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재는 기준
못 신겠어!
학교를 마치고 집에 들어서는 아이가 신발이 작아졌다며 신발을 벗어놓기 바쁘게 볼멘소리를 한다. 내가 보기에 새운동화를 사기엔 너무 이른것 같아 “신발 상태도 괜찮고 산 지 얼마 되지도 않았잖니?” 넌지시 말을 건네어본다. 하지만 아이의 돌아온 대답은 신발 앞꿈치가 뛸 때마다 아프다는 것이었다. 내가 어릴 적은 발가락이 신발을 뚫고 나오지 못해 똬리를 틀 때 즈음 조심스레 부모님에게 말씀을 드렸더랬다.(꼰대 소리로 들려도 어쩔 수 없다. 사실이니깐) ‘새 신발’ 말을 꺼내기도 죄송스러워 신문에 나온 신발 광고 사진을 가위로 오려다 부모님 주무시는 머리맡에 올려두고는 몰래 내 방으로 오곤 했었다. 그런 정성에 부모님이 탄복하는 날이 나에겐 신발이 하사되는 날이었다. 그런 성장의 스토리를 가진 나에게 아이의 새 신발 타령은 좋게 들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아이의 신발은 그도 그럴 것이 속뜻은 다른 곳에 있었다. 아이가 농구를 좋아한 시점부터 농구선수들의 발크기를 부러워하며 큰 농구화를 갖고 싶어 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면 큰 신발을 가질 수 있는지 발 크기를 자로 재가며 큰 농구화 신는 것을 학수고대하기 시작했다. 자를 신줏단지 모시듯 매일같이 발크기를 재어가며 내 발이 더 커지길 고대하고 있으니 발가락이 신발 앞코에 잠시라도 마중 나가면 새 신발 타령을 하는 것이었다. 자고 있는 아이 옆에 놓인 자가 갑자기 원망스러웠다.
왜 하필 신발에 수치를 붙여놔서 이렇게 나를 고생시키는지. 또 신발 치수는 하고많은 숫자 중에 5센티도 아니고 5밀리 간격으로 나누어져 있는지.
우리 인간은 신기하게도 이렇게 길이에 목숨을 건다. 내가 사는 집이 그렇고 타고 다니는 차가 그렇고 키가 그렇고 발이 그렇고 남자에게 중요한 나머지 발 또한 그렇다. (무조건 길었으면 좋겠다는 뜻은 아니다.)
길이에 목숨을 걸다 보니 인간만이 자라는 도구를 가지고 촘촘한 간격으로 사물을 비교하고 분류하려고 애쓴다. 그런 면에서 자는 인간중심적 가치의 결정체이다. 인간을 제외한 다른 동물들은 남을 비교하지 않는다. 유일하게 인간만이 비교하며 우열의 딱지를 붙여가며 살아간다.(예전 어느 티브이 프로에서 180센티 미만의 남자는 루저라고 했던 여자출연자가 있었다. 그 딱지가 내 이마에 떡하니 지금까지 붙어있다.) 자는 세상 모든 사물들을 비교가 가능하게 눈금을 그어 길다 짧다는 식의 평을 하게 만든다. 그래서 흔히 보는 30센티 자의 길이는 무의식적으로 길고 짧은 비교의 보편적 기준이 되어버리곤 한다. 강가에서 붕어를 잡아서 30센티가 넘어가면 월척, 즉 매우 큰 붕어를 뜻하지만 29.9센티는 낚시꾼들이 말하는 일명 열쇠고리(낚시꾼들은 작은 물고기를 열쇠고리로 쓸 만큼 작다고 하여 ‘열쇠고리’라는 속어를 쓴다.)는 아니어도 월척이 아니게 되는 미묘한 차별처럼 말이다.
가끔 생각해 본다 내 삶의 길이는 얼마일까? 그리고 그 삶의 길이를 재는 내 삶의 자는 몇 센티일까?
희한하게도 내 삶의 자는 보통의 자와는 달리 매년 조금씩 자라왔고 그 길이가 조금씩 길어져 어느새 46센티가 되었다. 나이가 먹을수록 1년 사계절이 더욱 짧게 느껴지는 것도 나의 자 길이가 길어진 탓일 것이다.
생의 초반에 짧았던 자를 가지고 그 길이로 세상을 포함한 전우주를 알 것 같았던 때가 있었다. 유년시절 내가 걸어온 인생의 자는 복잡다단한 어지러운 세상을 이해하기엔 매우 단순 명료했고 자기중심적이어서 내 눈앞에 펼쳐진 세상이 10진법이 아닌 2진법으로 보이기에 충분했다. 세상이 나에겐 호기롭게 쉬워 보였다.
또한, 내 남은 인생을 무한의 영역으로 던져놓아도 될 만큼 내 유년시절의 자는 너무도 짧디 짧았다. 영원불멸을 심리적으로 느끼며 살던 유일한 인생의 시기였던 것 같다.
요즘 길거리에서 허리를 숙인 채 폐지를 옮겨 닮는 힘겨운 노인의 고단함을 헤아리기엔 너무나 내가 가진 자가 그 당시 짧았다. 나에게 노인은 마치 백인이 검은 피부색을 띤 흑인을 열등하게 바라보듯 ‘늙은 사람’으로 나와는 구분된 다른 존재였다. 어린 시절 철없던 치기 어린 행동과 뒤를 생각 않고 내뱉은 말들은 내 삶의 유한성을 깨닫지 못한 무지에서 비롯된, 그래서 삶이 영속될 거라 착각한 결과였다. 당장 책임지지 않아도 언젠가는 잉여의 시간 속에서 나를 회복할 구제책이 주어질 거라는 막연한 기대의 동아줄이 있을 거라 믿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삶은 유한했다.
적어도 삶은 무한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내 삶의 자는 매년 길어져 인생의 도화지에 놓인 자를 한 번만 뒤집어 반대편으로 넘기면 죽음의 그늘 아래에 나의 자가 둔탁한 소리를 내며 덜컹 놓이게 되었다. 삶을 바라보는 모양새가 달라지게 된 시기도 내 자의 끝자락이 그 그림자 근처를 기웃거리기 시작한 때부터였던 것 같다.
삶의 유한성을 자각할 것을 힘주어 말했던 하이데거처럼 죽음을 통해 내 현존재의 의미를 느끼니 삶이 더욱 소중하게 다가왔다. 더 이상 나와 노인을 별개가 아닌 하나의 그릇에 담아놓고 바라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누군가 그러더라 ‘삶은 겸손에 대한 긴 수업’이라고...
중년이 되고 나서 내가 눈물이 많아지는 이유가 호르몬의 변화고 있겠지만 한 그릇에 담긴 타인과의 연대감 속에서 공감이 늘어나는 것도 한 몫하는 것이리라.
부쩍 40이 넘어서부터는 주변 친구들로부터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나 또한 죽음이 두렵다. 그래서 더욱 내 삶을 향한 질문이 자꾸 떠오른다.
나의 죽음은 어떨까?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해결되지 않은, 앞으로도 풀리지 않을 주제를 새벽 동이 틀 때 어두운 방이불속에서 그 해답을 웅크린 채 찾아본다. 이불 안은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철학자와 과학자들이 고뇌했던 해답을 희미하게 찾는 나만의 아지트처럼 나를 방구석 철학자가 되게 한다. 풀리지 않은 내 생의 과제를 떠안고 움트고 있던 나는 번뜩 윗몸을 일으켜 아이의 발을 내려보고는 조용히 이렇게 읊조린다.
아들아! 세상에서 네 발이 가장 멋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