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뤄쓴 것을 시험 종료 5초전에 알았다
헤밍웨이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문장을 6단어로 만들어보겠다고 하고는 "For sale : baby shoes, nerver worn"(사용한 적이 없는 아기 신발을 팝니다)라고 말했다. 모든 사람들이 수긍하듯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문장이지 않을까? 나는 슬픈문장 말고 사람의 생명과 상관없이 소름끼치는 문장(청소년판)으로 만들수 있다. "OMR카드의 답을 미뤄쓴 것을 시험 종료 5초전에 되었다." 정말 등골이 오싹하고 식은 땀이 흘러 내리며 머리카락이 쭈뼛쭈뼛서는 문장이지 않는가? 올 여름을 가장 시원하게 만들어줄 호러문장이다.
OMR카드는 변하지 않는다.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20년이 되었지만 그대로다. 학교에서 쓰는 물품들은 정말 많은 변화를 거치지만, omr카드는 변하지 않는 물건 중 하나인 것 같다. 나는 아직도 OMR카드를 보면 심장이 두근거린다. 특히, 정기고사 감독에 들어갔을 때 종료 1분 전에 학생이 상기된 얼굴로 손을 들고 OMR카드를 바꿔 달라고 할 때는 더 심해진다. "침착하게......"라고 말하며 OMR카드를 건네 주지만, 내 심장이 더 두근거리는 것 같다. 생각보다 1분이라는 시간은 길긴 하다. 20문제 정도는 마킹할 수 있는 시간이다. 그래서 실수하지 않고 침착하게 마킹해야 한다. 그렇지만 OMR카드를 건네고, 학생의 손이 마킹하는 것을 보고 있는 내내 식은땀이 난다. 마킹하는 학생이 더 심장이 졸아 들며, 아무리 추운날씨라도 얼굴이 벌게 지고 그와는 상반되게 등에서는 식은땀이 나겠지만 보는 사람도 얼마나 떨리는지 모른다.
그렇다. 다른사람이 마킹하는 것만 봐도 떨리는 나는 학교 다닐 때, 자주 미뤄서 마킹을 했다. 그래서 학생들의 마킹하는 떨리는 순간들을 보면 그때의 감정들이 떠오른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왜 그렇게 자주 미뤄 썼을까? 뭐에 홀딱 씐 것처럼, 나름 확인한다고 했는데 가채점과 나의 점수가 상반되는 것이었다. 꼼꼼하지 못하고 확인하는 것을 싫어하고, 나 자신을 너무 믿는 성격과 (자만심이라고 해야 하나) 항상 부족한 시험시간, 특히 수학 시간 등등의 핑계를 대어 보지만 나의 선생님들은 "마킹도 실력이다."라고 말씀하시며 나의 스스로에 대한 위로를 깨 주셨다. 맞다. 마킹도 실력이다. 나는 그때 실력이 부족했던 것이다. 그래서 마킹을 하고, 확인해볼 시간이 없었고, 그냥 그렇게 미뤄 쓴(생각해보니 당겨서 쓴 적도 있다.) 것이다. 그때는 하늘이 무너지고, 세상이 끝나는 줄 알았다. 시험성적 하나로 모든 게 끝난 것처럼 좌절하며 울고 불고 했었다. 그때는 그런 좌절스럽고 슬픈 기분이 너무 당연했지만 지나고 나서 보면 그런 시험성적이 내 인생에 무슨 영향을 미쳤을까 싶다. 어쩌면 나비 효과처럼 영향을 미쳤을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시험 한번 망쳐도 그때는 세상에는 끝날것 같았지만 20년이 지난 지금은 그것과 상관없이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는 것이다.
학교에 있으면 시험 불안이 있는 학생들을 종종 본다. 시험 기간에 불안해서 잠도 못자고, 공부할때마다 눈물이 난다고 한다. 시험지를 받아들면 앞에 캄캄해지고 눈물만 나는 학생들도 있다. 시험 불안은 정도의 차이이지 누구에게나 있다고 생각한다. 시험기간이 되면 소화도 안되고, 잠도 잘 못 자고, 기분이 우울하거나 가까운 사람에게 짜증을 많이 내고 두통이나 복통에 시달린다면 시험 불안 증상이라고 할 수 있다. 모두 알다시피 높은 시험 불안 증상이 시험을 잘 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불안이 너무 높으면 실수를 하기 쉽고, 답안지를 미뤄 쓰는 등의 행동을 하게 된다. 그렇다고 너무 불안하지 않으면 시험공부 자체를 하지 않을 것이다. 시험불안이 있다는 말은 시험을 잘 치고 싶다는 말이 될 수도 있다. 시험을 망치게 될까 봐 불안한 것이다. 시험을 너무 잘 치고 싶은데, 시험을 잘 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 시험 불안을 겪는 것은 참 아이러니하다. 시험불안을 극복하고 싶다면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들여다보아야 한다. 자신의 마음에게 말해줄 수 있어야 한다.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올 거라고...... 자신을 믿는 것. 가장 어렵지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어른이 된 지금도 시험을 칠 일이 있고, 공부를 할 일이 생긴다. 다행히 이제는 실수를 하지 않는다. 학교에 다닐 때는 그 OMR 카드가 무섭고, 지긋지긋했고,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공부와 시험으로부터는 적어도 OMR카드는 쓸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어른이 된 지금도 종종 컴퓨터용 사인펜으로 신중하고 동그라미 칸 안을 채워 넣는다. 공부와 시험은 끝이 없다. 어차피 시작은 했고 끝은 없다. OMR카드는 피할 수 없는 숙명과도 같은 물건이다. 마라톤에서 러너스 하이가 오면 지구 끝까지 뛸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공부도 마찬가지다. 어렵고 힘든 순간을 버티고 넘어가면 즐거워지는 순간이 온다. 시험과 공부를 좋아하고 즐기는 변태가 되어라는 말은 아니다. 피할수 없으니 즐기는 척이라도 하는게 더 도움이 된다는 말이다. 언젠가는 좋아할 지도 모른다고, 그런식으로 자기 체면이라도 걸어야 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