국가보다 가문이나, 부족이 훨씬 더 강한 유대감을 가졌다. 


그런데, 이들 이집트 유목 아랍인들은 초기부터 이슬람이라는 종교를 받아들였으며, 7~8세기 경 이슬람의 급격한 확장으로 이집트에 들어온 이주민이다. 이들은 이미 이슬람 종교와 부족이 함께하는 공동체였다. 참고로 알아야 할 점은, 이들이 이집트의 주류로 정착하여 자리 잡았지만, 찬란한 이집트 문명을 건설한 이집트인과는 다른 족속이다. 예컨대, 여러 문화 유적지에서 "원 달라! 원 달라"를 외치는 아이들은 이들 아랍인들이다. 


그런데, 종교나 도덕(율법)이 앞서는 이런 류의 통치체제는 우리 역사에서도 대부분을 차지하였다. 고려는 불교를, 조선은 유교사상을 건국이념으로 내세웠고 왕조의 통치이념에 접목하였다. 종교와 부족(민족)이 결합되어 완고한 정치체제를 형성하였던 면에서는 이슬람과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이슬람을 믿고, 아랍어를 하고, 아랍의 풍속을 존중하기만 하면 피부색이나 출생에 무관하게 아랍 형제가 되는 포용적 자세와는 다소 거리가 있었고, 관점의 차이에 따라 본질이 흐려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말 유교적 이념에 따라 고종의 '단발령'에도 죽음을 불사한 유학자들의 결기는 오늘날 이슬람 원리주의자의 완고함에 못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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