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삑! 학생입니다." 당신의 신분을 버스에 타고 있는 만인에게 공표한다. '보아라. 너는 학생이다.' 라며 이렇게 친절하게 알려준다. 내가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중고생 요금을 적용받는 중고생이 맨 처음 되었을 때는 회수권을 썼다. 아마 나와 비슷한 나이이거나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이 회수권을 추억의 물건으로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매점에서 10장씩 양면으로 인쇄되어 있는 회수권 백장이 한 번에 찍어서 판매했다. 내가 중학교 다닐 때 중 고등학생요금이 190원~ 260원 정도 했었는데, 2만 원여를 주고 매점에서 백장을 사는 날은 곳간에 곡식 채운 듯 뿌듯한 마음이, 마음만은 부자가 된 것 같았다. 장인정신으로 회수권을 칼로 잘 잘라서 정성스럽게 회수권 케이스(고무바퀴가 달려있어서 돌리면 한 장씩 나오게 할 수 있다.)에 넣고 다녔다. 내 친구들 중 몇몇은 10장이 인쇄된 회수권을 원래 크기보다 1/10 정도 더 작게 잘라서 총 11장을 만들어내는 꼼수를 쓰는 친구들도 있었다. 당연히 나는 그렇게 까지 하지는 못한다. 간이 작기 때문이다. 내가 버스요금통에 이걸 넣었을 때 기사 아저씨에게 걸리면 얼마나 쪽팔리겠나. 버스에는 우리 학교 학생(여중생)만 있는 게 아니라 맞은편 남 중고 학생들도 많이 타는데... 그 회수권은 종이라서 살랑살랑 떨어지기 때문에 버스 기사 아저씨들이 한 장 한 장 눈으로 확인하는 것 같았다. 어른들이 쓰는 토큰은 가볍지만 떨어질 때 금속들이 부딪히는 소리가 나긴 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충전식 버스 카드를 쓰기 시작했다. 아마 고등학교 2학년부터 버스 카드를 썼던 것 같다. 그때만 해도 버스카드는 혁신이었다. 충전만 하면 되다니... 그때도 "삑! 학생입니다." 소리가 났다. 교복을 입고는 당당하게 '삑 학생입니다.'를 찍고 다녔지만 사복을 입고는 학생카드를 찍는 것이 눈치가 보였다. 내가 학생카드를 찍으면 기사님이 내 얼굴을 한번 더 쳐다보는 것 같았다. 특히 수능이 끝나고 20살이 된 2002년 1월 1일부터 두 달 동안 학생카드를 쓸 수이지만 (졸업할 때 까지는 고등학생이니까) 삑! 학생입니다. 소리가 나면 왠지 모르게 움찔하며 맨 뒷자리로 걸어 들어갔다.
요즘 학생들의 교통카드는 체크카드가 대부분일 거다. 학생증이나 청소년증이 교통카드와 체크카드 기능을 가지기도 하고, 예쁜 캐릭터도 그려져 있다. 환승을 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에 교통카드는 필수다. 교통카드뿐만 아니라 스마트폰으로도 찍을 수 있다. 등 하굣길 버스를 탈 때 그 기분을 떠올려보면 비 오는 날이 제일 싫었던 것 같기도 하다. 요즘도 그렇겠지만 각자의 우산이 내 다리를 스치면 종아리가 축축하고 양말도 축축해진다. 그 버스 안의 습기와 만원 버스를 탔을 때, 그 습한 기운과 땀냄새 등 비 오는 날 버스는 정말 타기 싫었다. 그럼에도 우리 때는 버스를 타면 자신이 매일 앉는 지정석과 같은 자리가 있기도 했고, 같은 시간에 만나는 버스 안 사람들을 관찰하기도 하는 낭만도 있었다고 할까? 모두가 그러니까 버스 안에서 라는 노래가 나오지 않았을까?
나는 매일 학교 가는 버스 안에서 항상 같은자리 앉아 있는 그녈 보곤 해. 지만 부담스럽게 너무 도도해 보여 어떤 말도 붙어 자신이 없어 - ZaZa 버스 안에서 중에서
이 노래를 안다면 나이가 많다는 뜻일 거다. 아마 사람들이 아줌마 아저씨라고 부르는 나이일 것이다. 나는 이제 아줌마 아저씨라고 불리는 나이가 되었지만 그게 나쁘다고만 생각하지 않는다. 나이가 들었다고 새로운 세대들에게 한물간 취급을 받을지라도 지금의 나는 조금 덜 조급하고, 덜 불안한 그런 안정감을 즐기고 있다. 좋은 점과 나쁜 점은 공존한다. 버스나 대중교통은 기다려야 하고, 비 오는 날 불편하고, 서서 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단점이 있지만, 요금이 저렴하고, 버스 안에서의 설렘도 획득 가능하다. 학생이라는 신분이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다. 학생은 교통요금을 할인받지만 학생으로서의 한계를 지니고 있다. 나이가 들어서 좋은 점도 있지만 나쁜 점도 있다. 뭐든 항상 그렇다. 좋은 점만 존재하는 것도 극히 드물고, 나쁜 점만 존재하는 것도 극히 드물다. 멀리서 넓게 보면 모든 게 그렇다. 그래서 나는 누가 나에게 과거로 돌아갈 수 있으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냐고 물어보면 안 돌아가고 싶다고 말한다. 나는 지금의 장점을 더 크게 생각하고, 지금이 더 좋아라며 살아간다. 그게 40여 년을 산 내 삶의 지혜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