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샤프

10대 물건 탐구 : 탐이 난다.

by 초코파이
여분 수능 샤프는 하나만 가져도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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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들 물건 중에서 가장 탐나는 것이 있다면 난 수능 샤프를 꼽을 것이다. 수능 샤프는 그해 수능을 치는 수험생에게만 주어진다. 수능 감독을 가면 1교시 시작 전에 학생들에게 수능을 치기 위해 수능 샤프와 컴퓨터용 사인펜(컴싸)이 주어진다. 수능 샤프 외에 자신이 가져간 샤프를 사용하는 것은 부정행위에 해당된다. 연필은 되지만 개인 샤프는 안된다. 그래서 수험생들은 이 샤프로 문제를 푼다. 그래서 이 샤프는 해마다 색깔이 변한다. 그래서 수능 감독을 가게 되면 이 샤프를 컬렉션으로 모으고 싶어 진다. 수능을 진행하는 선생님들께 비굴하게 말하게 되는 것이다. "여분 수능 샤프는 하나만 가져가도 될까요?" 두 손을 모으고 아주 공손하게 말한다. 정말 필요한 것처럼...

이 수능 샤프가 왜 좋냐고 하면 완벽한 그립감에 적당한 무게감. 이 샤프를 쥐고 있으면 수학의 정석이 풀어보고 싶어 지게 만든다. 인터넷에 검색하면 **상사에서 판다고 소개하면 살 수 있지만 왠지' 20**학 수학능력시험'이라고 적혀있지 않으면 그냥 평범한 샤프가 되어 버리는 것 같다.

대부분의 중등 선생님들은 수능 감독 가는 것을 싫어한다. 나도 마찬가지이다. 외부 사람들이 볼 때는 수능 감독을 가면 감독 수당도 주는데 뭐가 좋지 않을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세계 최고의 학구열을 자랑하는 대한민국에서 수능 감독을 하는 것은 잘해야 본전이다. 매시간마다 동공 지진이다. 수능 감독교사 연수 교재(매뉴얼이지만 주의사항을 적은 책이라고 할 수 있다.)가 책 한 권이다.(두껍진 않지만) 재채기도 참아야 하고, 숨소리도 크게 내면 안되고, 옷도 바스락 거리는 옷은 지양하도록 한다. 발소리도 많이 내면 안되고, 그날만은 최고 상전인 수험생에게 거슬리는 행위는 모두 다 금지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시험 시간은 얼마나 긴가. 1교시 국어시간은 학생들에게 나눠줄 것이 많고 확인하고, 안내할 것이 많아 분주해서 싫고, 2교시는 저엉엉말 긴데 할 게 없어서 싫다. 3교시는 영어 듣기가 있어서 숨소리도 내면 안되고 긴장되어 싫고, 4교시는 시험지를 봉투에 넣고 빼고, 누구는 치고 누구는 안치고, 선택과목이 다 다르고 복잡해서 싫다. 5교시(한 번도 5교시 감독은 해본 적이 없지만)는 다 집에 가는데(많은 학생들이 제2외국어 영역을 치지 않는다.) 집에 못 가서 싫다. 이것뿐만이 아니다. 시험장의 분위기는 3년 동안 수능 하나만을 위해 노력하고 결실을 보고자 하는 자리이니 만큼 그 분위기와 기운에 압도당하여 그 수험장에서 아침 7시 30분부터 4시 30분(1교시에서 4교시까지 감독을 하면 보통 4시 30분쯤 마친다.)까지 하다 집에 도착하면 몸살이 난다.

이렇게 수능 감독을 싫어하지만 나는 수능 샤프가 좋다. 수험생들은 나만큼 반갑고 좋지는 않겠지만 나는 해마다 색깔별로 모으고 있다. 하늘(2019), 하얀(2021), 갈색(2022)(2020 수능 샤프만 좀 달라서 없다.)을 가지고 있다. 내가 이렇게 수능 샤프를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서 곰곰하게 생각해본다. 그립감이나 무게감, 사각사각 소리보다 어쩌면 수능 감독을 좋아하기 위한 내 나름대로의 합리화이지 않을까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누군가에겐 인생에서 중요한 순간인데 마냥 싫어하기만은 미안해서 보람과 즐거움, 컬렉션을 모으는 재미 등으로라도 나 자신을 꼬시기 위한 방편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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