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얼음이 얼었다. 초가을인데 찬바람을 몰고 온 동장군이다. 남편이 “여보, 빨리 와봐,” 다급한소리에 고개를 갸웃 등. 네, 왜, 무슨일이예요?. 외투를 입다 말고 등이 가렵다며 보습 제를 내밀었다. 티셔츠를 목덜미 덜미까지 훌러덩 올리고 양손바닥에 연고를 쭉 짜서 듬뿍 발라주었다. 등짝에 검붉은 흉터가 꽃무늬처럼 활짝 피었다. 아, 그날의 상흔이 눈앞에 펼쳐졌다.
동지섣달에도 내복을 입지 않았다. 요즘 들어 늙어 가는지 부쩍 삼중 내복을 찾았다. 봄에 세탁해 놓은 두꺼운 외투를 꺼내 주었다. 말은 제주도로, 사람은 서울로 가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던 때가 있었다. 80년대 우리 가족도 서울 드림 행렬에 합세하고 이사를 왔다. 딸은 세 살, 아들은 첫돌이 지났다. 남편은 군 특수 작전 중에 큰 사고를 당한 후유증으로 이병 제대를 했다. 몸이 아파도 처자식이 딸려 있으니 놀고먹을 형편이 못되었다. 지인들의 아름아름으로 직장을 구했지만 진득하게 견디지 못하고 잦은 이직移職 끝에 중장비 회사에 들어갔다. 그해 추위는 배추 뿌리처럼 땅속에 깊이 박혀 영하 20도를 넘나드는 차가운 칼바람이 번뜩거렸다. 남편은 대형 포클레인을 끌고 강원도 공사현장으로 출장을 떠났다. 건설회사에서 춥다고 도로공사를 지연시킬 수는 없었다. 포클레인 바가지로 땅바닥을 탁탁 치면 부싯돌처럼 불꽃이 퍽퍽 튀었다. 한 달 동안 깡 추위로 구들장처럼 얼어버린 땅은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공사 일정을 맞추기 위해 회사에서 특단의 조치는 길바닥에 기름을 들어붙고 불을 놓았다.
시베리아 돌개바람을 대형 포클레인도 집어 삼길 기세로 덤벼들었다. 기름을 태우는 검은 불꽃이 회오리바람을 일으켰다. 도깨비불처럼 불꽃이 공중으로 날아다니며 중장비로 불똥이 튀었다. 순간 남편은 옷을 벗어 불을 끄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동안 머리카락을 지지지 그슬며 온몸으로 번졌다. 번개처럼 어린 자식들의 얼굴이 스친 후 가물가물 정신을 잃었다. 직장동료들이 의식을 잃은 남편을 엠보 란스에 태워 병원으로 이송시켰고, 한참 후에 의식을 회복하니 병원이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도 가족들이 소식을 들으면 놀란다고 알리지 말라 했다는 말을 나중에 동려들이 전해주었다.
단독주택에 세를 살았다. 주인집에는 백색 전화기 150만 원짜리가 탁자에 잠자고 있었다. 지방에서 남편이 한 달에 한 번씩 전화가 걸려오면 아주머니가 마루 문틈으로 검은색 전화를 내밀어 바꿔주었다. “여보, 아이들 잘 있지. 나도 잘 있으니 걱정하지 마. 뚜뚜 전화기가 끊어지는 신호음이 들렸다. 요금 올라간다며 단 두 마디만 했지만 무소식이 희소식이라 생각하고 살았다. 그날따라 한밤중에 집에 돌아온 남편은 온몸에 기름 종가 더덕더덕 붙어있어 무슨 사고가 났다는 걸 직감했다. 아이들이 아버지의 얼굴을 보자마자 무서워서 응 앙, 울음을 터뜨렸다. 나도 악, 외마디를 지르며 뒷걸음을 쳤다. 기름에 찌든 옷에서 재가 루가 부슬부슬 떨어졌다. 그런 상황에서도 이녁은 씩 웃으며 나, 괜찮아, 병원에서 응급치료를 했어. 불에 탄 옷을 훌렁 벗기니 뱀 허물처럼 피부의 살점이 허옇게 묻어났다. 얼굴과 팔다리에는 부풀어 오른 물주머니가 주렁주렁 매달렸다. 화상을 입은 상처에 약을 바르고 거즈를 붙이는 동안 처자식이 죄인이라고 자책하며 속울음을 삼켰던 날들은 세월이 흘러도 시시때때로 되살아났다.
하루를 살아내는 일에 정신이 팔려 살았다. 까마득하게 잊고 있다가 오늘 흉터를 보는 순간 그날의 처참했던 상황이 흑백 영사기처럼 스캔되었다. 남편의 몸에는 인생 훈장처럼 붉은 반점이 버짐처럼 번졌다. 화마에 찍힌 상처는 내 가슴 밑바닥에도 가득히 고여 함께 살았다. “당신, 약 골고루 쓱쓱 발라.” 예나 지금이나 손이 왜, 이리 굶 뜨냐고 재촉을 했다. “아, 듬뿍 발랐어요. 연고 한 통 사면 일주일도 못 가니 아껴 쓰세요.” 한 마디 쏴 붙이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해 겨울은 동장군이 기승을 부렸다. 땅속 깊이 박힌 차가운 얼음 칼날이 차돌같이 단단한 심장도 뚫을 기세였다. 불에 타는 줄 알면서도 불속에 뛰어들었던 그대는 불나방. 벌건 화롯불에 몸부림치는 벌레처럼 뒹굴어가며 자식들을 공부시키고 생계를 책임지며 살아냈던 의젓한 가장이었다. 어느새 그런 세월의 강을 건너서 고희를 넘겼다. 이녁의 몸을 태웠던 화마는 내 가슴에도 지울 수 없는 화인을 찍었다. 손에 묻은 연고를 씻는 동안 그때의 악몽이 빨랫줄처럼 스르륵 당겨왔다. 수도꼭지를 틀어놓고 철철 흐르는 물에 내 마음을 헹구기 위해 찬물을 뒤집어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