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슴도치
아이들이 간혹 쉬는 시간에 흥분해서 나에게 찾아올 때가 있다.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뭘 저런 걸로 저렇게 흥분을 하나 싶은 이야기들이 대부분이다. 그래도 내 직업은 공감을 해줘야 하므로 최대한 공감을 잘해주려고 노력한다. 예를 들자면 깻잎 논쟁 같은 것에 흥분하기도 하고(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라며 흥분을 한다.), 친구들과의 사소한 말다툼, 선생님이나 부모님이 한 말에 대한 해석 등.. 여러 가지가 있다. 공감을 잘해주지 않으면 내가 자신의 편을 들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쉽게 삐진다. 나는 가끔 집중을 하지 못하고 건성으로 그랬겠네, 힘들었겠네, 속상했겠네...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그러면 나한테 "샘은 왜 영혼이 없어요. "라고 더 삐치기도 한다. 혹은 생각 없이 애들이 하는 말이 너무 귀엽거나 어이가 없어서 상대방은 심각한데 나 혼자 빵 터져서 계속 웃기도 한다. 삐치기 전에 미안하다고 웃으면서 이야기한다.
한참 예민한 나이라 문자로 주고받은 말이 특히 더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나는 가끔 아이들이 주고받은 그 수십 장의 캡쳐본들을 눈이 빠지게 읽어야 한다. 아이들이 문법이나 이해할 수 있는 언어를 쓰지 않는 경우도 많아서 중간중간에 "이게 이런 뜻이야?"라고 확인하는 절차도 있어야 한다. 내가 사춘기 한참 예민한 나이의 아이라고 빙의해서 보면 너무 심각하고 괴롭고 힘든 사건이지만, 40년 넘게 살아온 입장에서 보면 너무 귀엽기도 하고, 저렇게 사소한 일에 스트레스받는 것이 안타깝기도 하다. '나중에 지나가면 기억도 못 할 일인데, 이렇게 흥분하고, 스트레스받고, 괴로워 하지말지,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가을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는 홍시처럼, 똑 건드리면 툭 떨어지거나, 툭하고 터져버릴 것 같은 아이들은 누군가가 자신을 쳐다보는 눈길, 말 한마디도 허투루 보지 않는다. 어른이 되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어른이 되어서 사회에서 사람 노릇을 하려면, 눈치도 있어야 하고, 다른 사람이 하는 말에 대한 이해도도 높아야 하고, 비언어적 언어(눈빛, 표정, 행동 등)에 대한 수용능력도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춘기의 과정은 함께 있는 사람, 가족들에게는 도무지 이해가 잘 안 되고 너무 어렵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이들은 연습을 하는 중인 것 같다. 자기를 조절하고, 사회에 적응하기 위한, 어른으로서 결정하고, 선택하며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기 위한 연습을 하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