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이 시작됨과 동시에 여학생들의 얼굴 가리기가 시작된다. 머리카락으로 얼굴 가리기(처녀귀신유형), 손으로 가리기(가면형), 도구를 사용한 가리기(전조작기 유형), 타인의 등뒤에 숨기(숨바꼭질 유형)등의 각자의 방식으로 소란이 시작된다. 사진을 찍는 사람(나) 눈에는 얼굴을 가리지 않는 것이 더 자연스럽고 이쁜데도 불구하고, 그런 소란에 살짝 섭섭한 마음이 생긴다.
그렇다고 사진 찍는 것을 싫어 하나... 그것도 아니다. 아이들이 놀고 있는 모습을 물끄러미 보면 틱톡이나 릴스를 찍고 있는 얘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모두 다 이상한 필터, 대부분 사람 얼굴을 알아볼 수 없는 필터를 씌워서 춤을 추거나 손동작을 하거나 이상한 행동을 따라 하는 행동을 하고 있다. 그런 울퉁 불퉁한 얼굴을 보면서 웃긴다고 깔깔 웃는다.
수많은 네 컷 사진 가게들이 영업을 유지하는 것을 보면 사진을 찍는 학생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있다. 그들은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한다. 추억을 남기고 싶어 하고, 자신의 예쁜 모습을 담고 싶어 한다.
그렇다. 사진 찍을 때 가리는 것도, 이상한 필터로 얼굴을 이상하게 만드는 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나는 어쩔 수 없는 40대다.
사진 찍자고 할 때 얼굴을 가리고 찍는 것은 20년 전에도 그랬다. 그때도 학생들은 나에게 같이 사진 찍자고 해놓고는 내 옆에 와서 자기 얼굴을 가리고 사진 찍었다. 나는 중학교, 고등학교 다닐 때 안 그랬던 것 같은데, 그래서 물어봤다. 왜 가리냐고? 어차피 단체사진을 찍으면 자기 얼굴밖에 안 본다. 난 항상 그런다. 다른 사람 얼굴을 신경 안 쓴다. 내가 눈을 감고 찍었는지, 내 얼굴이 옆사람 얼굴보다 크게 나왔는지 내 표정이 아니꼬운지, 내 얼굴이 못생기게 나왔는지에만 관심이 있다. 왜 얼굴을 가리냐는 질문에 "못생기게 나올까 봐요.", "부끄러워요." "이상하잖아요." 등 온통 물음표뿐인 답변들만 온다. 내가 볼 때는 다 너무 예쁜데... 물어봐도 도저히 알 수가 없어 챗GPT에게 물어보니 사진 찍는 사람을 믿지 못해서라고 한다. 사진을 찍는 사람이 자신의 얼굴 사진을 도용해서 자신이 통제하지 못하는 곳에 올리거나 공개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을 거라고 한다. 쳇!, 챗GPT에 반박하고 싶다. 학생들과 나 사이의 라포는 그 정도로 얕지 않다고... 서로에 대한 신뢰하는 마음이 있다고...
솔직히 나는 사진 찍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사진 찍히는 것은 더 더 더 싫어한다. 하지만 사랑하는 것을 보면 소중한 시간을 남기고 싶다. 나의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보며 하루에도 수십 장의 사진을 찍었던 것처럼... 예쁜 꽃을 보면 참지 못하고 수백 장의 사진을 찍는 것처럼... 멋진 풍경을 보면 담지 못하는 카메라 렌즈를 탓하며 그래도 담아보려 애쓴다. 이렇게 쓰고 보니 내가 파파라치처럼, 스토커처럼, 아이돌 홈마처럼 학생들을 찍고 다니는 것 같다. 아니다. 다 직업적 사명을 띤 보고서 용이다. 나중에는 얼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저화질 해상도로 작게 축소하여 한글파일에 집어넣을 사진이다. 그래도 학생들이 졸업을 한 후에 핸드폰에 남아 있는 사진들을 볼 때가 있다. 얼굴을 가리고 있으면 누구였는지 기억이 잘 안 난다.
상담실 내 책상 한편에는 학생들의 증명사진이 빼곡하게 들어있다. 주민등록증을 만들 때 굴욕이 없도록 최대한 예쁘게 찍은 사진을 한 장씩 받아서 넣어놓았다. 그렇게 소중한 이들이 한 명씩 늘어갈 때마다 기쁘다. 학생들에게 사진을 받을 때는 기분이 좋다. 소중한 보물들이 차곡차곡 쌓이는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