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마음으로 포근한 햇살 앞에 서다. 회복(恢復)


인생의 후반전에 접어들다 보니 주변에 크고 작은 병으로 힘들어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얼마 전, 개척교회를 20년간 섬겨온 사모님이 유방암 진단을 받으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늘 밝고 활기차게 교회와 아이들을 위해 애쓰시던 분이었는데.


오늘은 노교수님 한 분을 뵈었습니다.

식도암으로 사흘 후 수술을 앞두고 계셨는데 오히려 밝게 이야기를 나누셨습니다.

말씀을 들으며 저는 속으로 쾌유를 빌었습니다.

불철주야 복음을 위해 전국을 뛰어다니시던 목사님은 당뇨와 고지혈증이 심해져 안식에 들어가셨고,

젊은 사모님은 임신 후 자가면역질환으로 신장 기능을 잃고 지금 투석을 받고 계십니다.

대학로에서 청년들을 살리기 위해 15년 이상 목회 하신 제 지인이신 목사님은 급격한 시력 저하로

큰 불편함을 겪고 있습니다.


이분들 모두 육체적 고통과 상황에 대한 원망이 마음 깊이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분들을 만날 때마다 그런 기색을 전혀 볼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분들에게서 따뜻한 무언가가 느껴졌습니다.


오늘은 그분들을 생각하고, 그분들의 쾌유를 기원하며 회복이라는 단어를 들여다봤습니다.





회(恢)는 마음 심(心)에 재 회(灰)가 결합된 글자입니다.

불에 다 탄 재처럼 마음의 모든 찌꺼기가 다 타버리고 깨끗해진 상태를 의미합니다.


복(復)을 조금 더 들여다보면 이렇습니다.

조금 걸을 척(彳)과 뒤져올 치(夂)와 날 일(日)이 결합된 글자입니다.

척(彳)은 길을 걷는 모습입니다. 치(夂)는 뒤에서 천천히 따라오는 발걸음입니다.

그리고 일(日)은 태양, 빛, 밝음입니다.


세 글자를 합치면 이런 장면이 그려집니다.

어두운 곳에서 걷다가 천천히 방향을 바꾸어 밝은 빛이 있는 곳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는 모습입니다.

서두르지 않아도 됩니다.

뒤져올 치(夂)처럼 조금 늦어도 괜찮습니다.

방향만 빛을 향하고 있다면, 그것이 이미 복(復)입니다.


회복이란 마음의 모든 찌꺼기가 다 타버려 맑아진 상태에서, 밝은 곳을 향해 방향을 바꾸어 걸어가 도착하는 것입니다.


맑고 밝은 마음으로 따스한 햇살이 비추는 포근한 자리에 앉아 쉼을 얻는 곳. 그것이 회복입니다.


저는 회복을 두 가지로 읽고 싶습니다.

하나는 회복되어 맑은 마음으로 포근한 햇살 앞에 서는 순간입니다.

긴 터널을 지나 마침내 밝은 곳에 도착한 사람입니다.

그 자리에서 비로소 숨을 고르는 사람입니다.


또 하나는 회복의 시작으로 맑은 마음으로 포근한 햇살 앞에 서는 순간입니다.

아직 아프고, 아직 힘들지만 그 자리를 향해 첫 걸음을 내딛는 사람입니다.

방향을 바꾸어 빛을 향해 걷기 시작한 사람입니다.


둘 다 회복입니다.

도착해도 회복이고, 출발해도 회복입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몸과 마음을 혹사시킵니다. 갖가지 이유를 대며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아갑니다.

그런데 사실 긴장을 풀고, 따스한 햇살이 비추는 포근한 자리에 잠시 앉아 따뜻하게 살아도 됩니다.


치열하게 산다고 문제가 해결되거나 좋은 날이 오는 것이 아닙니다.

회복의 자리에 설 때, 우리가 그토록 애써 풀려던 문제들이 비로소 풀리기 시작합니다.


제 주변의 그분들이 그리고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 곁의 모든 분들이 맑고 밝은 마음으로 따스한 햇살이 비추는 그 자리로 돌아오기를 바랍니다.


그 자리를 향해 걸어갈 빛이 그분들의 마음에 비추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따스한 햇살처럼, 사랑으로 가득하신 주님이 그분들 곁에 조용히 앉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벌써 그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믿습니다.


오늘 제가 만난 그분들에게서 이미 그 따뜻함이 느껴졌으니까요.


오늘도, 내일도 회복의 자리에 서서 하루를 보내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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