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적 독립
나는 “방 좀 치워라.”, “폰 좀 그만 봐.”, “밥 먹을 때가 되면 수저도 챙기고, 엄마를 도와라.”, "이제 씻고, 일찍 자라." 이런 잔소리를 매일 한다. 잔소리하는 것이 가끔 조심스럽고, ‘오늘은 짧게 말해야지!’라고 다짐하지만 하다 보면 나의 감정은 고조되고, 쌓였던 울분이 터지며 쇼미 더머니에 버금가는 래퍼가 되어 최고의 디스를 아이에게 날린다. 나도 어쩔 수 없는 대한민국 사춘기 중학교 1학년 엄마이다.
그래도 이론상이나 여러 선배들을 통해서 들은 이야기보다는 우리 집 사춘기 아이들은 무난하게 사춘기를 지나가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하며 감사한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 중이다.
그렇지만 가끔 “내가 알아서 할게요.”라고 한다던지, “하면 되잖아요.”라는 대답을 들으면 "네가 언제 해봤냐"로 시작하는 2차전 디스를 시작하고 싶지만 어금니를 꾹 깨물고 참아 본다. 매일 볼을 깨물어도 그렇게 귀엽던 나의 아이는 어디 가고, 어느새 나보다 키가 커서 나를 아래로 내려다보며 내 말을 듣지 않으려는 아이와 나 사이에 벽이 느껴진다.
그래도 학교에 학생들은 고등학생들이기도 하고(중학생보다는 말이 통하는 사람이 되어가는 중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집에서는 어떻게 하는지 모르지만 학교에서는 그렇게 진상을 부리는 학생이 많지 않다.(집에서 하는 행동과 학교에서 하는 행동이 똑같다면, 아직 인간이 되지 못한 파충류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 학부모 상담을 하다 보면 학교에서는 꽤 모범적인데 집에서는 복장 터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반대로 우리 아이는 집에서는 엄마말을 잘 듣고, 성실하다. 집에서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하는 아이는 학교에서 복장이 터진다.(천 명 중에 한 명 집과 학교에서 모범적이고 괜찮은 경우가 있을 수 있지만 그런 경우는 졸업을 하고 성인이 되어서 뒤늦게 사춘기가 와서 누군가의 복장을 터트린다.)
왜? 엄마가 하는 말은 ‘콩으로 메주를 쑤는 것이고, 지구는 태양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하늘은 푸른색이다.’라고 말하는 것도 믿음이 가지 않는 것일까? 나의 10대를 돌이켜 보면 나의 10대 시절에도 그런 감정이 있었다. 부모님이 하는 말은 그 말이 아무리 옳은 말이라도 틀린 말이었으면 좋겠고, 학교 선생님들의 말은 신빙성이 떨어지는 것 같으며, 내 주위에 어른들이 하는 말 뒤에 다른 진실이 숨어 있을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부모님이 하는 말은 틀린 말은 아니지만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을 것 같은 느낌. 부모는 나를 잘 모르기 때문에 나에게 맞는 조언을 할 수 없는 사람처럼 느껴지는 느낌. 그렇기 때문에 ‘엄마가 나에 대해서 뭘 안다고 이렇게 말해!’라고 생각되는 반항감정.
나는 상상해 본다. 내가 만약 사춘기에 부모님과 선생님 말씀이 100% 진실이며, 나는 거기에 순종했다면 지금의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공부는 잘했을 거고, 대학은 잘 갔을 건데, 지금의 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아이가 태어나면 엄마 또는 주양육자가 아기의 생명과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주양육자는 아기가 배가 고플 때 젖을 물리거나 우유를 줘야 하고, 기저귀를 갈아주어 위생에 신경을 써야 한다. 추우면 따뜻하게 해 주고 더우면 시원하게 해 주고 매일 씻기고 입히고, 아기 스스로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이 오로지 주양육자에게 의존하게 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시기에 주양육자는 아기에게 전지전능한 존재이다. 엄마가 없으면 아기도 죽는 것이다. 아마 신보다 더 신과 같은 존재가 아닐까? 그래서 ‘부모가 잘못이야!’,‘내 주양육자는 엉망진창이야!’, ‘우리 엄마는 무능해!’, ‘우리 부모는 믿을 수가 없어.’라고 생각하고 양육자를 부정한다면 그 아기는 살아남을 수 없다. 그래서 대상관계이론에 따르면 부모는 아이의 거울이 된다.
거울이 왜곡되면 아이는 자신의 모습을 왜곡된 시선으로 볼 수밖에 없다. 부모가 예쁜 거울로 비추면 아이는 자신이 예쁘다고 생각하고, 왜곡되고 불량 거울로 비추면 자신에 대해서 나쁘게 생겼다고 판단한다. 전지전능한 부모는 그 시기 아이에게 모든 진리이다.
그런 아기가 점점 자란다. 부모 말고도 다른 타인들을 만나기도 하고 다른 타인들과 관계를 맺고 산다. 부모는 내가 우리 아이의 시작에서부터 함께했고, 나로부터 나온 자식이기 때문에 나는 이 아이에 대해서 다 알고 있다. 혹은 대부분은 내가 다 알지 않을까?라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지만 사실 부모는 아이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다. 부모가 전지전능한 역할을 하고 싶지만, 아이가 커 갈수록 그렇게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없다. 나는 아이들이 부모가 하는 말에 반항하고, 괜히 말을 듣기 싫고, 엄마 아빠가 하는 말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누군가가 나에 대해서 부정적인 피드백을 했을 때, 자신이 스스로 판단하여 그렇지 않다고 판단될 때 거를 수 있는 장치를 만드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전지전능하던 부모에게 반항을 함으로써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해서 하는 나쁜 말들이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하는 연습인 셈이다. 그런 연습이 왜 필요할까 싶지만 사람이 살다 보면 '나는 내 갈길 가련다."의 마이웨이를 고집해야 될 때도 있고, 누가 뭐라고 해도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내가 틀리든 맞든 괜찮아. 나는 괜찮은 사람이야.'라고 방어하는 멘털이 필요하다.
그 첫 단계가 이유 없는 반항인 것이다. 그렇게 반항이 무르익을 때 나도 아이를 독립시켜 줄 준비를 해야 되는 것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