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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로 Oct 05. 2023

가짜 교수지만 환자는 많습니다

"교수님 오늘 오전에 80명 예약되어 있습니다."

 

진료실에 들어오니까 담당간호사분이 상큼하게 얘기 준다.

가짜 교수지만 ‘교수님’ 소리는 늘 들어도 짜릿하다. 이러니 밖에서 일하는 개원한 의사들에 비해서 박봉이어도 대학병원에서 일하게 되는 것이겠지.. 진짜 교수로 승진하게 되면 얼마나 더 짜릿할지 상상을 해보곤 한다.

 

 

80명이라.. 오늘은 다소 많은 하루이다. 듣고 나니 가슴이 답답해진다. 나는 보통 진료가 있는 경우 반나절에 60-70명 정도 예약이 되어있다. 동료 교수들에 비해서 꽤 많은 편이기는 하다. 하지만 어떤 교수는 반나절에 100명 가까이 예약도 잡혀있다는 말을 들으면 불평을 할 수 없게 된다. 대체 그 교수는 어떻게 100명을 진료 보는지 신기하다.

 

 

많은 환자들을 진료 보면 정말 정신이 하나도 없다. 한 환자당 3분 내지는 4분 안에 진료 보는 것을 목표로 항상 한다. 문제는 항상 간단한 환자들만 있지 않는다는 점이다. 새로운 문제가 발생한 환자, 약을 먹었는데 부작용이 발생한 환자, 약을 먹어도 효과가 없어서 변경이 필요한 환자 등은 시간과 설명이 더 오래 걸린다. 가지고 있는 병이 여러 가지이면 더 오래 걸린다. 그런 환자들은 5분, 길게는 10분도 진료가 필요하다. 대체 그럼 어떻게 진료를 제 시간 내 끝내냐고. 간단하다. 다른 환자들을 더 짧게 보면 된다.

 

 

진료 볼 때 제일 편한 환자는 별문제가 없는 매번 같은 약을 처방하는 환자들이다. 진짜 피검사 결과 설명해 주고 “괜찮습니다. 이대로 유지하면 되겠습니다” 하고 동일한 처방전을 주면 1분도 안 걸린다. 하지만 간혹 이것은 정말 웃기는 일이라고 생각을 한다. 어떻게 보면 약을 제대로 안 먹고 관리도 안 하는 열등생 학생을 지도하는데 모범생 학생을 희생시키는 학교 선생님 같다는 생각이 들고는 한다. 문득, 예전에 학교 선생님께서 교직생활에서 막상 기억에 남는 아이들은 말 안 듣는 얘들이더라고 하신 말씀이 떠오른다.

 

 

80명을 진료 보고 나면 기억에 남는 것은 병이 어렵고 의사말을 잘 안 들어서 더 설명해 줘야 하고 약을 잘 챙겨 먹지 않는 소위 ‘말썽쟁이’ 환자들 밖에 없다. 사실은 의사말을 잘 듣고 잘 관리하고 열심히 약을 잘 먹는 ‘우수’ 환자들을 더 대우해줘야 하는데….

실제로 어떤 ‘우수’ 환자들은 이렇게 얘기한다.


“왜 제 앞사람은 10분간이나 봐주시면서 저는 이렇게 짧게 봐주시나요? 제가 마음에 안 드시나요?”


정말 의사로서 할 말이 없어지는 순간이다. 그런 것이 아니라고 설명을 짧게 또 해준다. 길게 설명하면 뒤에 환자들이 또 밀리기에…

 

막상 진료시간이 끝나고 나면 역시 또 기억에 남는 것은 저렇게 튀는 환자들인가 보면 정말 조용히 내 말을 잘 따르는 모범생 환자들에게 미안해지곤 한다.  '말썽쟁이'가 더 대우받는 것이... 세상 이치가 그런 것인가 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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