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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모 Dec 11. 2023

2023년 11월 30일 식도락 음식 일기

말리면 더 맛있는 것들 - 맛있는 겨울을 나기 위한 식량 준비!!

시골의 겨울은

유난히 길게 느껴진다.


시골의 밤은 더 길다.


어둑어둑해지면

통행하는 차량도

사람도 거의 없고

가로등과 띄엄띄엄 떨어져 있는

주택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특히 

차량이 다니는 주 도로에서 벗어나

이면 도로와 인접한 산을

깎고 정리해서 집을 지었고,

다른 집들과 뚝  떨어져 있기에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여

새벽이 될 때까지가

밤이 되는 것이다.


가끔 시내에 나가

늦도록 일을 보아도

딱히 밤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환하다가

도시를 벗어나 시골로 접어들면

어디가 강이고, 논밭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산으로 둘러 싸인 시골은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긴 겨울생활을 해야 한다.

요즘은

오후 2시 30분이면 햇볕이 끊어져

눅눅하기 전에 빨래를 걷어야 한다.


긴 겨울,

쌩쌩부는 바람과 찬기에

시장을 보러 다니는 것도 쉽지 않기에 

미리미리 손쉽게 먹을 수 있는 먹거리들을

10월 중순부터 11월 말까지는

갈무리해야 하기에

늘 바쁘다.


고구마 말리기로 시작해서

맨 나중에 수확하는

배추를 말려 준비하는

배추시래기가 방점을 찍는다.


자색 고구마를 말렸다가

분말로 만들어서

우유에 타 먹거나

쌈장을 만들 때 넣으면 맛있다.

밥을 지을 때 몇 조각 넣으면

입 맛 도는 색깔에 쫄깃한 식감까지 즐길 수 있다.

고추대가 싱싱할 때

새순에서 나오는 고춧잎을 따서

데쳐 말려두면

나중에 무말랭이 무침을 만들 때

환상의 짝꿍이 되는 재료가 된다.

아,

이 곶감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곶감이다.

이유는

만져보아 말랑말랑하는 것부터

하나씩 빼먹으면

겉은 쫀득쫀득

안은 부드러운 젤리로 가득하고

단맛은 솜사탕 맛이다.

빼먹다 보면 곶감걸이만 앙상하게

바람에 날리고 있다.

아들을 제외하고 가족 모두가 좋아하는

천연 간식이다.

늦게까지 열어준 가지 덕분에

이렇게 말리는 과정부터

행복하게 한다.

말린 가지를 깨끗이 씻은 후

미지근한 야채육수와 들기름, 국간장에

재워두었다가

넓게 채 썬 소고기와 볶아서

진간장에 파 송송! 참기름을 넣고

덧밥으로 해 먹으면 근사한 별미가 된다.

준비하는 과정이 다른 건조식량에 비해

조금은 손이 더 가지만

애기 고추부각은

제일 빨리 품절되는 겨울철 별미가 되어 준다.

김장 무를 수확할 때

무보다 더 눈길이 가는 것이

무청이다.

무청은 말렸다가 들기름을 넉넉히 넣고 묵나물로,

또 시래기들깨탕을 해 먹으면 맛이 그만이다.

기온이 첫 영하로 내려가기 전 날

시골에서 볼 수 있는 밀레의 '이삭 줍기' 같은

풍경이 있는데

바로 각자의 밭에서 무를 뽑아 나르는 장면이다.


김장 무를 뽑으면

작고 동글동글 예쁜 무를 선발하여

동치미를 담고,

그다음에 푸른 부분이 많이 있는 무를 골라

무말랭이를 만든다.

푸른 부분을 채로 썰어 말리면

단맛이 강하고 매운맛이 거의 없는

맛있는 무말랭이가 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시래기의 왕으로

등극시켰다.

배추 겉잎을 버리지 않고

소금물에 데쳐서 그대로 꾸덕하게 말려

하얀 줄기 부분의 막을 벗긴 후

바싹하게 말려서 사용한다.


딸이 초1, 아들은 시골에 들어와서

돌잔치를 했다.

면 단위의 초등학교이고 문방구점이 없기에

우리 때처럼 학교를 파하

우르르 문방구점으로 달려가 가방을 놓고

이것저것 만져보고 불량식품을 사 먹는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고 자랐다.

집 근처에도 돈을 들고 가서

돈 대신에 손에 뭔가를 들고 올

가게가 없다.


그래서 엄마인 나는 늘 바빴다.


면소재지에 있는 프랜차이즈 음식도

우리 집까지는 배달을 해 주지 않기에

시켜 먹을 수 있는 것들은

거의 다 만들어 먹였다.


짜장면, 빙수, 피자, 치킨, 수수호떡, 팝콘,

떡볶이, 수제햄버거, 스콘, 감자튀김 등등


빙수를 만들 때면 얼음을 서로 갈겠다고

밀치고,

피자 토핑은 각자 취향대로 올려야기에

한 판씩 따로 구워내야 했지만

별미 냄새를 맡고 내 주위로 모여드는

새까만 눈동자를 잊을 수가 없다.


꼬맹이들이 자라서 청년이 되어

가끔 

떡볶이를 만들어 주려고 하면 단칼에 거절한다.

엄마표 떡볶이는 이미 시장 입맛에 참패를 당해

메뉴에서 내려왔다.


떡볶이 이외에는

아직도 엄마가 만들어주는 간식이며

반찬을 좋아하고 잘 먹어준다.


친정엄마가 해 먹인

수만 가지의 음식들로

살이 되고 뼈가 되어 

이렇듯 건강하게 살아가게 해 주신 것처럼

딸과 아들 또한 건강하게 자랐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런데 

오늘 저녁은 뭘 해먹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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