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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모 Dec 04. 2023

2023년 11월 18일 식도락 음식 일기

바싹, 쫄깃 애기 풋고추 부각

시골에서의 생활은 

11월 중순인 이맘때와

봄이 제일 바쁘다.


봄에는 한 해 농사가 시작되기에

마른 가지들을 정리하고 퇴비를 넣고

이랑을 만들어서

씨앗을 뿌려야 하고,

가을이 끝날 무렵인 이맘때는 

거두어들여서 갈무리를 해야 할 일이 많다.

적당히 익은 감도 따서 곶감을 만들고

뒤늦게 열린 가지도 따서

말려야 하기에 괜히 부산스럽다.


농사를 짓다 보면

봄에는 

씨앗을 뿌리고 모종을 심으면서

희망과 염원을 갖게 하고

가을에는

결실을 거두어들이니 

가슴 벅차고 기쁘다.


겨우내 먹는  음식 중에서

가을이 되면 

매년 빼먹지 않고 만드는 

애기 풋고추 부각은 

보고 싶고, 가슴 먹먹하고, 애잔한

어머니를 떠올리는데 

수 초가 걸리지 않는 음식이다.

햇볕 좋은 날 아래채 초가지붕 위에다

찐 고추를 말리는 엄마 곁에 앉아서

나도 엄마처럼 찐 고추가 잘 마르도록

뒤집어 보고 싶었고,

바쁜 엄마를 도울 손을 보태고 싶었고,

칭찬받고 싶었던

어린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무서움보다

초가지붕에 앉아 있는 엄마의 곁이 

더 간절했지만

엄마는 위험하다며 손사래를 치셨고

결국 나는 두어 칸 용기 내어 올라간

사다리에서 엄마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초가지붕에서 내려오는 

엄마의 손에 들린 소쿠리에는

햇볕과 바람에 바싹하게 말린

고추부각이 있었다. 


사다리에서 기다리던 나는

소쿠리를 받아 주는 것으로

결국 엄마를 도왔다는 것에

뿌듯해했었다. 


엄마는

스테인리스 그릇에

말린 고추부각을 담아

밥에 뜸을 들이고 있는 무쇠솥

솥뚜껑을 열어 

밥 위에 올려 두셨다가

적당한 수분이 

고추부각을 부드럽게 만들게 했다.


참 지혜로우셨다.


부드러워진 고추부각에 

양념을 넣어

부드럽고 맛있는 

고추부각 반찬을 상에 올리셨다.

 

된서리가 내리기 전에 

연하고 연한 애기 풋고추를 따서

냉장고에 넣고 며칠이 지났다.

더 두었다가는 

고추 속에 들어앉은 

씨앗들이 새까맣게 변해서

버려야 할 지경에 이르러서야

겨우 꺼내서 

애기 풋고추에 하얗게 분을 바르고

살짝 쪄 내서 부각을 만들었다.

꼭지를 따고

깨끗하게 씻는다.

반으로 잘라서 

소쿠리에 담아

흐르는 물에 한 번 씻어 내린다.

이때 물기를 그대로 두어야 

부침가루가 골고루 잘 입혀진다.

큰 그릇에 

풋고추를 담고 

부침가루를 골고루 뿌려서

분단장을 시켜두고,

찜기에 물을 한 컵 정도 부어

김을 올린 후 망사천을 깔고

그 위에 부침가루를 묻힌 풋고추를 올려 

뚜껑을 닫고 센 불에 3~4분 정도 쪄 낸다.

트레이에 

고추를 찐 망사천을 그대로 펼쳐주고

그 위에 망사천을 덮어서 벌레가

들지 못하게 한다.

식품건조기에 말리면

깨끗하고, 색깔도 좋다.

다 말리고 나면

이렇게 여러 가지 색깔로

입맛을 다시게 하는 고추부각이 완성된다.

완전히 말린 고추부각은 

밀폐용기나 지퍼백에 담아 보관하면 

겨울 내내 먹을 수 있다.

프라이팬에 식용유 3스푼 정도 두른 후

고추부각을 뒤적여 가며 

노릇해질 때까지 굽는다. 

불을 끄고 

진간장, 깨소금, 후추, 참기름 조금,

쪽파 흰 부분만 총총 썰어 섞어 주면 된다.

쪄서 같은 양념으로 무치면

쫀득하고 부드러운 또 다른 

별미가 된다.

그냥 집어 먹어도 맛있다. 

밥상에 올리면 

'우와!  이게 뭐야'라며

집어 먹다 보면 금세 양념만 남는다.


어머니의 사랑이 

음식을 통해 늘 내게 머물듯

내가 만든 음식이

사랑의 표현이 되어 딸과 아들에게

스며들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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