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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십킬로그램 Jun 21. 2024

짧은 감상문

유튜브를 보았다.

왜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삶을 살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아무도 우리의 인생에 신경 쓰지 않는데, 우리 인생을 우리 맘대로 살지 않을 이유가 있냐는 것이었다.

생각해 보면 많은 시간을 타인의 요구를 들어주며 사는 것 같다. 라캉이 그랬던가 우리는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고. 아이는 엄마의 욕망을 욕망해서, 엄마가 좋아하는 걸 아이는 하고 싶어 한다고 한다. 우리는 우리에게 바라는 것들을 이루어주려고 노력한다.

나의 인생이라는 말을 하면서, 사실은 나의 비중이 작은 인생을 사는 것 같다. 부모님의 바람도 사실은 그렇게 들어주고 싶지 않은데, 무시하기 어려워 그냥 지나칠 수 없다. 한 번씩 만나자는 말이 고마워서 나를 만나자고 하는 마음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서 그 약속을 나간다. 사실은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었는데 말이다.

생각해 보면 타인을 위해서 산다는 나의 마음도 사실은 나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것이란 생각이 든다. 내가 못하고 있었던 것은 다른 사람의 뜻대로 인생 살기를 거절하는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면서 얻는 이득을 포기하는 것이 아닐까. 사실은 나는 내 욕심을 버리지 못해 괴로워하는 것이 아닐까.

어느 날 문득 생각이 든 건 시간은 정말 제한적이란 사실이다. 예전엔 시간이 무한대까진 아니어도, 급할 땐 대출할 수도 있고 원하면 조금은 길어지는 느낌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땐 필요하면 잠도 줄이고, 밤도 새우고 했었다. 이젠 그러나 매일을 그렇게 보낼 수 없다 생각한다. 자는 시간이 줄면 컨디션이 줄어, 다음날의 능률을 찾아볼 수 없다. 능률이 오르지 않으면 다음날 정해진 일을 해낼 수 없고, 그러면 또 그날 딜레이가 발생해 시간이 필요해진다. 이미 시간은 없는데 말이다. 모든 시간이 이미 어느 정도 최적화를 달성한 지금은 늘어날 시간은 없다. 그러면 나의 시간은 이미 주어진 맥스에서 어떻게 분배하는가의 문제라 생각한다.

내가 타인에게 시간을 쓰면 나에게 쓸 수 있는 시간은 줄어든다. 이 간단한 말을 알기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나는 나와 시간을 보내고 싶다. 이제 다른 사람 신경은 조금 더 줄여야겠다.

오늘은 나와의 약속에 나가야겠다. 나도 내가 원하는 인생을 살 수 있게 결단을 내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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