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복

10대 물건 탐구: 학교를 떠나게 되면 그리워지는 그것

by 초코파이
나 때는 말이야


교복 이야기를 하면 "나 때는 말이야"라는 말이 안 나올 수가 없다.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의 교복은 흰색 카디건이었다. 흰색 가디건이라 하면 양모나 캐시미어의 포슬포슬한 예쁜 카디건, 스마트와 부티를 겸한 그런 예쁜 가디건을 떠올릴 수도 있지만 흰색 나일론 재질의 가디건이었다. 주말마다 가디건을 빨아 옷걸이에 걸어서 말리면 카디건이 축축 늘어졌다. 오래 입을수록 늘어진다고 하여 일명 할매 가디건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청소년기의 급격한 성장을 고려한 고효율의 아이템이 아니었나 싶다. 교복 이야기를 하면 왜 나의 학창 시절 이야기를 해야 되냐 하면 요즘 중고등학생들은 교복을 잘 입지 않는다.(학교마다 다르지 않을까 싶다.) 교복에 대해서 내가 학교 다닐 때만큼 심하게 규제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 때는 그 할매 가디건이라도 무조건 입고 등교를 해야 했었고, 교복 치마를 줄이거나 수선해서 입으면 선생님들께 매번 혼나던 시절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넥타이, 명찰을 달지 않고 교문을 지나가는 일은 심장을 조여올 만큼 걸릴까 봐 조마조마한 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요즘 학생들을 보면 나 때는 말이야 라며 교복을 잘 입고 다녔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는 것이다.



교복을 잘 안 입고 다니는 학생들에게 왜 교복을 입고 다니지 않냐고 물어보면 학생들은 교복이 작아졌다. 바지가 찢어졌다. 교복이 없어졌다. 어제 빨아서 오늘 못 입고 왔다 등의 여러 가지 핑계를 댄다. "나 때는 말이야 한참 성장할 것을 예상해서 처음부터 교복을 엄청 큰 걸로 샀단다.", "나 때는 말이야 교복 치마랑 바지 엉덩이 쪽이 맨질 맨질 해져서 천을 덧대어서 수선해서 입었단다. ", "나 때는 말이야 교복이 더러워지면 바로 빨아서 드라이기로 밤새워서라도 말려서 입고 오는 게 당연한 줄 알았단다."라는 라테를 외치고 싶지만 꾹 참아 본다. 나름 순종적인 학창 시절을 보내는 나는 한 번도 교복을 수선해서 입은 적은 없지만 친구들은 거의 대부분 교복을 수선해서 입고 다녔다. 치마 주름을 10센티미터만 남기고 박아 넣기도 하고, 바지통을 줄여서 스키니처럼 줄이기도 했다. 엄청 큰 교복을 샀기 때문에 허리를 줄여 입기도 하고, 허리를 줄이기가 귀찮으면 몇 번씩 말아 접어 입기도 하였다. 주로 하의를 수선했던 것 같은데, 어른들이 싫어한 이유를 어른이 되고 나서야 알 것 같다. 어른의 눈에는 그냥 깨끗하고 단정하게 입은 교복이 제일 이뻐 보인다.



요즘 학생들은 교복 수선을 잘하지 않는 것 같다. 왜냐하면 원래부터 교복이 짧고 작다. 여자 학생들 교복은 진짜 손바닥 만한 경우도 많은데, 교복을 입은 것을 보면 저래서 숨은 쉬어지겠나 싶을 정도록 작다. 특히 하복이 더 그렇다. 나는 저런 옷을 입고 10분도 못 버티겠다 싶은 생각이 든다. 왕성하게 활동량이 많아야 하는 시기, 먹고 싶은 것이 많은 시기에 짧고 딱 붙는 교복이 얼마나 불편할까. 그래서인지 요즘은 생활복 교복을 입는 학교도 많아지고 있는 것 같다.



학교를 다니는 학생일 때는 교복을 줄여도 입고, 교복 위에 다른 후드티도 입어보고, 교복을 입고 싶지 않아 하지만 학교를 떠나면 교복이 그렇게 입고 싶어 지는 신기한 마음이 작용한다. 자퇴한 학생들에게 학교에 어떤 것이 가장 그립냐고 물어보면 '교복'과 '급식'이라는 말이 제일 많이 나온다. 만우절에 대학생들이 교복을 입고 다니는 것도 본 적이 있다. 학교를 떠나고 나서야 교복을 깔끔하게 입고 다니는 것이 예뻐 보인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아마 교복이 가져다주는 청소년기의 풋풋한 소속감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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