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에서 성적 통지표가 반가운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전교 1등 정도가 되면 뿌듯해하며 성적 통지표를 자랑스럽게 볼까? 아니면 전교 1등 조차 다음 시험에서 전교 1등을 빼앗길까 봐 걱정하면서 불안한 마음으로 성적 통치표를 볼까? 전교 1등을 안 해봐서 잘 모르겠지만 10대들이 성적 통지표를 대체적으로 반가워하지 않는 물건이라는 것은 경험상 알고 있다. 성적이 급 상승 했거나 자신이 노력한 것에 비해서 성적이 잘 나왔다고 생각하는 학생들을 제외하고는 성적 통지표는 어쩌면 정말 피하고 싶은, 치트키가 있다면 건너뛰고 싶은 그런 물건인 것 같다.
꼭 입시위주의 문제점이 제기되고 있는 우리나라만의 문제점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외국 하이틴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주인공들이 꼭 성적표를 들고 우울한 표정으로 집에 가는 모습을 자주 봤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더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고 장담할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는 입시위주의 과열경쟁을 부축이는 교육의 문제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입시 위주의 교육의 문제점이 최근의 문제도 아니고 아마 우리나라는 겨레가 생긴 이레로 계속 겪었던 문제였던 것 같다. 조선시대에도 또, 그전 고려, 삼국시대에도 과외가 있었을 테고 과거를 위해 학업 스트레스를 받았을 테니 말이다. 20년 전도 입시위주의 교육의 문제점에 대해서 논의하며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아직도 해결되지 않는다. 그 문제점은 아마 우리나라 교육의 영원한 문제점으로 남지 않을까 싶다.
나이가 들어서 좋은 점은 그렇게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성적 통지표를 꾸준히 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물론 그것보다 더 스트레스받는 것들은 많지만 그렇게 잔인하게 내가 몇 등인지 한 학기 동안의 성적표를 매번 확인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성적표를 부모님께 보여 드리지 않아도 된다는 점도 좋은 점이다.
사람들은 "학교 다닐 때가 좋았어.", "그때가 좋았어."라고 추억을 회상하며 말한다. 하지만 그때로 돌아간다면 지금이 좋을 때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항상 과거의 회상은 망각되고 미화된다. 산모들이 아기를 낳을 때 죽을 것 같이 아프고 힘들었지만 또 둘째를 낳을 수 있는 이유도 그것이다. 학생 때는 학생들 나름대로의 학업 스트레스가 얼마나 큰지 그때는 아마 후회하고, 슬퍼하고, 괴로워하고, 가슴졸였지겠지만 지금은 기억에서 지워져 그때만큼 느끼지 못한다. 우리의 망각시스템은 이럴 때 삶을 살아가게 하는 훌륭한 기술이 된다. 그때를 망각하지 못한다면 한평생 얼마나 괴롭게 살아갈 것인가?
내가 돌이켜서 겨우 겨우 생각을 떠올려보면 시험을 친다는 것, 시험 성적표를 받는다는 것은 마치 재판 판결을 받는 사람 같았다는 기억이 안개처럼 어렴풋이 떠오른다. 나도 성적 때문에 울기도 하고, 성적이 나의 인생을 말해주는 것 같아 내 인생이 망할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고, 엄마 아빠에게 성적표 보여줄 생각에 걱정이 되어 집에 가는 버스에서 내내 한숨을 쉬었던 적도 있었다. 그때는 망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아주 사소한 일이다. 멀리서 보면 그런 사소한것들이 모여서 지금의 나를 만들었겠지만, 그렇게 힘들어하거나 속상해 할일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로 행복이 성적 순은 아니었는데, 그 당시 학생의 신분으로서의 행복에는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그때는 확실히 스트레스를 받았으니까. 부모님에게 성적표를 가지고 갈 때는 너무 발걸음이 무거웠던 것 같다. 나는 왜 성적이 잘 받아 본 적이 없을까? 성적표를 들고 신이 나서 집에 갔을 때가 거의 없었던 것 같다(국민학교 다닐 때는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때는 거의 수 아니면 우였으니까. 나는 국민학교를 졸업했다. ) 부모님이 나의 성적표를 보고 하는 말은 "앞으로 좀 더 노력해라" "공부 더 열심히 해라"와 같은 말로 정해져 있었고 성적 때문에 혼나거나 하진 않았지만 나에게 성적표를 들고 가는 날은 뭔가 죄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 사실 지금도 성적표를 나눠 주는 그 공기, 소리, 냄새, 떨림... 이런 것들이 떠오르는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성적표에 대해서 부정적인 기분을 기억하고 있을 것 같다. 성적표를 조작해서 부모님에게 보여드렸다는 친구를 본 적이 있었다. 그 친구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위조를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나도 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 부모님을 속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지금도 10대들은 성적 통지표를 받는다. 초등학생인 나의 자녀들도 방학이 시작하는 것과 동시에 통지표를 가지고 왔다. 요즘 초등학교 통지표를 잘함. 보통. 노력 요함. 의 세 단계 이긴 하지만 아무튼 성적 통지표이긴 하다. 공부를 누구나 잘하고 싶을 건데, 잘하는 학생은 한정적이고, 나머지 못하는 학생이 있어야 잘하는 학생이 생기는 법이다. 모두 다 잘할 수는 없다. 성적표 때문에 학업 스트레스를 받는 학생들이 이 글을 읽고 조금은 위로를 받았으면 좋겠다. 그 성적표는 지금 학교 시험에 대한 성적표이지 너의 인생에 대한 성적표는 아니다. 학교에서 공부하고 시험을 치느라 고생했어. 네가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