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라나는 너에게

by 은령



늦은 밤,
지친 몸으로
태국의 호텔방에서 스타킹을 벗다가,
네가 사다리에서 떨어졌다는
카톡을 봤어.

스타킹을 발목에 걸친 채
너에게 메시지를 보냈지.
괜찮아?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말 뿐이라는 것에 고개를 떨구며

두 발목에 걸린 스타킹을 봤어.

여태 내 발목의 족쇄조차
풀지 못한 나의 세상에
너를 놓은 것이 괜찮은가.

무대 조명을 고치다
그만 떨어졌다고
ㅋㅋㅋ 웃는 너에게 말하지 못했어.

나와
다른 세계에서 살았으면 했다고.
조명을 수리하는 사람이 아니라,
조명을 받는 사람으로.


겨우 이틀 쉬고
절뚝이며 출근하는
기울어진 널 배웅하고 돌아오다
기슭에서 크는 나무를 봤어.

나무가 말이야.

비탈서 자라 몸이 기울었어도
가지는 하늘로 모두 뻗었더라.
해를 향해 잎사귀를 틔웠어.

너처럼 말이야.



출장 중에 아이의 낙상 소식을 들었습니다. (아이는 연극 일을 합니다) 천장 조명을 고치다 전기를 먹고 사다리에서 떨어졌다며 속없이 웃습니다. 집에 와서 보니 꽤나 심각했습니다. 그럼에도 삶의 무대로 또 향하는 아이를 바라보며, 우리 사이에 연결된 탯줄을 조심스레 쓰다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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