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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모 Dec 17. 2023

2023년 12월 14일 식도락 음식 일기

무가 무말랭이 무침이 되기까지

어린 시절

농촌에 사는 우리에게는 먹을거리가

충분하지 않았다.

우리 집 바로 옆집이

친구 할아버지가 꾸려가시는

점방이 있었지만

감질나게 사 먹을 수밖에 없었다.


늘 바쁘게 사셨던 엄마는

그런 우리를 위해

비가 오는 날이면

부추와 방아를 넣고 장떡을 만들어 먹이셨고,

고소한 깨를 볶는 날에는

꼭~

쌀과 콩을 따로 볶아 섞어서

박으로 만든 그릇에 담아 주셨다.

엄마는

'깨를 볶을 때 쌀과 콩도 볶아줘야지

딸들이 시집가서 잘 산다'라는 말을 하셨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먹는 것이 귀한 시절이라

자식들이 궁핍하지 않고 넉넉하게

살았으면 하는 엄마의 기원이었으리라.


가을걷이가 시작되면

시골에서는 손 하나라도

보태야 할 정도로 바빠지기에

엄마는 우리들의 간식을

챙겨줄 시간이 없었다.


그럴 때 우리는 밭에 가서 무를 뽑아서

껍질을 돌돌 까서 베어 물면

무에서 나오는 단맛으로

심심한 입을 달래곤 했었다.


음식을 만들고

맛있게 먹는 것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 있어

무는

요리에 감초 같은 역할로 열일을 한다.


국물을 사용하는 모든 요리에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야채수에

무가 들어가야 시원한 맛을 낼 수 있고

생선 조림에는 두툼하게 썬 무를

깔아서 짠맛을 중화시키고

묵직한 단맛을 보탠다.


푸른 부분이 많은 무를 골라

굵게 채를 썰어

식품건조기에 넣어 수분만 제거한 후

볕 좋고 바람 잘 부는 날에

채반에 널어 바깥에서 말리면

맛있는 무말랭이를 만들 수 있다.


김장 김치가 물릴 때쯤에

등장하는 것이

무말랭이 무침이다.

흰쌀밥에

감칠맛 나게 무친 무말랭이에

구운 김이면 밥 한 그릇은 뚝딱이다.



무말랭이를 덖어서

차로 만들어 두면

소화제로 좋고

구수한 맛도 일품이다.


<무말랭이 만들기>

작지만 단단하고

온몸이 푸른 부분으로 된

무를 다듬어서

가로세로 0.7cm 정도의 두께로 채를 썰어준다

식품건조기에서

대충 수분을 날린 후

볕 좋고 바람 불어 좋은 날

채반에 널어서 말려준다.

이렇게 하면 식품건조기에서 바싹 말린

무말랭이보다는 단맛과 쫄깃함이 더 있다.

바싹 말린 후

지퍼백에 담아서 보관한다.

무말랭이 무침에

꼭? 넣어야 하는 말린 고춧잎이다.

무말랭이 무침을 먹다 보면

그릇 밑바닥에는 고춧잎만 남지만

왠지 친정엄마가 한 요리가

정석인 것 같아서 계속 말려서 넣고 있다.

고춧잎을 넣으면 먹음직스럽기도 하고

한 잎씩 먹으면 맛있기도 하다.


<밥을 부르는 무말랭이 무침 만들기>

무말랭이와 말린 고춧잎을

한 번 물에 씻어주고

미지근하게 데운 야채수에

무말랭이와 고춧잎을 넣어

30분 정도 뒤적이며 불려준다.

이때 완전히 불려지지 않아야 한다.

양념을 흡수하면서 불려져야

간이 잘 베인 무침을 먹을 수 있다.

물기를 꼭 짜내어

김장김치 양념, 멸치젓갈, 올리고당, 통깨, 후추를 넣고 버무리면 끝이다.

무말랭이를 불린 야채수 맛을 보면

단맛이 매우 강하기에 따로 보관했다가

조림을 할 때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

구운 김 위에

갓 지은 하얀 쌀밥을 얹고

하얀 쌀밥 위에 무말랭이 무침

두어 가닥을 올려 먹으면.... 말이 필요 없다.

꼬들꼬들, 뽀득뽀득 씹히는 소리에

곁에 있는 사람도 자동적으로

'나도 한 입'하고 먹고 싶을 정도다.


오늘도 묵묵히 아무 소리 없이

먹는 아들과는 다르게

다람쥐 마냥 입 안에 볼록하게 넣고

한 손에는 교정 젓가락을 들고

또 한 손으로는 엄지 척! 하는

딸의 모습이 사랑스럽고 행복하다.



부모님께서는 무를 많이 심으셨다.

좁은 둑을 따라 산자락 끝에

밭들이 길게 있었기에

한꺼번에 많이 담아서

나를 수 있는 리어카는 애초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된서리가 내리기 전에 무를 뽑는 날이면

부모님이 뽑아 준,

양쪽 팔을 합친 것보다 더 큰

무 하나씩을 들고 날랐다.

장난을 치다가

돌멩이 위에 떨어뜨려

무에 상처가 나기도 했고

몇 번 옮기다 보면 힘들기도 했다.


그러나


엄마의 손을 거친

무는

더 이상 나를 힘들게 했던 무가 아니었다.

.

겨울 방학이 되고

농한기가 되면

갈대가 자라 있는 냇가의

좁은 부분 위아래를 막고

양동이로 물을 퍼내고 잡은 붕어에

큼직하게 썬 무를 밑바닥에 깔고

맛있게 조린  붕어찜에 들어있던

무의 맛은

지금도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무 속속들이 베인 묵직한 단맛과

살캉살캉 씹히는 식감 정도로만 표현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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