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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웅 Jan 06. 2023

옷이 날개다?

어느 군사외교관 이야기 (오스트리아, 제17화)

옷이 날개다?

자기과시냐?, 자기만족이냐?

목적과 용도에 맞게

나폴레옹 군대



옷이 날개다?

우리의 삶에서 '의식주(衣食住)'는 기본적인 욕구였다. 그중에서도, 우리 조상에게 '먹는 것'에 집착하는 것은 군자의 도리가 아니었다.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더라도, 먹는 것보다 옷이 먼저였다. 

복장은 중요한 ‘예의’로서, 결혼식이나 상갓집 등 관혼상제의 경우 옷의 색깔까지 고려하여, 축하나 위로의 마음을 세심하게 배려하는 게 양반의 도리였다. 양반은 의관을 정제해야 한다는 양반의 DNA로는, 누추하거나 남루한 옷을 입고서는 아무 데나 가서도 행세할 수 없었다. 사실, 우리 조상들은 과거부터 그런 '겉치레'에 따라 사람을 달리 대우하였다. 그만큼, 우리에게 ‘옷은 날개’였고, '옷매무새는 모두의 관심'이었다. 


투르 드 프랑스 출전자

한때, 한국은 전쟁으로 헐벗고 굶주렸지만, 경제발전으로 옷 등 섬유제품 수출 강국이 되었다. 좋은 옷을 잘 차려입는 사람이 대우를 받는 사회였으니, 더 좋은 옷을 찾는 이들로 옷가게는 늘 붐빈다. 둿 동산에 가더라도 히말라야에 갈 때나 입음직한 ‘아웃 도어’ 등산복을 챙겨 입고, 배낭, 신발도 구색을 갖춘다. 자전거를 타고 잠시 나가도 ‘투르 드 프랑스’ 대회에 출전할만한 복장이다. 여기에다, 여성들은 '명품 가방을 덧붙여야 패션의 완성'이라며 자신의 아름다움에 더하여 돈을 과시하기에도 여념이 없다. 진품을 가진 자가 짝퉁을 가진 자에게 "그렇게도 갖고 싶니?"라는 무안을 주더라도, 남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루이뷔통', '샤넬', '에르메스', '구찌' 등 진품인지, 짝퉁인지 모를 수많은 명품 브랜드가 우리의 일상이 되었다. 그리고, '자기과시'용으로 좋은 옷을 차려입은 만큼, 대놓고 자신의 옷을 남이 알아주기 바란다. 우리의 일상에서, 지나가는 칭찬이나 겉만 번드르르한 말이 남발되는 이유였다. 


자기과시냐?, 자기만족이냐?

2023년 들어서자, 명품 회사들은 가격을 또 10%씩 인상했다. 원자재값 상승 탓이라며...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이 명품을 사기 위해 새벽부터 줄을 서는가 하면, 제품 값을 올려도 매출은 늘어난다. 이같이, '자기 과시'에 편승한 한국인의 명품 사랑이 유별나서일까? 미국이나 서구 등 GDP가 높은 서구에 비해서 인구대비 명품 매출량은 우리가 결코 못지않다. 심지어, 2013년 1월, '모건 스탠리'는 인구 1인당 명품 소비 1위국가로 한국을 지목하였다. 그 이유가 제품의 가성비 때문일까? 그런데, 어디? 옷뿐인가? 신발이나, 시계, 자동차도 그랬다. 우리에게 겉치레는 '자존심'이었다. 남보다 못하거나 다르면 괜스레 주눅이 든다. 


이에 비해, 서구인이 유행을 타고 비싼 옷은 입는 건 ‘자기과시'용이라기보다 ‘자기만족'용이라는 게 일반적이다. ‘좋은 옷을 입으면 스스로에게 기분이 좋다’는 것... 그뿐이다. 그들도 명품을 알지만, 단지 명품이라는 이유로 걸치는 것이 아니며, 그런 내색도 하지 않는다. 당연히, 그런 걸로 대화를 삼지도 않고... 그냥, 개인의 취향에 따라 디자인을 보고 사는 거지, 값을 보고 사는 게 아니다. 그러니, 우리가 이들 속에 살면은 비싸고 좋은 옷을 입은 사람에게 내가 주눅 들 일도 없고, 내 옷이 주위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고 괜히 자책할 것도 없다.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충분히 자신만의 멋을 내면 된다. 


서구의 문화를 이해하면, 단지, '좋은 옷을 입고, 고급 차를 운전하는 것'으로, '자신이 남보다 낫다'라고 생각하거나, 남다른 대우를 받으려고 하지 않는다. 겉치레로 나의 수준을 과시하려는 건 유치한 난센스이니까. 불필요한 과시욕은 ‘물질만능주의’의 한 단면일 뿐이다. 누구나 돈을 동경하지만, 자아가 존중되는 성숙한 사회일수록 경제력이 인간을 판단하는 잣대가 아니다. 여기까지는 모두가 아는 이야기이다. 그래서일까? 한때, 전, 후임 대통령 영부인들의 옷바람이 언론의 중심에 선적도 있다. 누구는 공금으로 옷을 사거나 빌려 입었고, 누구는 위화감을 피한다며 대국민 횽보용으로 중소기업 무명 브랜드를 입었다고 언론은 입방아를 찧어댔다. 사실 여부를 떠나, 지도층 인사나 유명인사는 '자기과시'용이 아니라, '자기만족'용으로 옷을 입길 바란다.   


목적과 용도에 맞게

그런데, 오스트리아에서 지내는 동안 각종 행사 복장 때문에 매우 예민하였다. 공적 행사는 물론, 결혼식 등 각종 사적 행사 초청장에도 일시, 장소, RSVP(참석여부)와 함께, ‘Attire(옷)/Coat’ 란에서 복장을 캐주얼, 모자, 외투, 신사복, 예복, 만찬복, 연미복 등으로 자세히 알려주는 탓이다. 행사 성격에 맞추어 옷을 입어달라는 것인데, 사실, Ball (무도회)등 사교행사에서는 옷이 '비싸냐? 싸냐?'의 문제가 아니라 용도에 맞는 옷이나 신발이 아니면 행사기간 내내 지내는 시간이 어색하다. 특히, 무도회처럼, 춤추는 장소에서는 요란한 장신구나 아름다운 우리의 한복은 거추장스러울 수도 있다. 가끔 결혼식장에 가보면, 반바지 차림에 헐렁한 옷을 입고 하객으로 오는 이들도 있다. 아무리, 신랑, 신부와 친하고, 자신의 개성이 독특하다 하더라도, 지나치게 격식을 파괴하려는 복장은 행사의 주역인 신랑, 신부를 축하하는 예의로 보기 어렵다. 행사 성격에 따른 격식을 차릴 때는 차려야 한다. 


대열을 갖추어 적진으로 돌격하는 나폴레옹 군인들

이런 겉치레 격식을 따지는 데는 과거에는 군대만 한 곳이 없었다. 군복의 화려함은 각개 병사에게 자긍심(만족감)을 불어넣었고, 같은 유니폼으로 대형을 갖추고 커다란 집단을 구성하면, 그 위세 당당함으로 상대의 기를 꺾을 수 있었다. 거기에 군복의 강렬한 색상은 더욱 크게 보이는 작용도 하였다. 실제로, 나폴레옹 전쟁 당시 수 천명의 병사들은, 비록 전우가 대포나 소총 사격으로 쓰러져 가더라도 북과 나팔 소리에 맞추어 적을 향해 계속해서 진군하여, 숫적인 우세가 승패를 좌우하는 방식이었다. '옷이 날개'였던 셈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군대에 화려함은 사치다. 먼저보고 먼저쏘니, 적의 눈에 띄면 바로 죽는다. 이제는, 철저히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위장용 군복을 입는다. 더 이상 공간적인 세 과시는 무기체계의 발달로 그 의미를 잃었다. 군복의 용도나 목적이 바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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