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이 갓 틀어 온 목화솜처럼 빈 껍데기 같은 세상을 밤새도록 채워가고 있다. 불을 지피지 않은 방에 혼자 누운 원천댁은 함박눈 내리는 밤 정애가 했던 말들을 떠올린다.
"엄마. 눈 내리는 밤은 깜깜허지 않아서 좋아. 어디에 있어도 무섭지 않을 것 같어. 변소 갈 때도."
원천댁이 눈을 감은채 솜이불을 끌어당기며 정애를 등지고 누워 졸린 듯이 말을 흘린다.
"변소 갈 때 엄마 깨워라이이."
"아니어. 괜찮어. 이런 밤엔 누군가 지켜주는 것 같어. 엄마의 엄마가."
"엄마의 엄마? 외할머니?"
"응. 외할머니의 엄마."
"그건 또 뭔 소리여."
"엄마. 목말라."
"잠자리에서 말을 많이 허니까 목이 마르지. 떠다 먹어."
"무서워."
"눈 오믄 안 무섭다면서."
원천댁이 툴툴대며 떠다 준 물 한 대접을 다 들이킨 정애는 새벽 변소 길에 엄마를 깨우곤 하였다.
이부자리에 몸을 일으켜 주인 없이 방치되어 있는 정애의 방, 안방 건넌방 문을 연다. 대수가 만들어 준 앉은뱅이책상 위에 책 한 권이 놓여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읽으려고 펼쳐두고 갔었나 보다. 무슨 책이었는지 궁금해 겉표지를 보니 안회남의 '불'이다.
"정애가 이런 책을 읽었었나."
무슨 내용인지 읽어 보고 싶어 책을 들여다보려는데 마당에서 눈 밟는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반가운 마음에 마루로 나가 눈 쌓인 마당을 둘러보니 아무도 없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마루에 오래 서서 정애와 귀화가 묻힌 산등성이를 바라보며 정애가 했던 말을 되뇐다.
"엄마. 눈 내리는 밤은 깜깜허지 않아서 좋아. 어디에 있어도 무섭지 않을 것 같어."
찬 바람을 맞아 언 볼에 뜨거운 눈물이 흐른다. 정애와 귀화의 주검을 마주했을 때도 광목천에 감싼 두 사람을 차가운 땅에 묻으면서도 나오지 않았던 눈물이 시절을 만난 듯 끝도 없이 쏟아진다. 어깨가 들썩이고 허리가 꺾이며 온몸이 떨려온다. 윗니가 아랫니가 부딛히며 다닥닥 소리를 낸다. 맨발로 눈 쌓인 마당에 내려가 눈을 밟다가 허리를 숙여 두 손으로 눈을 담는다. 빨간 손바닥에 소복하게 담긴 하얀 눈이 금세 녹아내린다. 다시 두 손에 눈을 가득 담고 입맞춤을 한다. 붉은 입술에 닿자 물로 변한 눈이 턱을 타고 목을 따라 가슴까지 흘러내린다.
"엄마. 눈 내리는 밤은 깜깜허지 않아서 좋아. 어디에 있어도 무섭지 않을 것 같어."
오랜만에 깊은 잠을 자고 정오가 가까운 시간에 눈을 뜬 원천댁은 정애와 귀화의 사십구재를 지내기 위해 홑 겹 옷을 입고 빈 손으로 집 밖에 나온다. 자신을 제물로 사십구재를 지내고 딸과 귀화가 간 곳으로 갈 작정을 한 것이다.
눈이 녹아 없어진 산길로 발걸음을 옮기려는데 누군가 보따리를 들고 마을 어귀 새암 앞에서 서성이다가 동네를 한번 둘러보더니 자신의 집 쪽으로 걸어온다. 낯선 얼굴이다. 예순 살 정도 되어 보이는 부인이 두리번거리며 원천댁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걸어와 말을 건다.
"저그요. 이 집에 사시는가요?
"예."
"이런 말 허면 뭐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것는디요. 저는 신태인에서 왔는디요. 꼭 할 말이 있어가꼬요. 혹시 안복순이라는 사람을 아는가요?"
"예. 왜 그러시는디요?"
"허어... 한 열흘 전에 외손지가 우리 집에 왔다가 뭣 때문에 그런가 동티가 나가꼬 경기를 일으켜어 죽을 뻔 했당게요. 갑자기 눈이 뒤집히고 입에 거품을 물고 사지가 뻣뻣해짐서. 그때만 생각 허면. 어후. 어찌나 겁이 나든가. 엄매. 근디 그때 어떤 아주머니가 우리 집 앞을 지나가다 우리 집에 난리난 것을 보고 들어왔다니까요. 손지는 다 죽게 생겼고 딸내미는 애기를 끌어안고 울고 불고 허는데 나는 무스 와서 벌벌 떨고만 있었어라. 내 원체 간이 작어라우. 근디 그 아주머니가 바가지에서 물을 떠 갖고 처마에 뿌리더니 처마에서 떨어지는 물을 받아서 우리 손지한테 먹였당게요. 긍게 우리 손지 입에서 시꺼먼 핏덩이 같은 것이 나오면서 살아났지라이.
하도 경황이 없어서 고맙다는 말도 못 허고 천치같이 보고만 있는디. 그 양반이 나를 보고 빙그레 한번 웃고 그냥 가실라고 혀서. 얼른 따라 나갔지라잉. 밖에 나가본 게 그 양반 옆에 얼추 스물대여섯 살 되어 보이는 요렇게 볼에 흉터가 있는 딸도 서 있습디다.
그 양반한테 어디서 오신 누구시냐고 물으니까 그분이 연월리 새암에서 오른쪽 두 번째 집이 동상 집이고 바로 그 앞 집은 자기 딸 집이라고 허믄서 혹시 찾아오려면 거기로 오라고. 그리고 올 때 양초 두 개, 술 한 병을 갖고 오라고 했당게여. 알겠다고 대답허고 집에 들어가믄서 생각해 본 게 이름을 안 물어본 것이어라우. 다시 나간 게 아주머니는 사라지고 처녀만 서있습디다.
그래서 그 처녀한테 어머니 이름을 물어봤더니 그 처녀가 대답 허길. 우리 어머니 이름은 세상에서 제일 이쁜 이름, 안복순이라고 헙디다. 그 부인이 복순이처럼은 안 생겼던데. 왜 그 복순이는 키도 아담허고 얼굴도 자그마하고 눈은 땡글땡글할 것 같잖어요. 근디 그 영반은 호리호리 허고 얼굴이 갸름하고 눈은 깊고 가느다래서 복순이는 아닐 것 같은디. 그리서 안 복순인가. 복순이는 꼭 집이처럼 생겼을 것인디.
그리서 집에 들어와서 딸내미한테 괜찮냐고 힜더니 딸내미가 허는 말이 더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혀라."
여자가 코를 한번 훌쩍이고 자기 팔을 감싸 안은채 몸을 부르르 떤다.
"집에 들어왔더니 딸이 나한테 어디서 방편 하는 것을 배웠냐고 묻는것이어라우. 나는 아무것도 헌 것이 없고 그냥 멍청하게 서 있었을 뿐인디 말이요. 금방 왔다간 부인이 다 한 것을 뭔 소리냐고 했더니. 딸내미가 허는 말이 손지가 쓰러진 게 내가 바가지에 물을 떠서 처마에 뿌리고 그 물을 받아서 외손지한테 먹였다고 안 허요. 내가 말이오.
별 생각이 다 듭디다. 내가 미쳤는가. 귀신이 씌었는가. 그렇지만 손지를 살렸응게 말도 못 하게 고맙지라잉. 그리서 딸이랑 손지를 지 집에 보내놓고 여기를 와야지 와야지 했는데 계속 집에 일이 생겨가꼬 이제야 왔당게요.
아직도 이것이 뭔 일인가 싶고. 그 사람들은 뭐신가. 진짜 구신인가. 나는 교회 다니는디..
. 이래 봬도 집사여라. 혹시 그 사람들 누군지 아시오?"
"내 성은 부 씨, 명은 귀화요. 선조는 탐라에서 왔다고 허는데 나는 장성에서 나서 자랐소. 읍내서 제일 큰 기와집. 우리 집을 모르는 장성 사람이 없었지라. 조상님들께선 문무 관직을 두루 거치셨고 아버지는 관직은 안 허셨지만 가을 들판같이 어질고 또 우리 어머니는 오월 봄날 같이 따순 사람이었지라.
내 우로 오라버니들이 다섯이고 막내 오라버니랑 사 년 터울을 두고 생각도 못한 막내딸로 내가 생겼으니까 얼매나 이쁨을 받았것소. 오라버니들도 다 어머니 아버지처럼 나를 귀엽게 여겼당게요. 다들 검소하셨는데도 고운 비단만 보시면 늘 내 몫으로 끊어오고 철마다 꽃신을 맞춰주셨어라. 모든 것이 필요하기도 전에 진작 내 앞에 와있었당게요.
열여덟 살에 담양으로 시집을 갔지요. 우리 서방님도 성품이나 인품 뭐 하나 빠지는 것이 없어서 그 근방에서 소문이 자자한 분이셨지라.
결혼해서 삼 년 동안 애기가 안 들어섰어도 걱정 안 했어라. 걱정도 팔자라고 허던 사람이나 허는 것이지 안 허던 사람은 그게 뭔지 모른 게. 그냥 늦어지는갑다 생각을 힜소. 삼 년이 지나고 오 년째 접어든 게 팔자에도 없는 근심이 듭디다이.
간절하게 애기가 갖고 싶었소이. 뭐슬 갖고 싶어서 그렇게 안달을 헌 것은 그때기 처음이었응게 얼마나 애가 닳았겠소. 자식만 생긴다면 뭔 짓이든 못 헐까 싶다 마이. 넘들 없는 것 다 갖췄는데도 넘들이 다 허는 것을 못 헌 게 미칠 것 같았소. 그러다 앓기 시작했소. 입으로 삼킨 물을 목구멍으로 넘기는 것이 삼도천 건너는 것 같이 애로웠소. 인자 생각해 본 게 그때가 딱 내 죽을 자리였는가 모르겠소. 그다음은 덤이고.
별 것을 다 히도 결국 죽을 것 같었는지 친정어머니가 나를 친정으로 데리고 가겠다고 힜소. 나도 그러고 싶었고. 내가 떠나는 날 우리 서방님이 얼매나 슬프게 우시든지. 여태 그 사람 얼굴이 잊히지가 않소.
상여같이 큰 가마를 타고 간 친정집에 가 죽을 날만 기다리는데 나를 받아 준 산파가 와서 나를 살리려면 자기한테 맡기라고 힜지요. 산 밑에 혼자 살는 늙은인디 산파도 허고 무당도 허고 아픈 애기도 봐주고 상갓집에서 염도 허고 여튼 그 근방 대소사 다 관여 허면서 주면 주는 대로 먹고 안 주면 굶는 풍시런 늙은이였는데. 지금 나처럼.
거진 송장이 됐다고 히도 우리 양친이 그런 사람한테 딸을 주것소. 근디 내가 그 말을 듣고 두 눈을 번쩍 뜨고 산파를 따라가겠다고 우겼다니까요. 산파를 따라가면 살 길이 열릴 것 같습디다. 물 한 모금도 제대로 못 삼키고 오락가락하며 누워있는데 뭔 정신에 그런 생각이 들었는가. 어머니 아버지가 절대로 안된다고 헌 게 산파가 열흘 뒤에 올텐게 결정 잘 허라고 하고 갔는디 그날로 내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 밥을 먹었응게.
나는 인자 살아났는디 열흘동안 두 분이 얼매나 눈물바람을 허시는지. 산파를 따라가는 날에도 얼마나 우시든지. 내가 가고도 또 얼마나 우셨을랑가.
산파를 따라갔소. 노인네가 뮈시 그렇게 바쁜지 어찌나 걸음이 빠른가, 병후니께 더 그랬을 테지마는 누가 뒤에서 쫓아오는 것 같이 말이요. 모르지요. 뒤에서 사자가 따라왔는지도. 내가 막 울면서 도저히 못 따라가겠다고 힜더니 그 순한 할머니가 뒤를 돌아보더니 평생 듣지도 보지도 못한 욕을 허면서 호통을 쳤으니까.
"목숨 하나를 손톱 밑에 때만치도 안 여기는 불한당의 눈깔을 뽑아서 잘근잘근 씹어 먹고 다리몽댕이를 똑 분질러서 부뚜막에 쑤셔 넣어 불고 숭악한 주댕이를 찢어서 귀에다 걸어분다. 따라와라. 지발 따라와라."
정신이 없었는디도 그 말을 들은 게 오기가 생겨서 옷 보따리도 다 던져버리고 할머니 치맛자락만 보고 막 뛰어갔어라우.
얼매나 갔는가 가본 게 방장산 삼신당이었지. 분명히 처음 와 본 덴디 처음 온 것 같지가 않습디다. 할머니가 나한테 안에 들어가서 나오지 말라고 허고 삼신당 밖에서 문을 걸어 잠가버렸당게요. 자진해서 따라왔응게 도망은 안 할 것인디 뭐슬 이렇게까지 하나 싶어서 서러워 울다가 잠이 들었소이. 일어나 본 게 나물 주먹밥 세 개, 물 한 그릇, 요강 하나만 있습디다. 두 달 가까이를 할머니가 꼭 나 잠든 사이에 들어와 주먹맙 세 개, 물 한 그릇, 새 요강만 주고 얼굴은 비도 않고. 너무 무섭고 외로와서 울다 주먹밥 한 개 먹고 물 한 모금 마시고 오줌 한번 누고 자고 또 일어나면 울다가 주먹밥 한 개 먹고 물 한 모금 마시고 오줌 한번 누고 자고. 그맀소.
그러다 어느 날은 도저히 날이 뜨거서 땀이 비 오듯이 헌 게 문을 쪼깨만 열어달라고 사정을 힜는디도 사람 소리는 나는디 들은 척도 안 헌 게. 하도 비애가 나서 머리로 문을 쿵쿵 박다가 발로 팍 차버리고 나와본 게 한 여름입디다.
할머니가 땀으로 목욕한 나를 보시고 껄껄 웃으시며 "귀화야. 목욕하러 가자" 였소. 화를 낼 새도 없이 계곡으로 목욕을 허러 갔소. 둘이서 목욕을 허는데 벗은 몸보다 국수가락처럼 밀리는 때가 부끄러서 눈물이 났소. 그맀더니 할머니가 내 엉댕이를 한 대 찰싹 때립디다. 그날 나는 우리 어머니 딸로 새로 태어났소이.
그리고 내내 어머니를 따라다녔소이. 애기도 받고 잔치도 허고 염도 허고 곡도 허고 굿도 허고 제사도 지내고. 주면 주는 대로 먹고 안 주면 굶고 방을 내주면 방에서 자고 정지를 내주면 정지에서 자고. 이도저도 아니면 길에서 자고. 그렇게 허느라 허는대도 천대란 천대는 다 받고. 더러 맞기도 허고. 도중에 너무 고생스르와서 몇 번이나 죽을 라고 힜소. 근디 목을 매면 끈이 끊어져 버리고 물에 빠지면 누가 와서 건져 버리고 약을 먹으면 먹은 것을 다 토해내고. 내 목숨이 아닌 게 내 뜻대로 안 끊어졌겠지.
그런 중에 한 길에서 우리 서방님을 한번 봤소. 여전히 추란 같이 아름다운 서방님이 춘란 같은 어여쁜 사내아이 손을 잡고 마실을 나온 것 같았소이. 하마터번 "서방님" 허고 부르며 뛰어 갈 뻔 힜소. 그랬다면 서방님은 어떻게 허셨을까. 임자 보고 싶었소 허셨을까. 모른 척 허셨을까. 한번 불러나 볼 것을. 품에 포옥 안겼거나 밀쳐졌거나 둘 중 하나였을 텐디. 그랬으믄 잊었을 텐디. 그러들 못 하고 눈에만 담아서 아직도 이렇게 어른거리는가.
십수 년을 어머니를 따라 따라댕겻소.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도 껄껄 웃으시며 "귀화야. 이제 산 너머로 가거라. 산 너머 첫 번째 집이 네 집이다." 그러셨소. 돌아가신 어머니를 방장산에 묻어 드리고 산을 넘어온 게 참말로 빈집이 있습디다. 그리서 거기서 혼자 신당을 차리고 살고 조용히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밤에 키가 자그마한 꼬마 신랑이 얼굴이 하얘져서 색시가 아기 낳다 죽을 것 같다면서 무작정 나를 막 끌고갔어라우. 그날 난산 끝에 태어난 게 정애고. 연월리 와서 처음 받은 애기가 정애니까 얼마나 내 피붙이 같겠소.
정애를 한번 받고 난 게 그때부턴 하루도 빠짐없이 누군가 찾아왔고 그 사람들 따라다니다 본게 세월이 어떻게 흐르는지도 몰르고 살았소. 우리 어머니가 그러셨듯 굿도 허고 상도 지내고 애기도 받고 단 하루도 그냥 넘어가는 날이 없었지러. 머리가 이렇게 쇠
도록.
어느 날엔 아버지가 나를 데리러 오셨소. 근디 그 양반이 "귀화야, 아버지 소천하셨다 "라고 말씀을 허시는데. 그 순간 여기 우리 아버지가 계신데 누구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허는 것인가 어리둥절힜소. 내 앞에 서 있는 사람은 아버지가 아니라 우리 큰 오라버니였소. 큰 오라버니가 말씀허시길 아버지 임종 전에 막내딸 보시길 소원하셔서 나를 오래 찾았다고 허시며 늙은 양반이 또 얼매나 또 우시는지. 아버지가 내 앞에서 우는 것 같었소.
오라버니를 따라 집 떠나지 수십 년 만에 친정에 가본 게 기왓장에 풀이 성성한 집에서 늙으신 우리 어머니가 나를 기다리고 계십디다. 나를 보고 또 얼매나 우시는지. 아버지 산소에 제를 지내고 연월리로 돌아오는 길에 방장산에서 애야를 만났소이.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의 선물이었는가. 그 불쌍한 것이 산에서 부모를 다 잃고 나무에 달려서 울고 있는디 한눈에 봐도 내 딸입디다. 드디어 어머니가 되었소이.
인자 가야것네. 방장산 넘어 장성에 가야 헌 게. 오늘은 오랜만에 고향 집에 가는 날이라. 올해 아흔이 되신 우리 어머니가 나를 부르며 울고 계셔라. 이제사 귀화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으셨으니 우리 어머니한테도 지금 내가 필요하지 않겠소이.
일생동안 이 몸으로 생산은 못했지만 어째 날 닮은 그대들을 내 치마폭에 품는 것이 내 일이고 기쁨이여라.
알거나 모르거나 그대들이 눈물 흘릴 때 내가 곁에 있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