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의 물건 : 밥보다 중요한 것
밥을 같이 먹을 친구가 없어요.
네모난 식판...
그 식판을 대학교 학식에서도 쓰고 구내식당에서도 쓰는데 초. 중. 고등학교에서만 제공하는 밥은 급식일까. 사전적 의미로는 식사를 공급함이라고 하는데, 학교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어 급식을 먹어야 하기 때문에 학교 급식에서 급식이라는 말을 가장 많이 쓰지 않을까 싶다.
나도 고등학교를 다닐 때는 급식을 먹었다. 지금처럼 급식소에 가서 급식을 먹는 것이 아니라 반반마다 스텐 웨건에 국과 밥반찬을 실어 오고, 급식당번들이 국, 밥, 반찬을 하나씩 맡아서 배분하던 했고, 교실 자기 자리에 앉아서 밥을 먹던 시절이었다. 학교 다닐 때는 먹고 돌아서면 배가 고플 때라 급식 시간이 엄청 기다려졌다. 요즘은 급식 애플리케이션이 잘 나와서 핸드폰으로도 오늘 급식이 뭐가 나오는지 사진으로 까지 볼 수 있지만, 예전에는 한 달치 식단이 적힌 통신문을 교과서보다 더 너덜너덜 해질 때까지 보고 또 보며, 급식을 기다렸다. 중학교 때까지 도시락을 싸다니다가 고등학교에 들어와서 급식을 하게 되어 좋아했던 것 같다. 고등학교 급식을 하지 않았다면 우리 엄마도 하루에 옛날처럼 도시락을 다섯 개는 싸야 했을 것이다. 급식을 먹으려면 당번들이 돌아가면서 국, 밥, 반찬을 나르고, 식판을 수거하고, 다시 가지고 가는 번거로움에도 불구하고 급식이 기다려지는 시간이었다.
요즘 10대들은 급식을 먹지 않는 아이들이 많다. 무상급식으로 바뀌고, 학교에서 급식을 먹는 것은 학생 학교에서 수업을 듣는 것처럼 너무 당연한 것이 되었지만, 요즘 학교에는 급식을 먹지 않는 아이들이 많다. 점심시간에 차라리 엎드려 잠을 잔다. 간혹 다이어트 때문에 급식을 안 먹는 학생들도 있지만 학생들이 급식소에 가지 않는 다수의 이유는 친구가 없어서이다. 급식소에 혼자 가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잘 모르는 친구에게 급식을 같이 먹으러 가자는 말을 하는 것은 더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혼자 밥을 먹으러 갔을 때 다른 얘들이 볼 때 "쟤는 친구가 없는 애구나."라고 인식되는 것에 대한 공포심이 아이들에게 있다. 새로운 학년이 시작되고, 새로운 학교에 가게 되고,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었을 때 요즘 10대들이 겪는 스트레스는 어른들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이다. 고등학교 3학년 입시 스트레스보다 고등학교 1학년의 새 학교, 새 학년 스트레스가 더 심하다. 혼밥을 할 줄 알아야 진정한 어른이 되는 것이라고 농담을 해보지만, 이 아이들은 배고픈 고통보다 다른 아이들의 시선이 더 신경 쓰이는,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다 신경 쓴다고 생각하는 그런 나이인 것이다. 그럴 때면 나도 부끄럽게 아이들에게 고백을 한다. 교사인 나도 새 학교로 발령을 받고 3월은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 같이 밥 먹을 사람도 없고, 혼자 급식을 먹는 게 어색하고, 낯설기 때문이다. 이런 스트레스를 학교 다니는 내내 받는다고 생각하면 정말 힘들 것 같기도 하다.
우리가 밥을 먹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밥 먹었냐는 말을 인사로 건네고, 밥은 먹고 다니냐는 말로 걱정을 대신한다. 우리는 밥만 잘 먹으면 뭐든 할 수 있고, 힘을 낼 수 있고, 어려운 일을 극복할 수 있을 것 같다. 밥은 정을 나타내기도 하고, 우리는 밥을 먹고 에너지원을 만들고, 한창 크는 아이들은 밥을 먹고 자란다. 또, 밥은 가장 단시간에 우리를 기쁘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우리가 한 끼만 안 먹어도 힘이 없고, 배가 고파서 짜증이 나며, 밥도 못 먹는 신세에 서럽기도 하다. 이렇게 중요한 밥을 먹어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만 밥을 먹지 못하는 마음은 얼마나 서러울까...
요즘은 코로나19 때문에 급식소를 가면 자신의 지정 자리에 앉아야 하고, 급식소에 칸막이가 설치되어 있어 앞에 앉은 친구와 이야기도 잘하지 못한다. 밥 먹을 때 친목과 자유로움과 조잘거림, 생기발랄함이 사라져서 아쉽기는 하지만 좀 눈치 안 보고 혼밥 할 수 있어서, 밥을 같이 먹으러 갈 친구가 없어서 망설이게 되는 그런 일이 좀 없어진 것은 좋은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