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예쁜 생각이고, 경이로운 문장들이야
띵 띠리링 띵띵-
침대 위에 덩그러니 올려진 엄마 핸드폰의 벨소리가 울린다.
'여보세요?'
'언니? 왜 언니가 받아?'
'나 집에 와있어.'
이제 막 둘째를 출산하고 한참 육아에 매진하고 있는 막내 동생이다.
엄마는 몸이 안 좋아 일까지 그만뒀으면서 막내 걱정에 여수까지 애를 봐주러 가겠다고 했다. 나는 이에 엄마 몸이나 좀 챙기라고 핀잔 아닌 핀잔을 내뱉고 들어온 참이었고.
이제 곧 가사도우미 서비스가 종료되는데 둘째를 두고 첫째를 유치원에 등원 하원시켜 줄 사람이 없는 탓이었다. 하긴.. 제부도 출근하고 집에는 막내밖에 없을 테니.
하지만 계속 다리며 팔이며 허리며 아프다고 하면서도 1시간 30분 남짓한 거리를 운전하고 갈 엄마, 막내 집안일이며 애 보는 일이며 결코 성정상 가만있지 않을 엄마의 모습이 눈에 선해 괜히 툴툴댔던 것이다.
'언니 나 언니가 올린 글 봤어!'
'응? 그걸 읽었다고?'
'나 새벽에 유축하고 정리하고 있는데 갑자기 알람이 와서 봤는데, 언니가 글 올렸더라? 아주~ 새벽 감성에 푹푹 젖어가지고 또~.'
내 브런치든 하고 있는 일이든 고민이든 동생이지만 가장 쉽게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는 동생이기도 하다. (주변인들은 절대 상상도 하지 못할 나의 모습을 막내는 알고 있다.)
'덕분에 언니 요즘 관심사가 뭔지 좀 알겠더라?'
내 글을 보고 나의 관심사에 대해 언급하는 동생이라니. 괜히 마음이 홧홧해졌다.
고명환 작가의 문장 한마디에 갑자기 덜컥 브런치 페이지를 연 나는 그대로 쭈욱 글을 쓰다가 마칠 때 즈음 생각했다.
'쓸데없이 긴 것 같은데 이런 글 누가 읽기는 할까?'
하지만 그냥 그 시간 잠시잠깐 몰입했다는 것과 가벼운 다짐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 마무리 지었다.
그리고 새벽녘의 그 시간이 오늘 내가 또 한 권의 책을 시작하게 만들었다.
생텍쥐페리의 인간의 대지. 고명환 작가는 생텍쥐페리의 인생에 대해서 이 책뿐만 아니라 다른 책에서도 그가 가졌던 개념을 넘어선 직관의 힘과 비상의 힘과 그가 가진 사명을 대하는 태도와 선택에 대해 곳곳에서 언급했다.
생텍쥐페리라 하면 그냥 어린 왕자를 쓴 작가이자 비행사였다는 것만 알고 있었던 나이다. 그런데 고명환 작가는 이 비행사의 인생과 문학을 연결시켜 주며 고전의 가치로까지 승화해 책에 담아 놓은 통에 생텍쥐페리라는 인간 자체, 그리고 그가 쓴 또 다른 책들에게까지 관심이 갔다.
고전! 고전이 인생의 답이며 지지 않는 법을 담은 최고의 지혜서라고 외치던 어제의 책이 뇌 속에 둥둥 떠다니는 느낌이다. 그래 얼마나 오늘 내 뇌의 용량을 차지할 수 있는지 보자.
이 책은 읽으면서도 아.. 되게 이게 참 문학적이고 철학적이기도 해서 단번에 이해하기 힘들었다. 죽-죽 쉽게 읽히는 글이 좋은데, 글을 풀어가는 묘사력이 대단하지만 술술 읽히지는 않는다. 다시 보고 싶은 문장들이 많아 여러 번 읽게 됐다.
고명환 작가가 인간의 대지에서 발췌한 내용을 나는 내가 태어난 목적에 대해 생각해 보라는 것으로 이해했다. 그냥 돈을 버느라 낭비하는 인생 말고 말이야. 인생의 목적.. 추상적이고 어렵다.
똑같은 교육 속에서 판화를 찍어내듯 허울 같은 똑같은 가치관과 목적으로 살지 말고 진짜 나를 찾아 인생의 방향을 조금 틀어보라는 메시지를 주는데 이 책 전체적으로 생텍쥐페리는 어떤 목소리로 나에게 말을 걸까 궁금해진 것이 이 책을 나의 다음책으로 고른 이유다.
비행을 하던 사람이라 그런가 하늘에서 사람의 생을 관조하는 느낌이 들었다. 왜 제목을 인간의 대지라고 했을까? 생각했었는데 비행사인 생텍쥐페리로서는 비행사로서 대지에 속하지 못한 채로 바라보는 대지 위에 살아가는 사람들, 그 사람들의 생, 관계, 목적, 태도 등을 이야기하기에 참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낮은 목소리로 주고받는 속내 이야기도 나를 놀라게 하고는 했다. 이들은 병이나 돈, 가슴 아픈 집안 이야기들을 나누고는 했다. 그러한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이 갇혀 사는 암울한 감옥이 느껴졌다. 그리고 갑자기 내게 운명의 얼굴이 보였다.
오래된 관리도, 여기 있는 내 동료도, 그 무엇도 나를 해방시켜주지 않았다. 이는 내 책임이 아니다. 흰개미처럼 나는 빛이 들어오는 모든 구멍을 단단히 발라 메워버린 덕에 내 안에 이 평화를 구축했다. 나는 풍족하고 안정적인 내 삶 속에서, 나의 타성과 전원 속 숨 막히는 관행 속에서 공처럼 몸을 웅크렸고, 바람과 밀려오는 파도, 그리고 별에 대해 이 비루한 성벽을 높이 쌓아 올렸다. 나는 복잡한 문제로 골머리 썩기를 원치 않았으며, 내 인생을 둘러싼 환경 자체를 잊기에도 충분히 버거웠다. 나는 지상 위를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사람도 아니며, 답 없는 질문은 하지도 않는다. 나는 툴루즈의 한 소시민에 불과하다. 때가 늦기 전에, 아무도 내 어깨를 잡아주지 않았다. 이제, 나를 만들어낸 진흙은 메말라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내 안에 잠들어 있는 음악가나 시인의 기질을, 다른 무엇보다도 먼저 내 안에 자리 잡은 천문학자의 기질을, 어떻게 깨워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인간의 대지>, 생택쥐페리
사람들은 누구나 천재로 태어난다고 한다. 하지만 교육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지루하지만 안전한 평범을 선택하며 내 안에 잠들어 있는 음악가나 시인의 기질을, 천문학자의 기질을 진짜 나의 색을 찾고 펼치는 법을 다 망각해 버리고 마는 것이라는 낭만적인 생각.
내 안의 천재성을 어느 날 발견해서 활짝 발휘하고 싶다 생각한 적이 여러 번이다. 하지만 도대체 무슨 천재성? 천재성이 있기는 한가? 똑같은 일상으로 생각으로 되돌아가 버리는 나를 보며, 그리고 그 남들이 동의하는 그 일상에서 또 지치고 적응하지 못하며 자꾸 다른 통로를 곁눈질하는 나를 보며 왜 나는 평범하게 살지 못할까라는 생각도 한다.
흰개미처럼 빛이 들어오는 모든 구멍을 단단히 발라 메워버리는 그 행위를 매일같이 하며 이것이 살길이다 이것이 인생의 안정을 도모하는 것이라며 사람들의 말하는 평화를 구축하지만 결국엔 그것이 아닌 것을 깨닫게 된다. 나를 이룬 태초의 진흙이 정말 물기 없이 말라버려 더 이상 움직이면 산산조각이 나버리는 사태에 이르기 전에 진흙 속의 진주를 만들어 내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해야 할 때다.
초기 비행사들은 안개사이 구름사이에서 위기의 상태에 이를 때 구름 기둥 사이로 빛이 조금이라도 보이면 그 사이를 파고들었다고 한다. 빛을 다 막고 구름을 견고한 벽 삼아 안정한 성을 세우고 고요한 평화와 같은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틈새의 빛을 따라 제2의 공간을 찾아가는 것이 생존의 길이었던 것이다. 그가 쓴 문장 하나하나가 현재를 살아가는 나의 하루에 덧대어보게 된다.
생텍쥐베리가 겪었던 비행의 삶은 그저 비행의 삶이 아니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확신을 갖게 됐다. 그는 말 그대로 삶과 죽음의 경계를 비행을 하는 순간순간마다 마주했던 사람이었을 뿐 아니라 그의 동료들의 삶 또한 그의 생각과 인생관에 다채로운 색을 입혀줬다. 그와 동료 개인개인 비행의 장면들은 죽음을 향해 가는 비상이었다. 그리고 돌아오고, 또 비상하고. 모든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그 죽음이라는 놈을 향해. 그러한데 그가 글을 쓰지 않고 배길 수 있었을까?
생택쥐페리는 비행사들이 자신의 일에 대해 느끼는 사명, 책임에 대해 말한다. 그럼 나는?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얼마나 많은 사명을 부여했으며, 그 책임의 무게를 숫자로 매길 수 있을까? (아마 0이지 않을까) 앞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해서는? 고리타분함으로만 다가왔던 단어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단지 돈을 벌기 위해서만 일을 하면서 우리는 손수 우리의 감옥을 쌓아 올리고, 그 안에 잿더미와 다를 바 없는 돈과 함께 스스로를 가둬둔다. 돈이란 진정 삶에 필요한 것은 아무것도 가져다주지 못하는데도 말이다.
<인간의 대지>, 생택쥐페리
이것이 정말 나의 삶에서도 유용하며, 적용될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본다. 어중간하게 이해하고 실천했다간 망망대해에 난파당한 배가 되어버릴 수도 있으니. 나도 자신 있게 저렇게 말할 수 있는 순간이 오기를 바랄 뿐.
사람들이 용감하다고 말한다면, 기요메, 이 친구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겠군. 하지만 어떤 사람은 겸손 운운하며 녀석에게 반기를 들 수도 있을 거야. 겸손 나부랭이하고는 거리가 먼 친구니까. 기요메가 어깨를 으쓱해 보일 때는 그만큼 뭔가 알고 있기 때문이야. 한 번 무언가를 겪고 나면 사람이란 다시는 그 일로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녀석은 알고 있지. 사람을 공포에 사로잡히게 만드는 건 오직 미지수일 뿐이야.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기에 겁을 먹는 거지. 하지만 한 번 맞닥뜨린 사람에게는 미지수란 존재하지 않아. 특히나 이렇게 심각한 상황에서 현명하게 대처한 사람이라면 더욱 그러하지. 기요메의 용기는 무엇보다도 그 곧은 성품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 거라고.’
<인간의 대지>, 생택쥐페리
그의 여러 동료들의 비행이 나오지만 그중에서도 절대 나는 처하고 싶지 않은 상황에 처해 살아남은 기요메. 이미 죽음의 문턱을 경험하고 온 기요메. 무엇인가를 경험하면 그것은 절대 공포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갑자기 조금 빠르게 실패하기라는 책이 떠오른다. 실패할까 봐 시작도 못하는 것보다 그냥 빨리 해보고 빨리 실패하는 게 백배 천배는 낫다는. 경험한 것은 두려움의 대상이 될 수 없으니까.
그 책을 읽은 후로 그 말을 항상 되새김질하며 행동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하지만 기요메를 보니 나의 노력에는 치열함이 빠져있었다. 발을 떼지 않으면 바로 죽음이라는 그런 치열함과 급박함이 나에겐 없었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제자리걸음인가? 이제는 그 치열함과 급박함을 장착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볼 생각이다. 아직은 좀 느긋한 감이 있다.
이처럼 가혹한 운명 앞에서, 나는 진정 인간다운 죽음을 하나 떠올렸다. 그건 어느 정원사의 죽음이었다. 그는 내게 말했다.
“있잖아요…… 삽질을 할 때면 이따금씩 땀을 흘렸어요. 류머티즘 때문에 다리가 지끈거렸거든요. 그러면 이 지긋지긋한 노예 같은 신세를 저주했지요. 그런데 오늘은 삽질을 하고 싶어요. 땅에 대고 삽질을 하고 싶다고요. 땅을 일구는 일은 제겐 정말 아름다운 행동처럼 보이거든요. 그렇게 땅을 일굴 때면 얼마나 자유로워지는지 몰라요! 또 저 아니면 누가 제 나무들을 돌봐주겠습니까?”
정원사는 황무지가 된 땅을 남기고 죽었다. 황무지가 된 대지를 남기고 죽은 것이다. 그는 세상의 모든 흙과 대지의 모든 나무와 사랑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관대하며 풍요로움을 누리는 자, 위대한 귀인이 바로 그였다. 그 역시도 기요메와 마찬가지로 조물주의 이름을 걸고 죽음과 맞서 싸운 용감한 사람이었다.
<인간의 대지>, 생택쥐페리
아픔 앞에서도 죽음 앞에서도 하고 싶은 것이 내가 하는 일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게 정말 인생을 재미있게 행복하게 사는 길이 아닐까? 정원사는 행복해 보인다. 나도 하는 매 순간마다 행복한 일, 행복해서 계속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은데 아직 갈길이 멀긴 멀다.
칼 융은 의도를 갖지 말라고 했고, 고명환 작가는 의도를 갖지 않는 것은 곧 몰입하는 것이라고 했다.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최고의 행복의 순간이 바로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어떤 일을 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몰입을 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내가 행복하기 위한 방법은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로 몰입할 수 있는 어떤 일'을 찾는 것이다. 그걸로 돈도 벌 수 있으면 그게 바로 최고의 인생 아닐까?
아, 이 책에는 생텍쥐페리가 결국은 어린 왕자를 쓸 수밖에 없는 단서를 발견하는 숨겨진 재미도 있었다!
연료는 고갈되어가고 있음에도 우리는 번번이 빛의 계략에 걸려들었고, 매번 진짜 관제등의 불빛처럼 느꼈으며, 그때마다 기항지와 우리의 구사일생을 알려오는 것같이 보였다. 그리고 연거푸 좌절의 쓴맛을 본 우리는 또다시 다른 빛을 찾아야만 했다.
그때부터 우리는 우주 속 어느 행성과 행성 사이에서,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무수한 행성들 사이에서 길을 잃고, 진짜 행성인 우리의 별을 찾아, 우리에게 익숙한 풍경과 우리에게 친근한 집이 보이는, 우리에게 낯익은 따뜻함이 느껴지는 진짜 우리의 별을 찾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인간의 대지>, 생택쥐페리
그러나 이렇듯 사람냄새나는 대지와 우리가 항해하고 있는 곳 사이에는 넘을 수 없을 만큼의 먼 거리가 있었다. 반짝이는 것들 사이에서 길 잃고 헤매는 먼지 알갱이 하나에 이 세상의 그 모든 풍요로움이 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세상을 찾으려 애쓰는 점성가 네리는 언제나 별들에게 무릎을 꿇었다.
<인간의 대지>, 생택쥐페리
조난의 위기를 당한 그가 연료 없는 비행기를 조종하며 하늘에서 헤매었던 그 순간 절망에 젖어있는 것이 아니었다. 죽음의 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착륙할 수 있는 기항지를 찾는 그 순간을 저렇게 아름답게 묘사할 수 있을까? 이로써 그는 어린 왕자의 친구가 될 자격 충분한 것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