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교실에서 2인 책상을 써본 세대이다. 국민학교를 졸업한 나는 그런 책상이 기억이 난다. 보통 그 책상의 가운데에는 세월의 흔적에 따라 굵던지 얇던지 금이 하나씩은 그어져 있고, 시험을 칠 때나 쪽지 시험을 볼 때는 책상 정 가운데에 책가방을 올려놓고 서로의 시험지를 보지 못하게 시험을 쳤다. 지금처럼 한 반에 20~30명 정도가 있는 교실 풍경이 아니라 50명 이상씩 콩나물시루처럼 빼곡히 들어차 있던 교실이었다. 그때 당시의 책상은 참 여러 용도로 활용되었는데, 쉬는 시간에 의자 대신에 책상 위에 걸터앉아서 친구들과 잡담을 하기도 하고, 그렇게 걸터앉았다고 혼나기도 했지만 아이러니하게 벌을 받을 때는 책상 위에 무릎 끓고 앉아라고 하여 의자나 책을 들고 책상 위에 앉아서 벌을 받기도 했다. 또한 책상을 붙여서 탁구도 쳤고, 책상에서 밥(도시락, 급식까지도)도 먹었다. 학창 시절의 그 삐걱대는 책상과 의자를 기억하는 세대들에게, 몸에 맞지 않는 책상에 몸을 맞춰서 구겨 넣어야 했던 세대들에게, 왜 그렇게 자세가 구부정하냐고 사람들이 물어보면 어릴 때 책걸상이 작아서 그랬다고 핑계를 대는 세대들에게 충격적인 말을 하고 싶다. "요즘 책걸상은 높낮이 조절이 됩니다."
책걸상의 높낮이 조절이 된다는 것의 의미는 책상을 만드는 곳(업체) 사는 곳(교육청, 학교), 요구하는 곳(학생, 학부모)에서 모두 하룻저녁만 지나도 몸이 달라져 있는 성장기 학생들의 성장을 고려하여 책상이 배치되고 있다는 말이 되겠다. 확실히 지금 학교 책상에 앉아보면 다르다. 뭔가 인체공학적으로 설계한 느낌이 든다. 왠지 그 좁고 불편하고 낡고 닳은 책상에서 열심히 공부한 것이 억울한 생각도 든다. 하지만 항상 결핍은 성장을 만드는 법이다. 삐걱거리고 몸에 맞지 않아 엎드려서 자는 것도 불편했던 책상에서 공부하던 옛날 학생들보다 현재 학생들이 더 많이 자는 것 같다.
교실의 책상은 나의 공간이지만 내가 쓰는 동안만 나의 것이다. 개인적인 물건 같지만 다음 학년에게 되물려 줘야 하는 물건이다. 간혹 책상에 자신이 앉은 것을 표시하기 위해 낙서에 최선을 다하는 학생들이 있었다. 지금이야 내가 학교 다닐 때 보다 덜하지만 내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모든 책걸상은 나무였고, 낙서뿐만이 아니라 무구정광 대다라니경(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 문화의 후손답게 칼로 자신의 흔적을 새기고, 피기도 했으며, 책상의 편리함을 추구하고자 볼펜 하나 정도 꽂을 자리를 만들기 위해서 장인정신을 발휘하여 결국 구멍을 뚫어 내고 말았다. 그렇게 그 시절에는 참으로 장인이 많았다.
학교 책상 서랍은 요술 서랍이다. 정말 서랍이 작아서 여기에 책 몇 권 넣으면 끝날 것 같지만 교과서와 부채모양으로 접어진(인공적으로 접은 것은 아니다. 책들과 여러 가지 물건에 밀려서 자연적으로 생긴 현상이다) 가정통신문이나 시험지들, 체육복, 리코더, 선생님이 들어오셔서 급하게 밀어 넣은 빵 봉지 까지...... 내 책상 서랍은 그랬다는 말이다. 뜨끔하는 사람도 몇 명 있겠지만, 아니 많겠지만 너무 자괴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 청소년기 책상 서랍은 그런 것이 정상이기도 하다(지금은 깨끗하다는 말도 아니다) 청소년 부모(특히 엄마)와 자녀 간에 가장 많이 싸우고 엄마가 화를 내는 일은 공부가 아니다. 방청소다. 청소년들은 쉽게 말해 정리정돈을 잘할 수 있는 뇌가 없다. 물론 깔끔하고 정리정돈을 잘하고 항상 자신이 자리를 깨끗하게 유지하는 학생도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지나치게 깔끔하다면 불안이 높은 성향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건 더러운 책상 서랍을 가진 자의 변명이 아니다. 내가 또는 나의 자녀가 더러운 책상 서랍과 지저분한 방을 가지고 있더라도 이게 비정상은 아니라는 말이다. 너무 어지러운 책상을 봐도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시길 바란다. 나는 안 그랬는데 생각할 수도 있지만 누구 자식이겠는가, 기억의 왜곡은 흔하고 쉬운 일이다.
지금은 코로나로 인하여 학교 교실에는 짝꿍이 없다. 혼자 외롭게 떨어져 있는 책상을 보며, 특히 더 개인적인 공간이 되어 버린 책상을 보며, 그래도 짝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고, 짝 때문에 피해를 보는 일도 없고, 괜히 누구랑 짝이 되나, 누구랑 짝이 되지 않을까 설레거나 걱정하는 일도 없어서 좋은 것 같기도 하면서, 한편으로 불편한 책상에 몸을 맞춰 넣고 짝과 지지고 볶던 때를 떠올려 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