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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웅 Oct 20. 2023

오스트리아 음악, 그리고 '왈츠'와 무도회(Ball)

신년 음악회와 '빈필' 하모닉

접근하기 어려운 오페라 공연

왈츠와 춤의 나라

선남선녀의 로망, 우아하고 화려한 무도회


아름다운 산과 강, 그리고 호수의 나라 오스트리아

오스트리아 잘츠캄머굿 지역

필자는 미국 텍사스의 '샌 안토니오', 캘리포니아의 휴양도시 '몬트레이', 그리고, 캔자스 시티 근교의 '포트 레븐워쓰' 등에서 교육받고 근무하는 동안 "미국은 자연환경이 참 좋은 나라구나!"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오스트리아의 자연환경이나 기후조건, 그리고 삶의 여건은 이들보다 정말로 아름답고, 쾌적하며 깨끗하였다. 


이처럼 뛰어난 자연환경 탓일까?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중의 하나라는 비엔나는 소득 수준도 높지만, 베토밴, 모차르트 등 유명한 음악가 배출은 물론, '요들' 송이나 '고요한 밤, 거룩한 밤' 등의 '캐럴' 송이 나온 음악적 인프라가 훌륭한 도시로서 유명하다. 그리고, 음악이 있는 만큼  오페라, 춤 무도회 등의 수많은 행사는 물론, 패러글라이딩, 산악 스키 등 각종 스포츠 이벤트가 일 년 내내 이어져 직업 이외의 다양한 취미생활로 지루할 틈이 없는 곳이다. 


신년 음악회와 '빈필' (비엔나 필하모니)

문화 콘텐츠하면 오스트리아도 한 몫한다. 오스트리아는 서구에서도 음악과 춤의 나라로 자리매김하였다. 신성로마제국의 후예로 자처하던 합스부르크 왕가의 수도 '비엔나'는 하나님만을 중심에 두는 ‘중세 암흑기'를 거치며 발전된 '종교 음악'의 중심지였다. 이곳은 고전음악의 3대 거장인 '하이든', 베토벤’, ‘모차르트’ 등을 비롯하여 음악사의 주요 인물이 활동하였던 무대였고, 지금껏 그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아름다운 음악의 일상과 더불어, ‘비너 왈츠’라는 섹시한 춤과 함께 어두운 겨울밤을 활기차게 보낸다. 


문제는 필자가 제대로 된 준비 없이 거대한 음악과 춤의 문화에 뛰어든 것인데... 춤 이야기는 아래에서 다루기로 하고, 제일 먼저 접한 음악회가, 우리에게 잘 알려진 ‘노이야르 콘체르트(New Year’s Concert: 신년음악회)'였다. '신년음악회'는 오스트리아 제국 멸망 이후 중지되었다가, 독일이 급팽창하던, 1939년부터 매년 이어온 행사로, '비엔나'의 유명한 음악전당 ‘무지크페라인(Musikverein)’에서 1800년대 모든 유럽 왕가의 춤의 양식인 '왈츠' 춤을 지배하던 합스부르크 왕가 '궁정 오케스트라'의 전통을 이어받은 ‘빈 필(Wien Phil)’ 하모닉이, '주빈 메타', '리카르도 무티' 등 세계 유수의 거장 지휘자를 초청하여 매년 신년맞이로 개최하는데, 그 행사 수준이나 화려함으로 인해 세계적으로 유명해서 입장권을 구하기가 쉽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행사에는 항상, 오스트리아 대통령이 참석하며, '합스부르크' 왕가의 전통에 따라 국방성이 매년 1월 1일 행사에 주재 무관 부부를 함께 초청해 준다. 그 바람에, 대사 등 다른 외교관도 필자를 부러워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새해 첫날, 일부 TV에서 연주를 방영하기도 한다. 하지만, 필자는 우리 유행가도 별로 잘 알지 못하는 그야말로 완벽한 음치(?)여서, 막상 초청장을 받은 순간 어떤 설렘이나 기대도 없었을 뿐 아니라, 서너 시간 연주하는 요한 슈트라우스와, 모차르트 등 거장들의 곡을 감상하기에는 수준이 너무 낮아서인지 지루해서 혼이 났다. 약간 위안이 되는 것은 그나마, 나중에는 의외로 경쾌한 '폴카'나 느린 '왈츠', 행진곡 등등이 연주되는 동안 뭐가 뭔지 잘 모르는 가운데서도 옆 사람들 따라 박수도 치고 하면서 나름대로 즐겼던 것 같다.  

    

'뮤직페어라인'에서 연주 중인 '빈필'  

그런대로(?), 첫 해 행사를 넘겼지만 음악에 대한 이해가 없어서는 정말안 되겠다” 싶어, 부담이 많았다. 다행히, 현지 유학생인 남편을 따라왔다가 필자의 사무실에서 일하던 비서로부터 음악회에서 연주되는 '왈츠의 왕'이라는 ‘요한 슈트라우스 2세’가 작곡한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요한 스라우스 1세'의 '라데츠키 행진곡' 등 세계인의 갈채를 받는 곡에 대한 설명과 그들 부자지간에 얽힌 이야기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몇, 몇 작품을 중심으로 설명을 듣고 감상법(?)을 조금 알게 되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오스트리아 인사와 대화에서 소외될까 염려되어 더 알려고 노력하였는데, 어느덧 알면 알수록 재미를 느껴 이제는 그런 곡들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 

 

비엔나에는 약 800여 명의 한국 유학생이 음악을 전공하고 있었다. 당시, 우리 대사관에서는 현지 문화 이해증진 차원에서 음악 전공 유학생의 음악회를 대사관 강당에서 열도록 해주고, 오페라 공연에 대한 한국어 안내 책자를 만들어 유학생을 초청하여 설명회를 듣는 등 많은 관심을 쏟았다. 그리고, 이들로부터 괜찮은 연주회나 오페라를 소개받아 찾아가는 등 각종 연주회에 조금씩 익숙해지자 음악이 조금씩 다가왔다. 물론, 비용 문제로 '빈 필' 연주회는 접근이 쉽지 않았지만... 하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빈 소년 합창단'의 연주회는, 7, 8월을 제외하고는 ‘호프부루크’ 궁전의 일요일 오전 9시 미사에 참여하면 그 합창곡을 들을 수 있었다.  


접근하기 어려운 오페라 공연

음악에 대한 여러 노력에도 불구하고, 오페라는 쉽지 않았다. 공연 전에 소책자를 얻어 미리 읽어보고 배경 스토리도 알고 가보았지만 음악회와는 달리, 음악을 부르는 언어조차 모르니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럼에도, 오페라하우스 공연은 필자의 막귀에도 뭔가 음악이 좋고 생동감이 있었다는 생각이다. 겉만 느꼈다고나 할까... 그리고, 그런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니 스스로에게 대견하고 마음이 좀 더 풍성해진 것 같다.


비엔나 '오페라하우스' 외관

'비엔나'의 중심에 위치한 ‘오페라하우스’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궁전이었던 '호프부르크'에서 가깝다. 여기에서는, 7-8월을 제하고는 연중 거의 매일 오페라나 다양한 공연이 열린다. 가격은 1인당 20만 원대 전후로 만만치 않다. 하지만, 학생들에게는 조금 불편한 좌석을 저렴하게 팔기도 한다. 


그런데, 비엔나 '오페라하우스'에는 좀 특이한 관중석이 있다. 이는 칼을 찬 군인을 위해 만든 장교용 관중석이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오스트리아는 제1차 세계대전까지 세계적인 군사 대국이었다. 왕국 시절 군인의 사회적 위상이 높았던 만큼, 당시에 칼을 찬 군인이 자리에 앉지 않고 기대어서 공연을 볼 수 있도록 배려한 장치가 여전히 남아있어 과거의 영광을 되새길 수 있다. (요즘은 이 장교용 관중석을 운용하지 않는다). 그리고, 오페라하우스는 7-8월에는 휴장이다. 만약에, 이 기간 중 오페라를 즐기고 싶으면, 알프스 끝자락의 '보덴 제' 호수가의 독일 도시 '콘스탄츠'나, 오스트리아 도시 '브레겐츠'에 가면 아름다운 호숫가의 전경도 즐기고, '요술피리' 등 유명한 오페라를 예술적으로 장식된 호수 위 무대에서 오페라를 감상할 수 있다. 


왈츠와 춤의 나라

오스트리아는 만주 대륙의 중북부에 해당하는 북위 47도 정도로, 겨울은 눈이 많고, 춥고 음산한 바람이 부는 계절이다. 하지만, 이들은 오히려 이 겨울철 내내 스키, 음악, 오페라 춤 등을 즐기며 즐겁고 활기차게 보내려고 한다. 동계 월드컵에서 ‘엘 마이어’ 등 세계적인 스키 선수가 많이 탄생하였지만, 음악에서도 ‘모차르트’, ‘요한 슈트라우스’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음악가가 많이 나왔다. 이처럼, 음악에 좋은 와인까지 있으니… 춤이 없을 수 없다. 오스트리아 사람들은 춤을 잘 춘다. 몇 사람이 모이기라도 하면 금방 음악과 함께 춤을 춘다. 


어릴 적부터 웬만한 가정 행사에서 부모, 형제, 조부모와 함께 춤을 추고, 고교 정규 과목에도 춤이 포함되어 있어, 이성과 정식으로 교제하는 기회도 된다. 우리식 중매제도 대신 춤추는 시간에 배우자를 고를 기회를 갖는 셈이다. 미국 (사립) 고등학교 학생들도 Prom 등으로 년간 두어 차례 유사한 행사를 개최하지만 춤을 제대로 못 추니 무도회의 원조격인 오스트리아와는 격이 많이 다르다. 오스트리아의 무도회에서 추는 춤은, 3/4박자의 경쾌한 스텝으로 '합스부르크' 왕가의 귀족문화를 통해 전수된 ‘Winner Waltz (비엔나 왈츠)’이다. 


실용적인 미국과 달리, 오스트리아에서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귀족문화를 통해 전수된, 이른바 ‘Ball’이라고 불리는 ‘전통 무도회 문화’가 굉장히 활성화되어 12월부터 3월까지 겨울 내내 펼쳐진다. 외교, 국방부 등 정부 각 부처별은 물론, 민간인들도 회사나 직업별로도 이발사 Ball, 빵집 주인들 Ball, 회계사 Ball 등 약 2~300여 개의 Ball(무도회)을 12월 중순-3월 초까지 쉴 새 없이 개최하여 전통 사교춤인 비엔나 왈츠를 추거나, 가면무도회 등으로 길고도 엄습한 겨울을 밝고 즐겁게 보낸다. (일부 관광 회사는 Ball List를 발행한다) 


선남선녀의 로망, 우아하고 화려한 무도회 

Opera Ball에 입장하는 선남선녀들 

이런 무도회 행사에 세계 각지 저명인사들이 참석하기 위해 비싼 돈을 지불하고 오래전부터 예약한다. 참가 비용은 무도회 수준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1인당 100달러부터 시작한다. 비엔나의 '오페라하우스 무도회' (줄여서 Opera Ball)에는 미국의 '할리우드' 스타 등 세계적 저명 명사들이 참석하며, 동양인으로는 유별나게도 많은 일본인이 거의 1,000달러 이상하는 비싼 입장료를 내고 예약하여 1년 이상 기다린다. (좌측 사진참조)


무도회마다 전통 사교춤인 3/4박자의 경쾌한 ‘비엔나 왈츠’가 주가 되지만, 이브닝드레스나 연미복을 잘 차려입은 수 백명의 선남선녀들이 짝을 지워 엄청나게 큰 궁전의 드넓은 플로워(마루) 위에서 각종 음악에 맞추어 함께 춤추는 장면을 보면, 영화에서나 보던 장면들 그대로이다. 주로 큰 예술건물이나 고성(古城) 등에서 개최되는 무도회장에는 대연회장 외에 여러 방이 있어 왈츠가 지겨우면 다른 방으로 가서 지르박, 차차차 등 다양한 춤도 추고 고고 등 막춤을 추기도 하고, 일부는 '가면무도회'를 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새벽 3시쯤 되면 행사는 서서히 막을 내리고, 행사 막판에는 ‘똠볼레’라는 일종의 경품행사도 하면서, 긴 겨울밤을 즐겁게 보낸다. 재미있는 것은 '쥬커베커'라는 '빵집주인들 Ball'에 가면 입장료보다 훨씬 많은 빵을 경품으로 한아름씩 주기도 한다. 


이처럼 많은 무도회 중에서도, 오스트리아 국방부는 관례에 따라 국방장관 내외가 주관하는 ‘장교 Ball’을 옛 궁전인 호프부르크 궁에서 전통식으로 개최한다. '장교 Ball'에서 귀빈으로 초청된 국방부 인사와 주재 무관들이 입장하는 동안, 사관생도와 여자 친구들 100쌍이 도열(사진 좌측에 흰 드레스를 입고) 하며 귀빈을 맞이한다. 그러고 나서, 장관 내외와 귀빈, 그리고 사관생도들이 나란히 춤을 추는데 옛 모습 그대로로 매우 품격이 높은 무도회로 알려져 있다. 무관은 '장교 Ball'외에, 사관학교 Ball, 부사관 Ball, 각 부대나 병과의 다양한 Ball에 귀빈으로 초청되어 겨우내 바쁜 시간을 보내며, 이런 행사를 통해 많은 인사와 친교를 나누게 된다. 


장교 Ball에 입장하는 필자(오른편 세 번째 흰옷) 내외

이처럼, 아름답고 화려하게 보이는 행사지만, '왈츠'에서는 누군가가 나의 부인에게 춤을 청하면, 나도 가만히 있지 않고 그의 부인에게 답례하는 것이 예의였다. 하지만, 춤을 못 추니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 신세였다. 낯선 행사에서 필자가 안절부절못하고 있을 때, 일본 무관 내외가 우리 내외를 참 많이 배려해 주었었다. 그 내외는 필자처럼 나무토막처럼 딱딱하게 굳어서 그저 피하고 싶은 마음으로 뻘쭘하게 앉아있는 사람에게 Open Mind로 접근하여 춤을 리더해 주었다. 그가 아내의 춤을 리더해 주는 동안, 일본 무관 부인 '요리꼬'는 필자에게 처음으로 '비엔나 왈츠'를 가르쳐 주고 함께 춤을 춰주었다. 여성이 리더해 준 것이다. 필자로서는 못 추는 춤을 추어야 하니 혹시 상대방 발이라도 밟을까 봐 온몸이 땀으로 흥건히 젖을 정도였고...

 

출국 전 무관교육을 받을 때, 미리 '여러 춤을 배워 오라'는 전임자의 권유도 받았고, 경비 지원도 가능하였으며, 우리 육군이 지급한 만찬복도 이런 행사용이지만, 춤을 춘다는 사실이 영 쑥스러워서 그런 기회를 외면해 버렸다. 그리고, 그 대가로 Ball에서 '비엔나 왈츠'를 못 추어 진땀을 흘리며 엄청나게 고생(?)했다. 그런데, 이렇게 고통을 당한 것은 필자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우리 외교부 공무원 중에도 제대로 춤을 추는 사람은 당시로서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서구 문화를 일찍부터 접해서 인지 일본 외교관이나 군인들은 우리와 달랐다. 자료를 보면 군국주의 일본군은 이미 1890년경부터 당시 군사대국이던 프로이센(독일)이나 오스트리아 등으로부터 군사 문물은 물론, 귀족출신 장교들의 군사문화였던 무도회(춤) 문화까지 모방하였던 것이다. 그런 영향 탓일까?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일본군 장교 간에는 '비엔나 왈츠'가 광범위하게 애호되고 있다고 하였다. 


물론, 춤을 못 추는 것이 우리 대사관만의 문제가 아니었든지 오스트리아 외교부가 외교단의 이런 무도회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 문예진흥 프로그램의 하나로 매년 외교관들을 위한 사교춤 강습을 약 12주간 과정으로 주말에 개설하였다. 대사관에서도 대사, 공사, 참사관 및 필자 내외 등이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비엔나 왈츠'를 중심으로 각종 춤을 열심히 배웠다. 동병상련이랄까? 이 과정에서 우리는 우리와 같은 문제를 안고 있는 많은 국제기구 및 다른 나라 외교단과도 친밀하게 지내게 되어서 부수적인 효과도 톡톡히 보았다. 


필자 내외가 춤을 배운 후, 2, 3년 차 겨울에는 일본 무관과 우리 2쌍이 어울려 다니면서 IAEA Ball 등 많은 국제기구 Ball에 가서도 아시안도 뭐든 다 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 준 것 같아 뿌듯하였다. 그 내외와 행사기간을 같이 보내면서 일본 사람답게 여러 가지로 배려하는 모습을 많이 배웠고, 그들과 더욱 친하게 되었다. 


육군 만찬복을 입은 필자와 오스트리아 장성, 일본 무관내외

춤은 비록 우리가 늦었지만, 춤복은 다르다. 상의가 기다란 예복인 일본과 오스트리아와 달리, 우리 육군이 지급한 장교용 만찬복(흰색은 하복)은, 춤을 추다 보면 열기가 훅훅 나는... 이런 Ball에서 굉장히 유용하고 효율적으로 쓰이도록 디자인되었다. 필자는 일반인 Ball 행사에서는 연미복 예복을 입었지만, 매번 우리 만찬복 생각이 간절하였다. 하지만, 이런 행사 때마다 아내의 행사용 드레스와 팔소매 장갑, 댄스용 신발은 늘 신경이 쓰이는 부분이었다.  


춤을 뒤늦게 배웠지만, 필자 생각에, 춤은 굉장히 건전하고 사교적인 스포츠 같다. 예로부터 가무를 즐겼다는 한민족의 DNA 탓인지 'K-POP'이라는 우리 젊은 아이돌들은 춤으로 세계인들을 열광시키고 있다. 하지만, 한국 중장년들은 춤 이야기만 나오면, 다소 긴장하는 편이다. 이른바, '춤바람 댄스’에 대한 편견 때문이다. 


한국전쟁이 막 끝난 1950년대 중반, 소설 ‘자유부인’이 ‘서울신문’에 연재되었다. ‘남녀칠세 부동석 (男女七歲不同席)’의 유교적 전통이 강하게 남아있던 한국 사회에서 대학교수 부인과 남편 제자의 춤바람으로 가정이 파탄 나는 내용인데..., 부부가 아닌 성인남녀가 몰래 만나 손을 잡고 몸을 비비며 춤을 춘다? 당시로서는 그야말로 별천지이고 충격이었다. 그런데, 얼마 뒤, 박모라는 춤꾼이 70여 명의 가정 부부를 농락한 사건이 실제로 터졌다. 때 마침, 집권한 5.16 군부정권은 정치, 사회, 도덕적 혁명에도 손을 댔다. 조직폭력배 소탕과 더불어, 불법 사교댄스도 부도덕의 상징으로 엄격히 단속하였다. 


덕분에, 누군가가 그런 장소 주위를 얼쩡거리면 당연히(?) 구설수에 올랐다. 하지만, 남녀가 몸을 접촉하며 움직이는 즐거움 탓일까? 당국이 춤을 아무리 단속해도, 젊은이들은 '고고'나 막춤을 추었고, 중년 여인은 장바구니를 들고 시장대신 지하로 숨어들어 더욱 음습하고 껌껌한 가운데 '블루스' 등의 느끼한 춤으로 몰려들었다. 정부가 어떻게 인간의 원초적 욕망을 막을 수 있을까? 그런 상황이 수 십 년 오래도록 지속되었다. 


필자의 세대는 그런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춤추는 걸 손사래 치거나, 춤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거의 필자처럼 소질과 능력을 개발할 기회가 없었던 탓이었을 거다. 그래서, 그 고생을 한(?) 것이다. 다행히, 우리 다음 세대는 어릴 적부터 춤과 음악을 자연스럽게 접하는 문화에 살고 있다. 그리고, 평생교육의 일환으로 춤을 배우는 나이 든 이들도 많다. 그런데, 어떤 춤 전문가 말로는, 겉으로는 우아하게 보이지만 가장 '야한(남녀 신체접촉이 많은)' 춤이 오히려 '비엔나 왈츠'라고 하니, 부부끼리라면 가벼운 운동 하듯 흥겨운 음악에 맞추어 기분전환 삼아 이런 건전한(?) 춤을 시도해 보길 권한다. 이렇게라도 하면 춤에 대한 편견이 바뀌어질까? 


여담으로, 당시 우리가 다녔던 ‘엘 마이어 춤 강습학교(El mayer tanzen Schule-세계최고의 댄스학교)’에는 북한의 기쁨조까지 교육을 받으러 왔다고 해서 화제가 되었다. 이처럼, 오스트리아 무도회가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무도회의 품격으로 유명하자, 미국, 영국 등 일부 선진국도 무도회를 하나의 사교행사로 여겨, 유사한 직장 Ball 행사들을 많이 개최한다. 미군들도 예복을 차려입고 대부분 자비부담으로 각종 Ball 행사를, 각 부대별로 개최한다. 그런데, 이들 행사는 춤보다는 흥미위주 게임 등에 많이 치중하는 듯하다. 예컨대, 사령부급에서 장교단 Ball을 하면, 주관하는 사령관이 President(회장)이라면 장교중 가장 막내인 중위를 Vice President(부회장)으로 임명하여, 일 년 내내 근무하는 동안 불편했던 영관급 상급자를 골려주면서 좌중의 폭소를 유도하는 식이었다. 물론, 행사 말미에 춤을 추기도 하지만... 유럽과는 품격이 매우 달랐다.    


흥미로운 것은, 아르헨티나, 멕시코 등 중남미에서도 오스트리아 무도회처럼 여성의 '15세 생일 축하 파티 (피에스타 데 낀세)'를 한다. 이 파티는 일종의 딸의 성인식으로, 마야문명이나 아즈텍 문화의 유산이라는데, 딸 아버지는 파티를 위해 유명 관광지나 명소의 좋은 장소를 예약하여 가족이나 딸의 친구들을 초청하여 밤 9시부터 다음 날 새벽녘까지 춤을 추고 음식을 즐기며 딸의 생일을 축하한다. 아버지는 행사 시작과 함께 딸과 춤을 추는 기쁨도 있지만, 비용 문제로 그야말로 등골이 휘어지기도 한다는데, 이러한 가족 무도회가, 유럽에서 오랜 역사를 지닌 오스트리아의 무도회와 시간, 형식, 행사내용, 진행 방법까지 유사하다니 매우 이채롭다.


춤에 관해 북한은 우리보다 개방적이다. 매년 8월 28일에 국가 행사로 개최하는 '청년절' TV소개 자료를 보니, 춤과 음악이 발달한 러시아의 영향을 받은 탓인지, 아니면, 김정은의 지시인지, 어쨌든 수천 명의 청춘 남녀가 잘 훈련받은 '포크 댄스'를 추는 장면이 나왔다. 그리고, 2022년 12월에는 무슨 '광명성 미사일 발사 기념' 행사라며, 역시 수 천여 명의 청춘 남녀들이 손에 손을 맞잡고 이 춤을 추는 모습이 공개되었다. 극한의 추위로 바람 부는 드넓은 야외 광장에서 춤이라니... 물론, 공산당 지도층인 평양 시민의 자제에 국한된 현상이라 생각되지만, 같은 나이 또래의 우리 대한민국 고등학생들은 밤낮 주야 대학입시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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