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의 귀찮아병

귀찮아! 귀찮아!

by 초코파이

나는 항상 집에서 키우고 있는 아직 사람이 되지 못한 파충류에게 말한다.

"방 좀 치워라.", "준비물은 미리미리 좀 챙겨라.", "시험이 코앞인데 시험범위는 알아와야지.", "밥 먹게 수저 좀 식탁에 놔줘!", "날씨가 시원한데 에어컨 좀 꺼라.", "운동이라도 좀 해.", "엄마랑 마트 가자.", "학교 갔다 오면 가방 좀 제자리에 갔다 놔라.", "냄새나는데, 좀 씻어라.", "머리 깎고 와라.", "먹은 과자 봉지는 쓰레기통에 좀 넣어줘!", "침대 위에서 과자 먹지 마.", "누워만 있지 말고 밖에 좀 나가.", "같이 밖에 나가자. 놀러 가자."

나의 잔소리는 매일매일 창의적이고자 노력하나 돌아오는 답변은 한결같다.

"귀찮아"

집에서 누워 있는 아들을 보면 한 마리의 애벌레를 보는 것 같다. 스멀스멀 천천히 기어 다니는 징그러운 것 같다가도 귀여운 애벌레. 뭐가 저렇게 다 귀찮은지... 다행인 것은 우리 집 파충류만 귀찮아 병에 걸린 건 아닌 것 같다. 학교에서도 사춘기를 벗어나고 있는 고등학생들 조차 교복을 안 입은 이유, 지각한 이유, 수업을 열심히 안 듣는 이유, 급식을 안 먹는 이유 등... 많은 부적응(내 기준이다.)의 이유를

"귀찮아요."

로 일관한다.


사람은 누구나 귀찮다. 나도 게으르고, 아무것도 하기 싫고 귀찮은 날이 많다. 세상을 사는 일은 만만한 일이 아니다. 세상에는 귀찮은 일이 너무 많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귀찮아 병에 걸린 아이들을 보면 저렇게 귀찮은데 밥은 어떻게 먹고 숨은 어떻게 쉬나라는 의문이 생긴다. 이렇게 사춘기의 아이들이 귀찮아하는 이유 중 첫 번째는 사춘기에는 아이들이 급성장하는 시기여서 키 크는데, 성장하는데 에너지를 쏟다 보니 에너지를 아끼는 모드로 들어간다고 한다. 그래서 귀찮아하고 늘어지고, 잠을 자거나, 에너지가 많이 안 드는 일(누워서 유튜브 보기 등)을 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면 귀찮아하는 아이를 보며 '키가 크려고 그러나?'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둘째는 전두엽이 리모델링 시기인 사춘기 시기에는 아직 전두엽을 효율적으로 운영하지 못한다. 그래서 전두엽이 통제력이 미숙해서 "해야 한다는 것을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귀찮아."라고 생각하며 자신의 감정, 행동등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래서 과제나 정리, 계획 같은 집행기능이 필요한 활동에 부담감을 느끼고 도망가고 싶어 하는 경향이 성인들보다 더 강하다고 한다. 청소년기에 학습플래너를 적고 자기 주도적으로 공부하는 아이들은 대단한 아이들이다. 앞으로는 플래너 적는 아이들이 있으면 존경의 눈빛을 보내줘야겠다. 공부뿐만이 아니더라도 운동이나 취미활동, 뭐라도 한다는 것은 대단한 일인 것 같다.


셋째는 복잡한 고민과 감정에 대한 단순한 표현이다. '부모님이 해주는 밥 먹고 공부만 하면 되는데, 뭔 고민이 있을까'라고 어른들은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청소년기는 나름 고민이 많고, 걱정이 많은 시기이다. 상담을 하면서 학생들과 주로 이야기하는 주제는 "친구관계", "학업스트레스", "진로고민" 이 주를 이룬다. 이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복합적으로 다른 문제들이 같이 나타나지만 표면적으로 나타나는 문제는 이 세 개가 거의 대부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친구들은 예민하고 나도 예민하고 서로서로 예민한 아이들 사이에서 또래관계를 이어 간다는 것이 쉽지가 않다. 친구들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사춘기이다. 학업스트레스는 말할 것도 없다. 하기 싫은 일을 누가 누가 더 잘 참고 하느냐는 문제이다. 안 하면 불안하고 하면 힘들다. 누구나 겪고 있는 문제다. 또한, 앞으로 내가 뭘 하면서 먹고살지 직업을 정해야 할 것 같은 압박을 받는데, 정작 내가 잘하는 게 뭔지, 좋아하는 것은 뭔지 하나도 모른다. 막막하고 두렵다. 이런 걱정들을 하다 보면 심리적으로는 피곤하다. 지친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감정을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귀찮음"이다.


넷째는 스스로 하고 싶다는 표현이다. 부모님이나 다른 사람이 시키는 대로 하기 싫고, 자신이 알아서 하고 싶다는 자존감의 표현으로도 볼 수 있다. 청소년기는 누가 시키는 것을 하는 것을 싫어한다. 스스로 결정하고 실행하면서 자아정체성이 확립되는 시기다. 그런데, 먼저 하기 전에 누군가가 시킨다면 하기 싫어진다. 청소년기의 청개구리병은 귀찮아 병으로 치환되기도 하나보다. 이런 걸 생각해 보면 기다려 주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해진다.


이런 이유들을 종합해 보면 결국 귀찮아 병은 사춘기에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귀찮은 것을 참고해야 되는 것을 알지만 잘 실행할 수 없는 사춘기를 지나고 나면 귀찮아 죽겠지만 결국은 해내는 어른이 될 것이다. 귀찮아 병에 걸린 아이들을 잘 키우는 방법은 "귀찮아"라는 말속에 숨어있는 감정을 잘 읽어 줘야 할 것 같다. 귀찮아라는 말은 우울하다는 표현인지. 하기 싫다는 말인지. 나를 내버려두라는 말인지. 나는 지금 크는 중이니 조금 더 기다려달라는 말인지 자세히 들여다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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