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니 보인다.

by 최점순

항상 무엇에 쫓기듯 나는 달렸다. 평상시와 운동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운동화 끈을 졸라매고 앞만 보고 워킹 자세로 빨리 걷는 습관이 되었다. 옆도 뒤도 보지 못하고 , 아니 보려고 하지도 않았고 천천히 걷는 자세는 갑갑증이 났다. 그동안 옆에서 누가 있는지도 모르고, 꽃이 피고 지는 계절의 변화도 잘 느끼지 못하고 수 십 년을 살아왔다. 세월은 이렇게 저렇게 빠르게 흘렀다. 몇 달 전에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바쁘게 살았던 패턴을 유년기에 여유 움으로 되돌아가기로 했다.

어린 시절에는 낙천적이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신중하게 생각하고 결정하기에 실수하는 일이 적었다. 사십 대 중반 이후부터 느리던 삶의 패턴이 바뀌었다. 말과 행동이 빨리빨리 달리는 일상에 길들여지기 시작했다. 현실적으로 감당하기 벅찬 짐을 끓어 안고 아이들 키우며 맞벌이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하루가 48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시간을 쪼개고 쪼개어도 짧았다. 낮에는 직장에서 , 퇴근을 하면 태산같이 쌓인 집안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눈코 뜰 여가 유도 없었다. 봄인가 싶으면, 여름이고, 가을이고, 겨울이 되었다. 항상 조바심이 나서 밥도 빨리 먹고 걸음도 종종걸음이었다. 그런 세월이 흐른 후 딱히 무슨 병을 앓는 것도 아닌데, 머리가 무겁고 밥을 먹어도 소화가 되지 않고 점점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되었다. 병원에서 정밀 검사를 해 보도가 이상이 없었다. 그런데 무시로 우울감이 밀려왔다. 그때 동물의 왕국을 시청하다가 나무늘보가 살아가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나뭇잎을 조금씩 먹고 느릿느릿 나무에 매달렸다. 저렇게도 살 수 있는데 나는 왜, 이토록 스스로를 괴롭히는지 깨닫게 되었다. 살아오면서 더욱 견고해진 틀을 단 번에 깨어버렸다. 멈추니 보인다.

그 이후 생활의 리듬을 서서히 바꿔 나갔다. 나무늘보의 살아가는 일상이 궁금했다. 백과사전을 펼쳐보니 나무늘보 서식지는 남아메리카 열대의 밀림 지역에 살았다. 원숭이와 비슷한 동물로, 나뭇잎이나 열매 등을 따 먹고 몸길이는 70cm가량이었다. 털은 길고 거칠며 몸 색깔은 보호색으로 장마철에는 녹색, 건조할 때는 갈색으로 변한다고젹혀있다. 나무늘보는 거친 열매와 나뭇잎, 나무껍질 등을 먹고 천천히 소화를 시키는 동물이라 했다. 내가 배울점이 많다.


살아 온 뒤안길을 뒤돌아 보았다. 언제부터인가 예식장 뷔페에 가면 폭식을 자주 했고, 간식도 달달 것으로 꼭 꼭 챙겨 먹는 습관이 생겼다. 급격하게 늘어난 체중은 체형이 바뀌어 몸에 맞는 옷이 한벌도 없었다. 그 후유증으로 무릎관절, 혈압, 당료까지 높아 건강검진에서 위험수위 관리 대상이라는 진단이 내려졌다 나의 소중한 몸을 혹사시켜 놓고도 괜찮은 줄 알았다. 직격탄을 맞은 한 동안 충격에 빠졌다. 우선 젝으로 식습관부터 적당하게 조절하고 꾸준하게 움직였더니 조금씩 몸과 마음에 변화가 생겼다.

나의 결심이 작심삼일이 되기 전에 실행에 옮겼다. 선적으로 선행한 일은 몸과 마음을 자유롭게 긴장을 풀었다. 집을 나서면 주위를 살피고 내 앞, 뒤에 걸어가는 사람들과 먼저 인사를 나누었다. 홀가분하게 마음을 비우니 동심으로 돌아간 듯하다. 파란 창공을 자유롭게 날아가는 새들과 눈으로 말을 걸고, 흘러가는 구름들과도 속삭이며 쳐다보았다. 공원에 핀 꽃들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감탄사를 보냈다. 한 달이 지나자 머리가 맑아지고 사색하는 시간은 길어졌다. 두 달이 지난 후부터 서서히 체형이 바뀌지고 제자를 잡아갔다. 군살이 빠지니 예스 라인이 되살아났다. 걸을 때도 눈은 멀리 바라보고 가슴을 활짝 펴니 걸음걸이도 반듯해졌다. 달리던 건음을 멈추니 사람과 사물이 보인다.

걸음을 멈추고 기다렸다. 길 건너에서 허리 굽은 할머니가 수례를 밀고 힘겹게 끌고 걸어오시는 모습이 보인다. 건널목을 함께 걸으며 신호등이 두 번 바뀌어도 마음은 즐겁다. 할머니는 치아가 한두 개 남은 입을 활짝 벌리고 웃었다. 손짓을 하시며 바쁜데 빨리 가라는 듯 보였다. 꼭, 울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 보았던 그 모습처럼 보였다. 저 할머니도 자식들 키우며 얼마나 힘겹게 살아왔을까. 젊은 시절 앞만 보고 달려오다가 보니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귀는 막혔고, 가슴으로 온기를 느낄 수 있는 여유가 없었다.


멈추니 비로서 잘 보인다. 나무늘보처럼 느릿하게 사는 것이 세 살짜리 아기처럼 호기심도 폭발했다. 풀숲에 앙증맞은 작고 아름다운 들꽃도 보였다. 흰나비가 노랑나비가 꽃잎에 앉아 더듬이로 꽃술을 비비는 것도 너무 사랑스럽게 보인다. 귀가 열리니 비둘기가 구구하는 소리와 산들산들 봄바람도 들린다. 하늘가에 흘러가는 구름과도 시선이 마주쳤다. 하루에 단 한 번이라도 보람 있는 일을 하게 되면 삶의 의미도 되찾고 마음도 한결 따뜻해졌다.

신호등 앞에서 빨간 불이 껴지기전까지기다렸다. 가까스로 건너온 아이들도 나를 보고 웃으멷 손을 흔들며 지나간다. 의식적으로 느리게 걸으며. 사람이 있나 업나 확인한다. 미처 건너지 못한 사람이 있는데, 성질 급한 운전자들이 앞차, 뒤차가 빵빵거리며 달릴까 봐. 햇볕에 ㅌ

ㅏ뜻한 마사지를 받은 파란 나뭇잎이 윤기가 자르르 흐르고, 꽃이 피고 지는 자연의 섭리와 일상들이 눈에 들어왔다.

느리게 사는 비법을 터득하니 모든 생물들의 아름다운 생장과정을 이제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다. 따스한 봄바람을 타고 창공을 가르는 새들의 군무를 바라본다. 공원에서 운동하면서 하늘을 쳐다보며 태양 아래 살아 숨 쉬는 모든 생명체들이 친구처럼 느껴진다. 전에는 못 보았던 옆에 있는 사람들도 형제로 받아들여졌다. 마음을 비우고 생활 패턴을 바꾸니 아직은 살아 볼만한 아름다운 세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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