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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식가용 Sep 04. 2024

세상에서 제일 싫은 채혈

히크만 카테터(중심정맥관)가 감염되어 제거를 하였다. 그 당시엔 몰랐지만, 원래 수돗물에도 세균은 존재한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그정도 세균은 대게 잘 이겨낸다. 다들 예방접종이나 헌혈, 수액 치료후에 바늘을 제거하면 간호사분들이 이런 말씀을 하신다. "오늘 목욕은 가급적 삼가시고 가벼운 샤워정도만 하세요." 

그 이유가 세균 감염을 우려해서 해주시는 말임을 몸으로 익히게 되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냥 지나갈 일을 면역이 약한 나는 이겨낼 힘이 없었다. 항생제 알러지 검사를 한다고 주사바늘을 찔렀다. 그리고 히크만이 없으니 약을 투여할 혈관을 잡았다. 병상에 누워있는데 온갖 약들이 주렁주렁 달렸다. 빈혈 수치가 낮기에 빨간 적혈구 팩, 혈소판이 낮아 노란색 혈소판 팩, 그리고 항생제와 항진균제 등등 5개의 약품이 내 혈관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다음날 새벽4시반에 채혈팀이 날 깨웠다. 나처럼 혈액이 아픈 사람들은 매일 혈액수치를 재고 그 수치에 따라서 수혈 및 약품 처방을 한다. 열은 여전히 38.3도로 내려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침식사가 왔다. 면역수치가 낮기 때문에 음식도 전부 익혀먹어야 한다. 김치 조차도 생김치는 안된다. 조리된 상태에서 고온으로 한번 더 푹 찐 음식을 멸균식이라 하는데 한 번 생각해 보라. 

푹 익힌 가지보다 흐물거리는 김치와 나물들, 장조림보다 질긴 고기들이 내 입을 채웠다.  

식탐 많은 나도 입맛이 없다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첫 군대 훈련소 입소해서 먹은 102보충대의 밥이 황제의 밥상 같다는 생각을 해봤다. 

교수님이 회진을 오셨다. 열이 잡히지 않아 광범위 항생제를 먼저 투여해야겠다고 말하신다. 항생제의 종류는 매우 많지만, 나중에는 반코마이신이라는 항생제까지 맞고나서 열이 내렸다. 

자고 일어나니 병상 침대 시트, 이불이 연못에 빠뜨렸다 건진것처럼 축축해졌다. 그래도 시원한 느낌이 나서 기분은 좋았다. 

이제 하루에 최소 한번은 채혈을 직접 해야한다. 혈액이 아프거나 아팠던 환우들의 공통점은 혈관이 잘 안보인다. 우리 몸이 웃긴게 바늘에 자꾸 찔리면 혈관이 얇아지고 숨어버려서 간호사들이 한번에 성공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 혈관이 아닌 다른곳에 바늘이 들어가면 통증이 심하고, 나같이 혈소판 수치가 매우 낮으면 시퍼렇게 멍이들어 1주일이고 1달이고 간다. 투병생활에서 부모님과 내 여동생에 대한 마음의 짐이 제일 힘들었다면, 몸으로는 이 채혈이다. 이때는 6개월동안 징글징글한 채혈을 매일 하게 될 줄 모르고 참고 또 참았던 기억이 난다.  

열이 내린 날, 교수님이 면역치료는 며칠뒤에도 열이 안나면 진행하자고 하신다. 같은 병실에 다른 교수님들 회진은 딱딱하고 빠르게 지나갔지만 내 담당 교수님은 "저도 그 침대에 누워서 2시간만 자면 안될까요?" 하면서 너스레를 떠시면서 내 마음의 걱정을 덜어주셨다. 그리고 늘 주먹을 쥐고 저에게 맞대면서 화이팅을 외쳐주셨다. 알고보니 내 담당 교수님은 "젊은의학자의 상"을 타신 정말 능력있는 분이셨다. 

글을 쓰다보니 캐나다에 계신 김동환 교수님. 잘 계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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