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이다. 운동화 끈을 졸라매고 공원으로 걸어갔다. 높이 솟아 올린 아파트 틈바구니에는 허름한 단독주택 한 채가 보였다. 대문 앞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젊은 남자 두 명이 할아버지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무슨 일인가 해서 걸음을 멈추었다. 민원을 넣은 원인은 그 집에서 이상한 악취가 진동을 해서 조사를 나왔단다. 할아버지는 양손으로 대문을 붙잡고 꼼짝도 하지 않았다. 틈새로 고개를 들이밀고 보다가 깜짝 놀랐다. 집안에는 온갖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쌓였다. 순간 내 마음속에 스멀거리는 지성의 쓰레기가 떠올랐다.
인간의 모든 경험은 뇌에 저장된다고 한다. 사람의 뇌는 의식적인 기억보다 무의식인 공간에 저장된 것들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가파른 현실에서 겪는 순간들은 단기 기억과 장기기억으로 축적되어 재생된다고 했다. 그 양을 컴퓨터 하디디스크에 저장하려면 학교 건물만 한 대형 컴퓨터가 필요할 것 같다. 나의 뇌에 저장된 기억의 양도 얼마나 될지 모를 일이다. 다양한 환경에 노출되었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헤어졌다. 그 많은 순간순간들이 쌓인 지성을 어떻게 정화를 시켜야 할까.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받은 사랑이나 상처도 많을 것이다. 할아버지의 집안에 쓰레기처럼, 인생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데 선뜻 털어내지 못한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다. 혼자서는 살 수 없기에 서로 연대해야 좀 더 잘 살 수 있다. 사람들이 태어나면서부터 각각 다른 경험으로 세계관이 천차만별이다. 내가 아무리 오지랖이 넓다 한들, 그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고 존중할 수는 없는 한계를 가졌다. 열 사람, 백, 천 사람을 만나도 똑같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누구를 만나던 서로에게 긍정, 부정의 영향을 서로에게 미치게 마련이다. 그러기 때문에 내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유일 무이 한 존재이다. 나의 기억 속에는 어릴 적부터 성인이 되기까지 기뻤고, 슬펐고, 화나서 분노했던 순간들이 고스란히 기억 속에 가라앉아 있다. 이것들이 가만히 있으면 좋으련만 현제를 살아가는 나에게 어떻게든지 영향을 미친다. 이런 쓰잘 때 없는 것들로 감정의 기복이 오락가락한다.
사람은 태어나서 세 살 무렵이면, 평생을 좌우하는 생각과 행동이 학습된다는 연구발표가 있다. 친구들과 즐겁게 놀았던 일, 과도기의 기억, 어른이 되기까지 환경으로부터 받은 영향은 총체적인 봇짐이 되어 평생 자신의 등에 짊어지고 살아간다. 인간관계에서 불통으로 쌓인 영혼의 쓰레기들을 대청소를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하면 부정적인 감정의 찌꺼기를 털어버릴 수 있을까. 좋은 기억만 하고 살기도 짧은 인생인데, 과거에 누구에게 상처를 받고 미워하는 마음을 쌓이면 좋을 게 없다. 오늘은 용기를 내서 영혼의 쓰레기를 과감하게 버려야 할 것 같다. 내일부터 행복한 삶을 살려면 신음하고 있는 나의 소중한 지성을 정화시켜야 할 것 같다. 먼저 좋은 사람이 되어 주면, 상대방도 나의 좋은 면을 보고 바뀔 수 있을 것이다.
지성을 정화시키는 방법은 다양하다. 무의식 중에 떠오르는 생각을 노투에 기록해보면, 미워하는 사람도 있고, 잊지 못하는 여인일 수도, 아니면 어릴 적에 혼나거나 친구들과 싸웠던 일, 부모님에게, 혹은 선생님에게 야단맞은 순간일 수 도 있을 것이다. 처음에 떠오르는 한 생각을 그냥 두면 비슷한 것들이 꼬리를 물고 당겨온다. 성냥개비 하나 불씨가 일어날 때 탁, 꺼버리기 쉬운데, 방치하면 활화산처럼 더 큰 불로 번지고 나중에는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사람의 감정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기분 나쁜 생각이 약간 스치는 것을 두고 보면서 관찬을 하면 자꾸만 오래전에 속상했던 것들이 자꾸만 꾸역꾸역 올라온다. 결국에는 그것들에게 끌려 다니다가 부정적인 감정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 그럴 때는 좋은 방법이 있다. 자연스럽게 생각을 따라다니며 도화지에 사람 이름이나, 기분 나빴던 상황을 적어 놓고 재해석에 들어간다. 알고 보면 원수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속에 있다. 소크라테스와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을 아는 것이 제일 어렵고’ ‘제일 하기 쉬운 일은 남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고 했다.’
할아버지의 고향은 이북이라고 했다. 남과 북이 서로의 가슴에 총질이 이어지다가 분단이 되었다. 부모님은 모두 떼죽음을 당할 수는 없다며 당시에 10 살 짜리 아들을 이웃주민의 피난 행렬에 딸려 보내니 어쩔 수 없이 남쪽으로 내려왔고, 전쟁 통에 고향사람들은 흩어졌고, 주소도 모르는 부모님과 소식이 단절되었고, 전쟁이 끝나면 돌아갈 생각으로 기다렸지만 70년이 지나버렸다. 그동안 결혼도 하지 않고 날품팔이와 고물을 수거해서 생계를 이어왔다. 이제나 저제나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이었지만 38선에 가로막혀 가지 못했다고 한다. 주민등록상에는 가족은 없다고 했다. 우울증을 오래 앓아서 정신적으로 사람을 믿지 못했다. 사회복지사의 도움으로 영세민 해택을 받게 되었고, 동네 주민들의 간곡한 설득으로 집안 쓰레기를 대형트럭 20대 분량을 실어냈다. 할아버지의 집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수리도 해서 새집으로 변했다. 우울증이 깊어 정신과 치료를 통해 새사람이 되어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났다.
그러나 사람의 영혼의 쓰레기는 간단하지 않다. 평소에는 아무런 반응이 없다가 마음이 고요해지면 지렁이처럼 꿈틀거리면 밖으로 구물구물 기어 나온다. 아무리 지워버리려고 도리질을 해도 고장 난 라디오처럼 반복적으로 재생된다. 우리의 지성도 상처를 받으면 생채기가 난다. 얼마나 끈질긴지 꿈속에 까지도 쫓아다니기에 분노로 번지면 감정의 기복이 심해지고 스스로에게 이중삼중으로 상처를 덧낸다. 누구는 신앙생활을 통해 치료하고, 명상으로, 여행으로, 심리 상담을 통해 쌓인 스트레스를 풀어내기도 하지만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한다. 그 순간을 떠올리고 싶지 않아도 깊은 병으로 발전하면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없게 된다. 사람이나 동물들도 학대받은 기억이 있으면 신뢰가 깨어져서 지성이 병을 앓는다고 한다.
비슷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과 만나면 소통을 잘 이루어졌다. 하지만 그 반대인 사람들과는 늘 불협화음이 일어났다. 특히 믿었던 사람에게 뒤통수를 쌔게 얻어맞은 후 펄펄 뛰었던 경험도 고스란히 기억의 저장고에 남아있다. 그렇게 저렇게 인생의 굴곡이 다양할수록 쌓인 스트레스로 쌓인 양은 모아 놓으면 수 백 트럭이 넘을 것 같다. 어느 날부터 한계에 맞닥뜨린 지성이 괴로워 몸부림을 쳤다. 어떻게 하면 경험한 기억을 정화시킬 것인가가 늘 고민거리였다.
할아버지의 집에 쌓인 쓰레기는 소각장으로 실려 갔다. 환한 미소 속에 가족들과 상봉을 기대하는 마음이 빛난다. 나도 살아오면서 경험한 지성을 정화시켜야 나답게 행복하게 살 수 있다. 태어나면서부터 접한 모든 환경이나, 사람들과의 인연, 혹은 악연의 매듭들도 풀어버리고 정화시켜야 한다. 노투에 한 자 한 자 적어놓고 호명을 한 후 비워냈다. 다시 그런 상황에 노출된다 해도 이제는 다스릴 비법을 터득했다. 진정한 나의 자유를 위해 이별을 선언했다. 이제는 나와 너와 우리 모두의 영원한 미래의 행복을 누리기 위하여 앞으로 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