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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웅 Feb 27. 2023

신을 기쁘시게 하는 경건한 삶
(6신과 5행의 실천)

글로벌 다양성 이해 (이슬람과 부족주의, 제1화)  

6신과 5행 - 믿음을 행동으로 보이는 신앙과 실천의 세계

5행의 하나인 이슬람의 첫걸음 - 신앙고백 (‘샤하다’) 



6신과 5행 - 믿음을 행동으로 보이는 신앙과 실천의 세계

AD 620년경에 창시된 이슬람은, 유대교와 기독교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지만, 내세관이 뚜렷한 두 종교와는 달리, ‘내세와 현세를 동일하게 여기면서도, ’현세의 삶‘을 중시한다’. 이런 속성은 ‘정교일치’와 원리주의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종교와 세속의 양쪽을 망라하고, 사회생활 전반에서 믿음을 행동으로 보이는 신앙과 실천의 세계가 이들의 주요 관심사가 되었다. 


‘신앙’ 즉, '6신(‘믿음’)은 알라, 신의 사도와 예언자들, 천사, 성서, 최후의 심판과 내세, 정명론 등 6가지로 ‘믿음’의 영역이지만, 5행(실행) 즉, 5가지 ‘행할 바’는 신앙고백, 기도, 하지, 자선, 라마단으로서 이는 ‘실천’의 영역이다. 즉, 6신과 5행은 경전인 ‘꾸란’, ‘샤리아’ 율법의 근간이다. 


‘6信’(6가지 믿음)에서 보듯이, 무슬림에게는 믿음(신앙)’이 최고의 가치이다. 이슬람은 믿음의 본질을 신을 ‘기쁘시게’ 하는데 두었다. ‘믿음’은 ‘소유하는 것’ 즉, ‘알고 있는 것’이지만, ‘신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는 이를 실행해야 한다. 그러므로, 신앙은 생활 속에서 6가지 믿음(信)을 5가지 행동(行)- 즉, 실천으로 보이는 것이다. 만약, ‘믿음’을 알지만 신을 기쁘시게’ 하는데 실천하지 않으면 죽은 믿음이라고 여겼다. 기독교 신약성경(히브리서 11:1~12)에서도 ‘믿음’의 정석을, ‘하나님께 ‘더 나은 제사(예배)를 드리는 것,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으로 말씀한다. 즉,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기독교의 성경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3 가치 중에서, ‘사랑’을 최고로 꼽는다. 이는 기다리며 기도하는 동안 얻어지는 ‘인내의 결과물’인 ‘소망’이나, ‘하는 것’ 자체에 최대한 가치를 두는 ‘실행의 결과물’인 ‘믿음’에 비해, ‘사랑’은 각자의 ‘노력의 결과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이를 보면, 두 종교의 가치 체계는 그 관점이 확연히 달랐다. 


이집트는 일부 콥틱교(원시 기독교)를 제외하고는 거의 전 국민이 무슬림으로 이슬람이 국교이다. 이슬람이 국교인 경우, 이슬람은 단순한 종교가 아니라, 의식주와, 개인의 신념, 사고체계, 관습이나 행동 등 삶의 방식, 예술, 정치 체제 등 모든 삶의 관점을 에워싸는 통합적인 시스템의 개념이며, 이는 사회나 문화의 상위개념으로서 이슬람을 이해하지 못하면 사회생활 자체가 힘들게 되어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지역에 일단 이슬람이 들어오면 각 개인의 자유 의지와 상관없이 세금과 병역의 의무, 법과 제도 그리고 공동체(움마)의 울타리를 본인 세대는 물론, 후손 세대에도 피할 길이 없다. 예컨대, 이집트에서는 외교관조차 이슬람 종교와 아랍의 관습, 그리고, 무슬림이 따르는 각종 율법에 노출되어, 그곳에 사는 동안 이들의 ‘샤리아 율법’이나, ‘라마단’ 등 실천적 관습을 경험하며, 이슬람을 알아가게 되어 있다.    

 

5행의 하나로 이슬람의 첫걸음 - 신앙고백 (‘샤하다’) 

‘신앙고백’은 5행의 하나로 이슬람의 첫걸음이다. 이는  “앗쉬아두 안라아 일라하 알라, 와 앗쉬아두 안나 모함마드안 라술라 알라... (‘알라(외에 다른 신이 없고 모함마드가 사도라는 내용)”라는 것으로, 이 하나를 암송하는 것으로 무슬림이 되니, 기독교도의 '사도신경'과 같은 개념이다. 여기에는, 6가지 믿음(6신) 중 ‘알라(신)와 사도 ’모함마드‘가 언급되는데, 아이가 태어날 때 어머니가 ‘샤하다(증언사)’를 들려주며, 아이는 살아가는 동안 ‘샤하다’를 암송하며, 늙어 죽을 때까지 ‘샤하다’로 기도한다. 이보다 더한 자기 세뇌는 없다. 이렇게, ‘샤하다’를 암송하는 무슬림은, ‘가장 마지막에 완성’된, ‘가장 완벽한 종교’를 믿기에 자신의 현 위치가 어떠하든 비관하지 않고, 자신의 처지에 항상 관용하는 마음과, 6가지 믿음 중 최후의 심판과 ‘내세’와 ‘인간의 운명’에 대한 ‘정명(定命) 의식’을 갖고 있어 세세대대로 신이 준비하신 내세를 믿고 현실에 인내한다. 


이슬람의 '정명' 의식에 따른 가치관은, 현세에서 힘든 고통을 당하면, 현세는 힘들더라도 고행하며 감내하는 운명이지만, 내세에는 이런 현세의 고통스러운 삶의 대가로 ‘신의 보상’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운명론적으로 순응하는 것이다. 이는 꾸란에서도, ‘내 길 때문에 상하고, 죽은 자들, 이런 자들이 어떤 나쁜 일을 하였다 해도, 이것을 사면하여 내세의 낙원으로 들여보내겠다.’(꾸란 3:195)는 계시는, 박해받은 자들이나 '지하드'로 무고한 인명을 살상한 사람조차 ‘신’의 곁에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박해받은 자들에 대해서는 신약성경에서도,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마태복음 5:10)라는 기독교 교리가 있고, 악행을 저지른 인간에 대해서도 '네 원수를 사랑하라'(마태복음 5:44)라는 교리가 있다.

          

'카이로'의 '모함마드 알리' 모스크. 뽀쪽한 첨탑이 인상적이다

인구 2,000여만 명이 넘는 '카이로'시의 도심 지역에는 이집트 최대의 모스크인 '모함마드 알리' 모스크가 있고, 그 주변지역은 무덤 지역으로 일대에 거대한 빈민굴이 있다. 이곳에는 조그마한 집도 없는 사람이 엄청나게 많아 줄잡아 약 300여만 명이 몰려 산다. 그런데, 우리가 상상하는 무덤과 달리, 무덤은 지붕이 있고 각각 구획이 되어있어, 1-2 명이 자기 집처럼 살더라도 별 지장이 없다. 더구나, 더운 나라라 냄새 등은 금방 증발해 버리니 악취가 그리 심하지도 않다. 


더구나, 이들이 먹는 빵은 전통적인 무교병 '에이쉬' 빵으로 6장에 1달러도 안 된다.(정치가 아무리 부패해도 폭동은 없지만, 빵값이 올라가면 바로 폭동이 일어난다) 그러니, 빈부차이에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신께 의지하며 매일 낙천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 


이처럼, 숙식이 보장(?)되어서일까? 이들은 설령, 노숙인이라 하더라도 삶에 별로 절박하지 않은 듯하다. 생활이 어려운 길거리 노점상도 유사하다. 그들은 자신이 ‘완벽한 신’을 믿는 일에 감사하며, 신께서 정해준 처지에 불평 없이 순응한다. 그래서인지, 우리가 그들을 동정하려 하면, 오히려, 알라(신)를 알지도 못하고, 금식도 하지 않으며, ‘물질’만을 내세우는 ‘불신자’인 우리를 가엽게 생각하고, 구원하려 한다. 


이들은, 경전 암송으로 경건한 삶을 이어가는 자신의 처지에 더 만족하자고 자신을 다잡으며, 조상이 물려준 전통대로 지금껏 살아온 생활을 그대로 이어가는 것을 가장 ’편안하게 ‘ 사는 생활로 알고 지낸다. 큰 저택이나 좋은 차가 있어야만 ’편안하다‘는, 물질지상적인 자본주의의 ‘냉정한 잣대’로 결코 알 수 없는 ‘가치기준’이다. ‘편안하게’ 살기 위하여 '천박한' 물질 따위에 집착하기보다, 경전을 외우며 신이 주신 운명에 순응하며 '경건하게' 살아가는 것이 이들에게는 '진정한 삶'인 것이다.  


여기에는 내세의 운명에 대한 강한 믿음이 깔려 있다. 이를 보면, ‘더 편안한’ 미래를 위한다며 평생 동안 물질에 집착하여 아등바등(?)하는 자본주의적 가치관과 달리, “가난해도 선하게 살면 복을 받는다”는 우리 고전인 ‘흥부전’에 더 가깝다. 지난 1,400여 년 동안 이슬람은 종교지만, 곧 사회생활이요, 삶의 기준인 율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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