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를 보다 보면 의사, 우리나라 의료에 대한 기사들을 종종 보게 된다.
대부분 의료사고로 인해서 환자들이 피해를 경우가 많다. 같은 의사지만 나도 속으로 ‘저런 사람들이 의사짓을 하고 있다니 쯧쯧.. 면허 박탈해서 다시는 의사짓 못하게 해야 해’ 하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 그런데 그런 기사의 댓글을 보면 종종 보이는 댓글이
‘의사는 잘못해도 미안하다는 말을 절대 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오늘은 이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나도 돌이켜 생각해 보니 의사 생활동안 환자에게 미안하다고 말한 적은 정말 손에 꼽는 것 같다. 이는 내가 잘못한 것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나도 의사생활하면서 많은 실수를 저질렀다. 하지만 그럼에도 미안하다는 말을 한 적이 드문 것은 정말 환자에게 사과할만한 잘못을 한 적은 사실상 거의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일반 환자들과 의사들의 괴리가 시작된다.
의사가 당연히 사과하고 책임을 져야 하는 명백한 잘못들이 있다. 왼쪽을 수술해야 하는데 오른쪽을 수술했거나 수술하면서 거즈를 배안에 깜빡하고 놔두었다면 당연히 사과하고 배상해야 한다. 환자 곁에 있어야 할 시간에 자리를 비워서 문제가 되면 마땅히 사과하고 배상해야 한다. 실수로 신생아를 떨어뜨려서 다치게 했어도 마찬가지이다. 대리 수술했거나 잘못을 은폐하려 했다면 그것은 사과 정도가 아니라 법정에 서야 할 정도로 중죄라고 본다.
하지만 그 밖에도 많은 의료사고에서 환자들은 얘기한다. 의사의 잘못으로 피해를 입었다고. 하지만 의사는 사과 한마디 없다고.
보통 사람들은 길 가다가 부딪히기만 해도 ‘죄송합니다’라고 한다. 하지만 의료사고가 발생했을 때 보통 아래 정도가 의사들이 보여주는 수사들이다.
‘이렇게 되어서 안타깝습니다’
‘도의적 책임을 느낍니다’
미안하다는 말은 없다.
의사 타이틀만 달면 무슨 탐욕에 휩싸여 양심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의사들도 다 평범한 사람들이다. 다 상식적으로 생각하고 잘못에 대해 미안해한다. 그런데 왜 의료사고가 일어나도 의사들은 대부분의 경우 미안하다고 하지 않을까.
의사들이 사과를 안 하는 큰 이유는 본인들이 생각하기에 이 사고를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사고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쉽게 얘기해서 의사들도 전혀 예상밖의 일어나서는 안 되는 사고가 일어나면 사과하고 부끄러워한다. 하지만 예견된 의료사고, 즉 발생할 수 있는 일이 발생했다고 생각하면 사과할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일반 사람들 생각도 마찬가지이다.
단적인 예시를 들자면 우리가 음식점에서 주문해서 음식을 먹을 때 음식 맛이 없다고 주방장에게 사과를 요구하지 않는다. 주방장도 그런 이유로 손님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음식을 나르다가 음식을 손님에게 부으면 당연히 사과를 한다. 미용실에서 머리를 못 잘랐다고 미용사가 미안하다고 하지 않는 것과도 같다. 나는 한 번도 미용사가 머리를 예쁘게 못 잘라서 미안하다고 하는 것은 못 들었다. 내가 미안하다는 말을 들은 적은 미용사가 실수로 내 머리를 태웠을 때뿐이다. 머리를 못 잘랐다고 불만을 제기하면 환불은 받을 수 있겠지만 미안하다고 사과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나름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다. 학교 선생님이 아이 성적이 나빠서 미안하다고 부모에게 말하지는 않는 것처럼.
의술과 미용은 당연히 다르다.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르는 것과 병원에서 뇌수술을 하는 것은 당연히 다른 기대와 다른 책임이 있다. 머리는 못 자르면 그만이지만 뇌수술은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기에 수술하는 사람의 마음가짐도 당연히 다르다. 단언컨대 뇌수술 하는 의사들은 정말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서 수술을 한다. 본인의 어깨에 생명이 달려 있다는 사실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결과가 나빴을 때 시술자 입장에서 하는 생각은 이처럼 크게 다르지 않다. ‘안타깝게도 이번에 머리가 예쁘게 안 잘렸다...’
모든 수술, 시술, 약물은 부작용이 있다. 백 퍼센트 안전한 치료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의사가 모든 책임에서 자유롭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문제가 생기면 당연히 배상도 한다.
아주 드물지만 흔한 약으로 인해서 쇼크가 일어날 정도의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100만 명에 한 명 꼴이지만 스티븐 존슨 증후군 같은 부작용이 일어나면 전신의 피부가 벗겨지면서 생명이 위험 해지기도 한다. 환자에게 이러한 부작용이 일어나면 피해자는 의약품 부작용 피해 구제 제도를 통해 어느 정도 보상받을 수 있다. 본인들이 만든 약으로 인한 부작용이기에 그 돈은 제약회사들이 내는 기금에서 나온다. 하지만 그 제약회사들도 그 약이 일으킨 심각한 부작용에 대해서 보상은 하지만 사과하지는 않는다. 부작용으로 사람이 죽는다 하더라도 말이다. 왜? 이는 마찬가지로 드물지만 간혹 발생할 수 있는 예견된 부작용이기에 그러하다. 이 약을 먹으면 아주 드물지만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음을 이미 알고 있다. 그렇기에 그런 부작용이 발생해도 배상만 하고 안타깝게 생각만 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의사도 환자가 처방한 약을 먹고 부작용이 발생했다고 해서 사과하지는 않는다. 물론 후회가 되고 환자에 대해서 미안한 감정을 가진다. 하지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기에 사과할 필요를 못 느끼는 것이다.
어떤 시술을 설명하거나 약을 처방할 때 보통 의사들도 ‘이런 부작용이 일어날 가능성은 있지만 매우 낮습니다’라고 한다. '내시경 하다가 구멍이 뚫릴 확률은 0.06%입니다'. 하지만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는 상황은 분명히 발생할 수 있다. 다시 말하지만 예상되지 않은 명백한 사고는 의사가 용서를 빌어야 한다. 하지만 발생할 수 있는 사고라고 생각하면 정말 도의적 책임만 보통 느끼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그 분야 일인자인 대학병원 교수가 수술하면서 환자 배에 거즈를 두고 나온 적이 있었다. 당연히 그 교수는 환자와 보호자에게 매우 죄송하다며 확실하게 사과하고 배상을 약속했다. 하지만 별문제 없이 수술은 끝냈으나 결과가 안 좋았다면. 그 분야 최고이긴 하지만 그 교수라고 모든 수술이 성공적인 것은 아니다. 당연히 수술하고 나서 결과가 안 좋을 때도 있고 환자가 오히려 더 나빠지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럴 때는… 거즈와 달리 사과하지 않는다. 왜? 수술을 해도 결과가 안 좋은 경우는 당연하게 있기에. 자책은 하지만 사과할 필요는 느끼지 않는다.
나도 내가 처방한 약을 먹고 부작용이 생겼다는 환자에게 얘기한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다른 약을 처방했을 텐데 아쉽습니다’
하지만 사과하지는 않는다. 환자가 겪은 부작용에 대해 안타깝고 미안하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는 그 약이 최선이었고 부작용 가능성도 미리 설명하고 처방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사과하는 것이 환자의 마음을 위로해 주고 서로에게 도움이 된다면 백 번도 넘게 미안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는 이유는 하나 더 있다.
미안하다는 말은 강력하다.
미안하다는 말은 듣는 사람에게 위로가 될 수 있지만 마치 정말 이 일에 명백한 잘못이 있었던 것처럼 느끼게 한다. 의료사고에서 미안하다고 하는 것과 서로 길 가다가 부딪혀서 미안하다는 말은 하는 것은 다르다. 보통 교통사고라면 가해자 피해자 모두 서로의 상황에 대해서 대략적으로 판단할 수 있고 서로 어느 정도 과실이 있는지 알 수 있다. 그래서 사과하고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배상을 하고 때로는 작은 실수라면 그냥 넘어가기도 한다.
하지만 의료사고처럼 환자와 의사 간 의학지식의 격차가 있고 서로 정보의 편차가 있는 상태에서 의사가 미안하다고 하면 환자 입장에서 의사가 어떤 상황에서 어느 정도의 잘못을 했는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혹시나 의사가 정말 크나큰 잘못을 저지른 것이 아닌지 술 먹고 수술한 것은 아닌지 다른 사람이 대리 수술 한 것은 아닌지 돌팔이가 제대로 공부도 하지 않고 처방한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고 오해가 쌓인다. 그래서 사과를 해도 괜찮을 만한 작은 실수에도 의사들도 괜한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 그냥 '이런 일은 있을 수 있습니다'라면서 미안하다는 말에 인색하게 되고 굳이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일에 사과하지 않게 된다.
다시 얘기하지만 의사들도 본인의 명백한 잘못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환자들에게 용서를 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은폐하는 것은 정말 안 된다. 하지만 반드시 한 번씩은 발생할 수 있는 예견된 의료사고에서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것에 정말 서로에게 도움이 되고 필요한지는 잘 모르겠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