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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로 Oct 18. 2023

대학병원에 있으면서 환자에게 쪽팔리는 순간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나는 대학병원에서 아직 가짜 교수 신분이고 진짜 교수가 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하지만 그래도 명함은 교수이기에 간혹 지인들이 모 대학병원은 어떤 교수에게 진료 봐야 하는지 물어보는 경우가 꽤 있다. 아는 교수가 있으면 당연히 소개해주지만 그 병원에 아는 교수가 없으면 보통 이렇게 얘기해 준다.

‘나이 많은 노교수는 제외하고 너무 어린 의사는 제외하고 그 중간 나이대 교수에게 진료를 봐라’


사실 어디 가나 마찬가지지만 대학병원도 일선의 중추는 한창때의 나이의 교수들이다. 의학도 경험이 매우 중요하기에 너무 어린 의사들은 잘 추천하지 않는다. 노교수님들은 그 반대의 이유이다. 노교수님들 중에는 분명 대단하고 성취가 나 정도는 발끝에도 못 따라가는 분들도 많다. 하지만 의술은 급변하고 나이가 들어서까지 최신 의학을 계속 공부하면서 따로 온다는 것은 쉽지 않다. 대부분 나이가 들면 정열적으로 새로운 것을 공부하기보다는 후배의사들에게 아이디어를 주던가 관리직 정도의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나조차도 나이 들어서 지금의 열정을 유지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나는 아직 한창때의 교수이다. 아직도 열심히 공부하고 환자 진료 보고 연구에도 매진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나도 환자들 앞에서 부끄러울 때 소위 쪽 팔릴 때가 꽤 있다.


가장 흔하게 쪽팔리는 경우는 약을 잘못 처방하는 경우이다. 하루에 한 알 먹는 약을 하루에 열 알씩 처방했다고 연락이 오면 정말 부끄럽다. 바빠서 어쩔 수 없었다고 자위하곤 하지만 잘못하고 부끄러운 것은 부끄러운 것이다. 환자가 ‘저 교수는 대체 무슨 정신으로 진료를 보고 있나’ 고 생각할 것 같다.


하지만 대학교수로서 가장 쪽팔리는 경우는 역시 무식하다는 것이 들켰을 때다.

대학교수라고 그 드넓은 의학을 전부 알지는 못한다. 오히려 자신의 세부분야만 자세히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전체적인 지식 양으로 보면 어쩌면 다방면으로 진료하는 동네 작은 의원의 의사들보다 떨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대학병원에 가면 최고의 의사들이 있다는데 동의하는 이유는 환자들이 대학에 오면 쪼개져서 그 분야만 보는 전문 의사들에게 진료를 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평생 동안 오로지 발톱 무좀만을 보는 대학병원 의사가 동네의원보다 발톱무좀에 관해서는 진료를 당연히 잘 보는 것과 같다. 하지만 본인의 전문 분야이긴 해도 잘 보지 않는 드문 질환이거나 평소 잘 오지 않는 환자군들이라면 대학병원 의사도 헷갈리고 잘 모를 때도 있다. 진짜 모르겠으면 정말 환자 옆에서 몰래 나도 구글에 논문 검색하면서 찾아보기도 한다. 대학교수지만 정말 무식한 것이 들통난 것 같으면 쪽팔린다. 최근에 있었던 한 가지 나의 부끄러운 진료기를 들춰보자면...


최근에 청소년 환자를 진료본적이 있었다. 약간의 식욕부진, 피로감을 호소하여 온 청소년 남자아이였다. 보통 청소년 환자들은 소아과에서 많이 보지만 아이도 크고 소아과도 붐비다 보니 내과에 와서도 진료를 종종 본다. 성장이 끝난 청소년들은 성인과 동일하게 봐도 대개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 환자는 피검사에서 나머지는 다 정상이었는데 오로지 ALP (알칼리성 포스파타제) 수치가 올라있었다. ALP 수치가 증가하면 보통 간질환이나 뼈 질환이 있는 경우가 있고 심지어 어떤 경우는 암이 있어서 오르는 경우도 있다. 멀쩡한 청소년이 암이나 뼈에 질환이 있을 것 같지는 않아서 나도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결과를 환자와 보호자에게 설명했다. 

“좀 특이한데 ALP라는 수치가 오른 것이 이상합니다. 조금 시간 지나서 재검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특이한 환자들은 아무래도 기억에 남는다. 진료가 다 끝나고 나서 나도 다시 한번 생각해 봤다. 

‘왜 멀쩡한 젊은 아이가 ALP가 높지? 희귀 질환이라도 가지고 있나...’

그리고 그제야 머리에 번쩍 하고 떠오르는 가장 기본적인 지식, ‘ALP는 나이대별에 따라서 정상 수치가 다르다’. 소아청소년기 때는 성인에 비해서 2-3배 높은 것까지 정상으로 본다는 가장 기본적인 지식이 그때 비로서야 떠오른 것이다. 주로 성인만 진료 보다 보니 의과대학 때 배운 가장 기본적인 것조차 망각하게 되었다.


급히 수화기를 들고 환자 부모에게 연락했다

“아까 진료실에서 뵈었던 의사 OO입니다. 말씀드렸던 ALP 수치는 제가 다시 확인해 보니 어릴 때는 지금 수치는 정상입니다. 걱정 마시고 추가 검사는 안 하셔도 되겠습니다.”

보호자가 뭐라고 했을 것 같은가. 알려줘서 고맙다고 했다.......


말은 안 하지만 정말 환자에게 무식해서 미안해지는 순간이었다. 의사인 내가 무식해서 환자, 보호자를 걱정시켰던 것인데 고맙다고 인사를 받았다.

의사생활하면서 이런 쪽팔림이 가장 부끄럽다. 이래서 아직도 가짜교수인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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